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로 길게 늘어진 무대. 그 옆으로는 관객들을 위한 임시 객석이 마련되어 있다. 무대의 정면에 위치한 원래의 객석 사이 통로를 지나, 소품들이 이미 여기저기 놓인 무대를 가로지른다. 나무, 밀가루 포대, 책상, 그리고… 내 자리! 알파벳과 숫자를 중얼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배우들의 공간인 무대를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경계를 침범해버린 기분, 묘한 쾌감이 든다.
공연 시간은 다 되어가지만 아직 장내는 어수선하다. 서서히 조명이 어두워지고 한 할머니가 무대 위로 걸어온다. 할머니는 나무 옆 벤치에 앉아 가만히 땅을 바라본다. 잔잔하다 못해 고요하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제 이곳은 해방을 앞둔 1947년, 군산의 작은 빵집 ‘동백당’ 앞이다. 동백당의 큰 사장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지 이미 오래.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죽었겠지. 나라를 위해 운동을 한다던 그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은 돈도 들고 갔었는데.
이제 동백당을 지키는 사람은 둘, 바로 작은 사장 ‘여왕림’과 수석 제빵사 ‘공주’다. 이제 와서 돈을 내놓으라는 마을 사람들의 독촉에 이들은 더 맛있는 케이크와 빵으로 돈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제부터 당신도 우리 마을 사람이에요
사실 자리에 앉자마자 머릿속에 딱 떠올랐던 감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 작품, 몰입도에 자신이 있나보군?”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의 양쪽에 객석이 있다는 건 양측의 관객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앉게 됨을 의미한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려면 나와 똑같이 그 연기를 ‘보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볼 수밖에 없다. 관객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이러한 좌석 배치는 자칫하면 몰입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원형 극장도 아닌데 굳이 이런 위험 부담을 갖고 무대 위로 관객들을 불러들였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테지. 이 ‘모 아니면 도’의 무대 구성은 촘촘한 연출과 시너지를 발휘하여, 그야말로 최고의 효과를 가져왔다.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바로 동백당의 시식회다. 1막에서는 ‘공주’의 필살기인 치즈 케이크를, 2막에서는 보조 제빵사 ‘솔’의 솔빵(부추빵)을 마을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시식회가 열린다. 이때 동백당의 사람들은 객석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빵을 하나씩 나눠준다. 누구 하나 빠짐 없이 빵을 받았으니 이제 여기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마을의 동네 주민, 동백당의 손님이 된 셈이다. 호탕한 목소리로 호객 행위를 하며 능청스럽게 빵을 건네는 배우들의 모습도, 케이크와 빵의 맛과 향기도 우리를 ‘마을 주민’ 역할에 푹 빠져들게 한다. 지금 꺼내서 먹어도 된다는 말에 하나 둘 포장을 뜯고 빵을 한 입씩 베어무니 금세 극장 안은 솔빵의 냄새로 가득하다. 이 집, 빵 잘하잖아? 이미 마을 주민 31로서 몰입 완료다.
이렇게 되니 처음 시작할 때 마냥 “음, 독특하군!” 하고 넘겼던 인물들의 다채로운 등장 동선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등장한 츠바키 할머니와 솔은 무대의 오른편(실제 극장 무대 기준으로는 정면 정중앙의 가장자리. 본문에서의 모든 위치 서술은 나의 관람 위치 기준이다.)에 자리 잡았다. 이후 정면의 객석 사이로 , 혹은 내가 앉은 객석의 가운데에서, 아니면 왼편의 문을 활짝 열고 인물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한다. 마치 객석을 포함한 무대 전체가 마을의 광장이고 내가 마을의 한 사람이 되어 인물들의 수다에 참여하고 있는 것마냥, 누군가가 등장하고 사라질 때마다 내 고개가 움직인다.
우리는 모두 이 마을의 사람들이고 이웃 주민이야.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지. 공연의 모든 장치가 ‘우리’라는 단어에 형광펜을 죽죽 칠하고 있다. 도대체 그 ‘우리’가 뭐가 중요한 걸까? 그 해답은 사람들의 관계에서 알아낼 수 있다.
