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모임] 가을, 와인, 그리고 독서모임

글 입력 2024.11.0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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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든지 서둘러야 하는 ‘빨리빨리’ 세계 속에 산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행위는 고독함을 동반한다. 눈에 천천히 담기는 글자들을 소화하다 보면 동떨어진 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 완벽한 몰두가 시작되고 나서야 책 위에 얹어진 활자가 철저히 하나의 세계로 다가온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우주 같은 고요함을 견뎌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내면이 아닌 외부 활동을 할 때에는 소음에 가까운 소리만 남는다. 웃고 떠들고, 이견을 조율하는 사람들, 진동 울리는 휴대전화, 빵빵거리는 자동차… 그렇게 많은 소리들을 묻혀 집에 들어와 샤워하고 침대에 누우면 무언가 허실했다는 느낌이 남는다.


소음에 익숙해지다 못해 지겨워질 때면 고독함을 감수하고 책 속으로 도망쳤다. 독서는 받아들이는 행위보다 내뱉는 행위에 가깝다. 무수한 감정과 생각을 소용돌이치게 하고, 응집하게 하고, 그것들을 탄식 내지 짧은 웃음으로 내뱉게 만든다. 그리고 나면 내 안이 무언가로 꽉 차게 되는 것이다.

 

*

 

독서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의 실체가 궁금했다. 혼자 부유하며 어림잡는 이 세계는 아직 익숙지 않다. 그저 바라보며 색을 느끼는 정도에 그친다. 입 밖으로 생각을 내뱉지 않으면 그 느낌은 선명하지 않고, 명쾌하지도 않다.


책으로부터 비롯된 주산물 또는 부산물을 알고 싶었고, 다른 이들의 그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아트인사이트 주최의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


첫 만남은 꽃과 식물이 풍성한 브런치 카페에서 진행됐다. 오전 내리 오던 비가 그치고 해가 반짝 나던 하늘, 풋풋한 꽃내음까지. 첫 만남에 걸맞은 예쁜 조건이었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 문이 열릴 때마다 ‘저 사람일까?’ 궁금해하는 것도 설레는 일이었고. 마침내 모두 모여 동그래진 눈으로 인사를 나누던 순간도 귀여웠다. 나 포함 내향인 세 명에 리더 역할에 제격인 외향인 한 명까지 인원 구성도 완벽하잖아?


그렇게 우리는 7월부터 10월까지 두 계절의 흐름을 함께 공유하게 됐다.


그간 함께 한 책은 서사의 위기, 달과 6펜스, 불변의 법칙, 그리고 모순이다.


철학부터 국내외 소설, 경영까지 폭넓은 정보를 함께 나눠 가졌고, 작품 속 인물과 교감했다. 각자의 사생활을 아낌없이 공개하는 게 부끄러운 게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책을 앞세워 내 얘기를 하고, 내 소개를 하는 것은 어쩐지 든든한 느낌이었다. 마치 작품의 연장선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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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훌쩍 흘러 짙은 가을이 됐고, 모임도 벌써 마지막 날을 맞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꼽게 된 책은 양귀자 작가의 ‘모순’. 서로의 성격, 취향 등을 잘 이해하게 되면서 더 깊고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책을 펼친 순간부터 쿨링타임 없이 첫 문단부터 흡입됐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 발을 동동거렸고, 회사 점심시간은 물론 퇴근 후 집에 와서도 책을 들여다봤다. 심지어는 덜컹거리는 버스에서도 글을 읽어 내려갔다.


사실 10월은 유난히도 바쁜 달이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쉴 틈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집에 있을 때도 끊임없이 각종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했다. 마감이 걸린 일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있어 밤에도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유일하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은 금요일 퇴근 후. 마침 마지막 모임도 금요일 밤이었다. 퇴근 후 잠시 집에 들러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비 오는 홍대 거리를 걸어 북카페에 도착했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커피를 마실까, 하다가 오늘 밤만큼은 느슨해지고 싶어 글라스 와인을 택했다. 저녁도 먹지 않은 상태라 얼그레이 롤케이크까지 곁들였다. 많은 걸 업고 지고 있던 평일로부터의 해방감에 기분 좋은 허기가 느껴졌다.

 

*

 

곧 우리는 결혼이란 무엇인지,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 현명한 건지, 내가 주인공 안진진이라면 나영규와 김장우 둘 중 누구를 선택할지. 그 어느 때보다 열띤 토론을 했다. 자연스레 사랑 이야기도 하게 됐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원초적이고 단순한, 조금은 유치한 질문. (아마 와인 한 모금에 따른 아릿함에서 나온 질문이리라) 그리고 골똘히 생각하고 진심으로 답하고 들어주는 사람들. 사회 속 얕은 대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묵직함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카페의 마지막 손님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과 느낌, 감수성은 공유하는 대로 곧장 화수분처럼 다시 흘러나왔다. 우리의 대화는 가벼운 주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 사회의 맨몸을 짚는 철학에 가까운 토론이었지만 누구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고 상처받지 않았고, 닿는 곳 없이 흘러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밤. 빗방울 떨어지는 가을, 와인, 책, 그리고 새 인연들. 여름에 만난 우리는 계절과 함께 깊어졌고, 이야기의 밀도 또한 짙어졌다. 물론 책을 바라보는 시선도 풍부해진 게 틀림없다.


아마 시간이 흘러 2024년의 여름과 가을을 돌아보면 독서모임의 추억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올해 가을, 저의 좋은 기억으로 찾아와 주어 감사합니다)

 

 

[김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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