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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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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쉽게 식지 않는 사랑이 있다. 그건 바로 어렸을 때 좋아하던 캐릭터를 향한 사랑이다.

 

까맣게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그 캐릭터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날에는 온종일 과거의 동심에 젖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미피의 탄생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미디어아트 전시회 ‘미피와 마법 우체통’은 오랫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미피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초등학교 때 나는 미피의 얼굴이 그려진 큰 주황색 필통을 썼다. 미피를 너무 좋아하면서도 엑스 자로 꿰맨 듯한 미피의 입 모양이 무서워서 가끔은 미피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필통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토끼의 코와 입 모양을 합쳐 만든 거라는 사실을 전시를 통해 처음 알았을 때, 미피에 대해 갖고 있던 불편한 감정이 한순간에 사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본 미피는 단순히 하나의 귀여운 토끼 캐릭터가 아니었다.

 

우선 검은 선 몇 개와 색깔 한두 개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을 법한 미피의 심플한 디자인은 작가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것이었다. 딕 브루너는 미피를 위해 자기 이름을 붙인 고유한 색깔 다섯 개를 직접 만들었고, 이 색깔을 입힌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직접 여러 가지 물감을 섞어 이 색깔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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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피의 세계관도 내가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정교했다.

 

딕 브루너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인 미피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미피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반려동물과 친구들, 그리고 동네 이웃들까지. 500평이 넘는 전시장을 미피의 이야기로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건 바로 미피의 주변에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시장 곳곳에 비치된 동화책들은 미피가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 놀러 가거나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즐기는 등 소소하지만 행복한 미피의 순간들을 담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피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읽어보면서 나도 어린 시절에 이런 책을 읽으며 자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캐릭터와 친구가 되고, 좋은 이야기로 무언가를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경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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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둘러보며 단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 있는 캐릭터인 줄로만 알았던 미피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어 좋았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방문한 어른들의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피어 있던 걸 보면, 미피는 정말 우리와 세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미피가 무려 70번째 생일을 맞이한 만큼, 더 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아 이 소중한 순간을 축하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미피와 마법 우체통’은 8월 17일까지 서울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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