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특정한 무언가를 가진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다.

Holding a specific thing is a very nice thing to do.

 

- 도서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中

 

 

"Hold"라는 단어를 잡아채어 하얀 화면 위로 옮기는 과정에서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는가.

 

도서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의 제목에서 보이는 "Holding", 즉 무언가를 "Hold"하는 행위는 책에서 철저히 지켜지는 일종의 시퀀스로서 책의 전면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절로 위와 같은 질문을 갖게 한다. 대체 이 단순한 "Hold"라는 행위를 작가는 왜 보여주고 싶었을까? 가장 확실한 언어인 그림과 가장 확실한 매개인 글을 모두 활용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위의 인용문을 통해 첫 문장에서 했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유추해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종착지는, Hold를 "가지다"라고 해석했을 때 화자에게 발생하는 어떠한 권리이다. 그리고 그 권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나 보통 무언가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로 귀결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해지는 제1의 전제는 Hold가 "가지다"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Hold가 "가지는 행위"로 인지될 때 그 행위의 결과물은 소유권이 된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흐르는 듯한 사고다. 작가는 정말로 이러한 뻔한 답을 의도했던 것일까?

 

작가는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사고 과정을 그저 종이 위에 흐르게 놔두는 것 같지만, 흐름처럼 보이는 글은 사실 흐르지 않는다. 자잘하지만 강력한 뼈대, 혹은 가시를 그 안에 담고 있다. 그가 Hold를 사람 하나의 앞에서, 그리고 사람 둘의 앞에서 사용하는 방식처럼 말이다.

 

 

그건 그 자체로 일이다.

한 가지만 하는 단순한 행위.

그리고 아마도 당신과 함께 걷는 누군가는

잠시 무언가를 들어달라고 부탁하겠지.

그가 구두끈을 매는 동안.

 

대답은 "물론."

"당신이 원하는 만큼."

 

That is a job in and of itself.

The simple act of doing one thing.

And perhaps someone you are walking with

will ask you to hold something for a minute

While they tie their shoelaces.

 

"Of course" is the answer.

"As long as you like."

 

- 도서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中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운 앞에서의 사고 과정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사이에서 행한다면 Hold의 뉘앙스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바로 위의 구절은 그 미묘함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인 것 같다. 여기서 Hold는, 종전과 같이 누군가에게 그 행위가 어떠할지를 단순히 제시한다기 보단, 그 행위를 통해 발생하는 두 사람 사이의 공감 혹은 여유를 보여주고자 하는 어휘이다.

 

작가가 활용하고자 하는 측면의 Hold는 앞에서 해석했던 것처럼 "가진다"라는 의미를 적용하기에는 느슨한 감이 있다. 다만, 느슨한 동시에 무언가를 동여맬 수 있을만큼 옹골지게 느껴진다. 필자가 생각하기로, Hold에서 파생된 이 오묘한 감각은 사물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짚어보자면 사물을 매개로 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물에 대해 복수 이상의 사람이 공유하는 감정이나 생각을 통해 암묵적으로 소통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상태"라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KakaoTalk_20250128_131726985.jpg

 

 

책의 저자인 마이라 칼만은 어떠한 상태를 그림으로 표현한다. 이는 칼만이 그림책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책을 살펴보면 하나의 장에 하나의 삽화, 그리고 그림에 대한 간단한 표제가 달린 구성이 일관된다. 표제는 약간 특이한데, 그 그림을 설명하는 듯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 그러하다. 표제는 그림 속 주인공이 누구-혹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 또는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혹은 무엇이 어떻게 놓여있는지-에 대한 간략한 언급일 뿐이다. 그러나 그림에서 표현하고 있는 광경은 조금 더 심층적인 시야를 필요로 하는 듯 오묘하다.

 

작가는 거친 필선과 투박한 색채를 활용하여 불분명하고 기울어진 배경을 그려낸다. 그림에 놓인 사물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Hold한 듯 놓여 있다. 등장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Hold하고 있는데, 그 Holding에 대해서는 아무런 애착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뚱하거나 화면 너머의-혹은 화면 안의-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을 던진다. 그 시선을 매개로 하여 우리는 여자가 들고 있는 무언가보다, 전달하는 무언가에 집중해볼 수 있다. 즉, 그림의 주인공은 화면을 구성하는 사물이 아닌, 화면 안의 여자와 화면 밖의 우리다.

 

 

KakaoTalk_20250128_132109598.jpg

 

 

여자와 우리는 어떤 언어를 주고 받고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이 미묘하고도 뜨끈한 부분은 그림을 무관심하게 그저 적어낸 듯한 워딩들만 보았을 때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림으로써, 작가의 시야를 최대한 옮겨낸 시각적 구현으로써 이렇듯 애매모호하고 느슨한 하나의 상태를 넌지시 건넨 것이다. 이를 통해 그 차가웠던 글자들마저도 어떠한 존재를 품게 되는 것을 우리는 느껴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As long as you like"

 

당신이 원하는 만큼 Hold하겠다는 이 말은,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가장 궁극적인 제안이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아닌 딱딱한 글자가 뜨끈한 온기로, 혹은 축축한 습기로 전달되는 경험을 작가가 쥐어낸 잠시라도 여러분이 함께 해보길. 다만 그것이 강요나 억압이 아닌, 자연스러운 동참이길. 마치 건조하고 버석거리는 이름 모를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궁금해하는 자연스러움처럼.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