비가 올라면 우산을 써야지요
인생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모든 일이 마음처럼 풀리면 좋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한탄만 하며 지낼 수는 없는 법. 동백당의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에 지쳐가는 이웃에게, 빗방울보다 배로 무거운 절망에 짓눌리지 않게 우산을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
1) 여왕림과 공주
‘여왕림’과 ‘공주’는 사실 모두 ‘큰사장’과의 자녀를 한 명씩 둔 본처와 후처의 관계다.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공주’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지만 격변하는 상황 속에서 서로를 잃어버리고, ‘여왕림’과 만나 가정을 꾸린 것이다. 이후 ‘공주’를 다시 만나 셋이서 빵집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제법 자극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수많은 드라마의 경우에는, 그리고 현실에서도 사이가 좋을 수 없는 관계이니 당연하다. 물론 동백당의 두 사람도 누가 첫째 사모님이고 누가 둘째 사모님인지를 가지고 크게 다투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 두 명은 누구보다도 서로의 장점을 잘 알아주고, 남편을 잃은 슬픔마저 나누며 서로를 굳건하게 지지해주는 사이다. ‘공주’의 능력에 강한 믿음을 보여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여왕림’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여왕림’과 동백당의 부흥을 위해 힘쓰는 ‘공주’는 손을 맞잡고 새로운 인생을 향해 나아간다.
2) 후유에 씨와 건이
행당집 가정부로 살고 있는 후유에 씨는 건이가 담벼락 아래에서 ‘주워온’ 사람이다. 자꾸만 틱틱대며 모진 말을 내뱉는 건이는 내심 후유에에게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 건이가 자꾸만 심술을 부리는 건 왜일까.
후유에 씨는 건이와 큰 마찰을 겪고 집을 나갈 결심을 하고야 만다. 하지만 그건 후유에 씨가 건이의 말에 상처를 입어서가 아니었다. 건이가, 일본인을 엄마로 두고 살고 있다며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후유에 씨는 건이가 아무리 자신을 놀려도, 자신과 대화를 나눠주는 건 건이 뿐이라며 무척이나 아끼는 사람이다.
건이를 괴롭힌 아이들을 떠올리며 울부짖는 순간은, 자신의 아픔보다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그 다정함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3) 츠바키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
츠바키 할머니는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버려져 한국에 홀로 남아있다. 버려진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은 소소하지만 분명하게 인연을 이어나간다.
다리를 다쳐 쓸모 없게만 여겨지는 쌀집 아들 덕이는 시식회가 끝난 뒤 할머니에게 조용히 다가가 치즈 케이크를 건넨다. 나란히 앉아 디저트를 나누어 먹는 둘의 모습은, 어떤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지만 다정함이 공간을 메운다.
후유에 씨와는 유일하게 일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이다. 평소에는 침묵을 유지하던 할머니가 처음으로 본인의 아들 이야기를 드러냈을 때는, 후유에 씨가 건이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보여주고 안아주며 살아간다.
4) 솔이와 산이
눈물이 많은 보조 제빵사 솔이는 일본인들이 즐겨 먹던 치즈 케이크가 이 땅에서 유행하는 게 속상해, 시식회 전 치즈를 빼돌리려다 여왕림의 아들 산이를 마주친다. 미움의 힘으로 살아가서는 안된다며 솔이를 위로하던 그 덕분에 솔이는 마음을 다잡고, 시식회를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동백당이 마을 사람들과 조합을 꾸려 가게를 다시 살려보려다 최 사장에게 전기 오븐마저 빼앗기게 되었을 때, 그 난폭한 행태에 분노하기보다 동백당 사람들이 멍청할 정도로 순진했던 거라고 비난하기를 선택한 산이의 모습은, 그의 과거와 대비되어 조금 당황스럽다. 이제 솔이가 나설 시점이다. 솔이는 그에게 외친다. “비가 올라면 우산을 써야지요.”
아무리 부조리하고 불합리해보여도 그에 맞서 희망을 찾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탓하는 짓은 정말 비겁한 짓이지 않나. 솔에는 절망과 패배의식에 빠져 무너지기보다 순진한 믿음으로 다시 일어나는 단단한 삶의 방식을 몸소 보여준다.
빵도 우리와 똑같이 숨을 쉬어요
동백당 사람들에게 빵은 곧 삶이다. 당장 빵을 만들고 동백당을 살려야만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빵에는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궈온 가게의 주인공이자 하나의 성취. 남은 생을 함께 할 친구를 만나게 해주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출발선을 그려주기도 한다. 노력한 만큼 맛있게 부풀어 오르니 위로도 된다. 무엇보다 빵은 그 자체로 숨을 쉬는 존재니, 그것만으로도 삶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살아있음’은 행위인 동시에 상태다. 이 삶은 내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 곁에서 숨을 쉬는 사람들로 인해 이어갈 수 있다. 동백당이 구워낸 ‘함께하는 삶’의 맛을 오래오래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