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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의 심리학'에는 ‘경험의 자동화’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경험의 자동화는 우리가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형성하는 반응을 의미합니다. ‘자동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술관에 갔을 때 미술관의 아우라를 느끼며 그림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림의 첫인상에서 ‘우와 색이 예쁘다’, ’네모를 많이 배치했네‘, ’구성이 독특하네‘, '이 그림은 왠지 기분이 좋게 만든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후 계속 보며 집중적으로 감상할 것인지, 아니면 다음 그림으로 넘어갈 것인지 결정을 하게 됩니다.

 

꼭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사실 경험의 자동화는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아버지와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한 여성이 아버지와 닮은 남성을 보고 호감을 느끼는 것은 아빠로부터 받아온 긍정적 보상 경험이 자동화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림 감상에는 ‘직관적 처리’와 ‘숙고적 처리’라는 두 단계가 존재하는데, 직관적 처리는 대상을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이고, 숙고적 처리는 그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입니다. 앞서 살펴본 '첫인상'은 '직관적 처리'인 것이고, '집중적으로 감상'은 '숙고적 처리'에 해당하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흔히 등장하는 '시스템 1과 시스템 2', '무의식적 처리와 의식적 처리' 개념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감상의 심리학'에서는 미술관에서도 쓸 수 있지만, 일상과도 맞닿아 있는 심리학 용어를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림을 그냥 보면 되지, 왜 심리학을 알아야할까?"

 

 

그런데 "그림을 그냥 보면 되지, 왜 심리학을 알아야할까?"라는 의문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심리학을 알면 그림의 의도를 파악하기 쉬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그림은 그 강렬한 색채나 기법을 보며 감탄을 내뱉는 '직관적 처리'로만 보아도 충분합니다. 그래서 색채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지니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반면, 위 표지에서 쓰인 몬드리안의 그림 'Tableau I'처럼, 직관적으로는 '이 그림이 왜 아름답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라는 반응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몬드리안의 자연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이 담긴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평평한 표면에 선과 색의 조합으로 아름다움을 최대한 느끼게 하려고 한다. 자연은 나에게 영감을 주는데 모든 것의 기초에 도달할 때까지 자연뿐 아니라 모든 것을 추상하고 싶다."

 

- 몬드리안

 

 

따라서 만일 ‘경험의 자동화’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면 모든 그림에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분석하거나, 혹은 모든 그림은 예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대충 그림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림에 따라 보는 방식도 달라져야하는데, '경험의 자동화' 개념을 통해 그 중요성을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심리학이 미술 감상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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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앙리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심리학, 미술과의 연관성을 앞서 살펴보았는데, 그런 이유로 저는 '감상의 심리학'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중 저는 특히 ‘여섯 번째 장 색, 마티에르, 공감각’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공감각이란, 서로 다른 감각이 연결되어 색을 소리로 느끼거나, 숫자를 특정 색으로 인식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숫자 ‘2’를 빨간색으로 보거나, 특정 소리를 들을 때 색이 떠오르는 경험을 합니다.


사실 '공감각'은 국어에서 많이 들었던 단어인데, '파릇한 산울림', '눈부신 날갯짓 소리', '푸른 울음' 같은 구절 공부할 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심리학 용어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공감각을 미술에 적용하여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과 '고흐'의 '임파스토 기법'을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


앙리 마티스는 '꼭 보이는 대로 그려야한다는 법은 없다'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부인 '아멜리'의 얼굴에 초록색, 목에 붉은색 등을 칠했습니다. 이에 그 부인은 매우 크게 화를 냈다는 일화가 전해지지만, 지금은 '야수파'를 상징하는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공감각'과의 관련성을 살펴보면, 어쩌면 앙리마티스는 부인의 기분이나 초상화 그리던 당시의 분위기 등처럼 볼 수 없는 느낌을 색깔로 표현한 것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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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임파스토 기법

 

 

또한 '감상의 심리학'에서는 고흐가 소리와 색깔에서 공감각을 경험한 사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고흐는 한때 피아노를 배우려고 했으나, 건반을 칠 때마다 자꾸 색깔이 떠올라 더 이상 피아노를 배우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 경향 때문인지,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 등의 그림에서, 물감을 입체적으로 튀어나오게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임파스토 기법'은 그 질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림을 '색깔', '모양'뿐만 아니라 '질감'까지도 감상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서는 부드러운 질감을 전하는 임파스토 기법을 써서, 밤하늘의 유려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심리학을 미술과 연관지어 살펴보았는데, 미술 작품을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이라 신선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 자료들도 풍부했어서 읽으면서 따로 찾아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 장점입니다. 심리학과 미술 모두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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