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지금은 '마을'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마을의 뜻은 여러 집이 모여사는 곳을 의미하지만, 우리에게 마을은 그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마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먹기도 하고,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러한 문화를 우리는 '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 정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서로 비방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 사회가 되면서 이전의 이웃 간의 따뜻했던 정이 남아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연극 <동백당>은 1947년, 해방 직후를 배경으로 하는 극으로, 군산의 작은 빵집인 '동백당'에서 일어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극은 관객들에게 따뜻한 '정'의 감정을 되살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힘든 시절을 함께 헤쳐나가다
여왕림과 공주는 동백당 큰 사장의 부인이다. 독립운동가였던 큰 사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독립자금을 빌려 마을을 떠난 지 십 년이 지나고, 마을 사람들은 빚을 돌려받기 위해 동백당을 계속 찾아온다. 여왕림과 공주는 자신들이 빌린 것이 아니었지만 빚을 갚기 위해 동백당을 열심히 운영한다. 손님을 모으기 위해 두 사람은 수석 제빵사인 '공주'의 치즈케이크로 시식회를 열자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 시절 치즈는 마을 사람들에게 생소한 음식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치즈가 느끼하다며 동백당 근처 국밥집으로 향했고, 몇몇 사람들은 바로 먹어야 한다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먹어서 배탈이 나기도 한다. 심지어는 동백당 옆에 대형 신식 제과점이 들어온다는 소식까지 듣게 된다.
이때 산(여왕림의 아들)은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마주한 상황에 좌절한다. 하지만 보조 제빵사 솔은 변하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으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라며 다시 한번 해보자고 제안한다. 결국 동백당은 솔이 만든 솔빵(부추빵)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고, 여왕림과 공주는 동백당을 솔과 조합원들에게 맡기고 새로운 빵집을 차리기 위해 서울로 향하며 극이 마무리된다.
극은 연대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상황을 돌아보면 모두 자신만의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이러한 연대의 모습은 병으로 인해 독립 이후 한국에 남게 된 후유에의 이야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후유에는 아픈 자신을 살린 이씨에게 자신이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지만, 이씨는 그녀에게 내가 너를 살린 것처럼 너도 살림을 해주면서 나와 석이를 살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보상을 바라지 않고 힘든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는 이 모습은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에 급급한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빵 하나에 온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면 제대로 키워지겠지!
힘든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웃으며 빵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관객이 따뜻한 미소로 극을 관람하게 만들었다. 김희영 연출은 "어떤 시대에도 희망은 존재하고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극에 담았다고 한다. 동백당에 사람이 다시 모여들기까지 누군가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구성원들 간의 갈등도 있었지만 그들은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서로 글도 가르쳐 주고 빵을 만들며 계속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관객도 함께 만들어나가는 무대
<동백당>은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좌석의 위치였다. 관객석을 무대 양옆에 위치시켜 무대와 객석 간의 경계를 허물었다. 무대가 가깝다 보니 극을 제3자의 시선이 아닌 마치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서 바라보게 되었다.
동백당에서는 1,2부에 각각 한 번씩 시식회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시식회에 온 마을 사람들을 관객으로 설정해 관객에게 치즈케이크와 부추 빵을 나눠주었는데, 이 또한 관객들도 함께 동백당을 만들어나가는 느낌을 들게 만들며 신선한 경험을 제공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대 중간중간 등장하는 얇은 천 연출이었다. 무대 중앙을 천으로 나누어 두 가지 공간을 연출했는데 이는 양쪽 관객들이 다르게 무대를 관람하게 되면서 동백당의 이야기를 더 깊이 있고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무대와 객석 간의 경계를 허물어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는 관객이 배우들과 온기를 나누게 만들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동백당>의 이야기는 큰 고난에 마주쳐 다이내믹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들 간의 따뜻한 연대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소중하게 느껴지고,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극은 츠바키가 새들에게 빵을 뿌려주며 시작한다. 이때 솔은 새들에게 빵을 주지 말라고 하지만, 극의 마지막에서는 솔이 자신의 어깨에 기대 잠든 츠바키 대신 빵을 뿌려주며 끝이 난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추고, 서로를 바라보고 웃으며 빵을 만들었던 동백당 사람들의 모습처럼 힘든 상황일수록 서로를 탓하기보다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자는 교훈을 전하는 극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가 그래도 조금은 따뜻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