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이 가장 매력적인 법이다. 알면서도 계속 손이 가는 중독성이 있다. 영화도 그렇다. 특히 첫사랑 이야기라면 더더욱. 익숙한 서사라고 해도, 그 매력은 우리를 끌어당기고 만다. 사랑과 성장, 그리고 치유. 써니데이는 그런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레 따라가게 되는 영화다.
톱스타 반열에서 한순간에 이혼 소송의 주인공이 된 오선희. 그녀는 모든 걸 뒤로한 채 고향 완도로 내려온다. 한때 가장 소중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도피처일 뿐이었다. 더 이상 가족도 없는 섬, 누구도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선희를 맞이한 건 적막이 아니라 따뜻한 환대였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 동네 어른들, 그리고 첫사랑 동필까지. 그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세상의 시선을 받아야 했던 선희는, 이곳에서만은 유명인이 아닌 ‘사람 오선희’로 존재할 수 있었다.
’사람이 곧 고향‘이라는 말을 다시금 실감하게 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동네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 무심한 듯 챙겨주는 손길, 투박하게 건네는 위로들. 모두 선희를 향해 있었다. ‘유명 배우’나 ‘이혼 소송’ 같은 수군거리기 좋은 키워드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녀를 그저 옛 친구, 이웃, 그리고 소중한 존재로 대했다.
언제 봐도 그대로인 풍경과 변함없는 사람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준다.
특히 첫사랑 동필은 선희의 든든한 느티나무가 되어준다. 선희에게 특별한 조언을 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줄 뿐이다.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애정이 더 깊은 법이다.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희가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매일 시달렸던 불안과 불면증, 이명에서 차츰 스스로를 되찾아간다.
사실 마음의 상처는 남이 대신 극복해 줄 수 없는 문제다.
현실에 치여 밤마다 괴로워하던 그녀가 마침내 “나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을 때, 비로소 진짜 치유가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괜찮아지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물리적인 도움도 큰 역할을 한다. 서울대 로스쿨 출신이었던 동필은 선희를 위해 망설임 없이 완도-서울행 버스에 오른다. 법률 자문을 돕기 위해서였다. 완도 공무원으로 일하던 석진 또한 안정된 일자리를 내려놓고 부당함에 맞선다.
그들의 노력과 따뜻한 연대 속에서 선희는 스스로를 더 이상 도망치는 사람이 아닌, 다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선희의 도피로 비롯된 사건 사고들은 결국 행복을 향해 흘러간다. 그리고 선희만을 비추는 것 같았던 따뜻한 햇빛 혹은 스포트라이트가 사실은 모두를 향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괜찮다’는 그 주문이 통했던 걸까.
누군가에게 “너는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대신, 오늘은 나 자신을 향해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그 말 한마디가 무엇이든 툴툴 털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이래도 저래도, 나는 괜찮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