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뮤지컬 <렌트>를 보고 난 후 생각했다. 예술의 힘을 믿는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만들었을 작품이라고.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약 30년이 지난 머나먼 땅의 관람자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을지라도, 작품의 열기만큼은 생생해서 델 수 있겠다고.
찬 바람 쌩쌩 불던 겨울 저녁, 정확히 1년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어느 수요일. 내게 민낯을 드러낸 <렌트>의 원작자 조나단 라슨이 <틱틱붐> 공연 중 희미한 음성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의 말은 이랬다.
"야,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근데 그게 그렇게 쉽게 터지는 게 아니더라."
"넌 꿈이 뭐야?"
그렇게도 많이 듣던 유년기의 질문은 성인이 되어선 힘을 잃는다. 누구도 답을 궁금해하지 않고, 이루지 못했어도 그러려니 넘어가게 되니, 성인이 된 우리는 그 문장 속에서 곧잘 추억과 자책 사이를 오가는 것 같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꿈일 수도 있겠다. 인간이 인간 사회에서 번듯하게, 혹은 적어도 남들처럼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화폐는 대개 꿈이라는 단어와 척을 지게 되기 마련이다. 회계사나 코딩전문가가 간절히 되고 싶은 꼬맹이들은 거의 없지만, 화가와 가수가 되고 싶은 아이들은 시대 불문 넘쳐나지 않던가? 그리고 경제를 깨우칠 즈음, 맑은 소망들은 겁에 질려 산산조각이 난다.
결국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갈 각오가 되어있는 강심장들이란, 꿈꾸는 이들과 동의어다. 자본주의에 굴하지 않으려는 저항가이자, 어쩌면 도저히 자랄 것 같지 않은 어린아이. 숨 막히는 시선과 물질적 압박 속, 빈털터리 주머니 속에 형체 없는 꿈을 한가득 털어 넣고 길을 찾아 전력으로 질주하는 이들.
<틱틱붐>은 그렇게 살아본, 혹은 적어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던 이들을 위한 이야기다. 심장이 터질 듯 불안하지만, 그 박동이 만들어낸 리듬으로 삶을 즐기고자 했던 이들의 순수한 열정의 정면과 그림자. 곧 조나단 라슨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꿈꿔온 일을 하고 있지만 서른이 되도록 '유망주' 타이틀에 멈춰있는 주인공, 도저히 헤쳐나갈 길이 보이지 않아 꿈을 접고 안락한 생활을 선택한 친구, 직업적 타협을 통해 꿈에 약간의 발을 걸친 여자 친구.
희망과 불안감으로 오로지 전력으로 질주해야 했던 질풍 같은 20대의 단상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내가 그들의 나이에 근접해 있기도 하고, 여전히 번번한 직장도 그렇다고 꿈을 이루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 뮤지컬이 감동적이기보다 자화상의 밑그림 같은, 조금은 멀멀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내게는 너무, 가까웠다.
생활고를 이유로 식당에서 알바하는 장면, 별것 아닌 이유로 오래 사귄 연인과 말다툼하고 후에 이별하는 장면들은 조금이라도 삶에 불안감을 느껴본 적 있는 이들 모두가 공감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약간 멀리서 나의 모습을 그려내는 듯한 뮤지컬에, 되려 기분이 나아지기도 했다. 당장 갑갑하고, 재미없고, 의미가 없어 보이는 나날들이 실은 이렇게 무대에 오를 수도 있고, 메시지를 던져줄 수도 있는 소중한 경험임이 분명하다고 위로를 건네주는 것 같았다.
모든 젊은 초상엔 불안한 행복이 담겨있다. 조바심 나고, 잘 가고 있는 게 맞나 도저히 모르겠고, 우울하다가도 갑자기 이유 모를 오기가 생겨 열정에 타오르고, 모든 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어제는 낙오자였으나 오늘은 구도자처럼 침착하다. 오락가락하는 마음 때문에 심장은 언제나 빠르게 뛰고, 이러다가 터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든 일이 결국은 다 잘 풀려 주인공이 성공의 길을 걷게 될지, 아니면 꿈을 포기하게 될지, <틱틱붐>의 결말은 명확하지 않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그가 실패했음에도 그 경험에서 희망을 얻었다는 것, 그의 귀 속엔 더 이상 불안한 초침 소리와 폭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뿐.
'러너스 하이'라는 개념이 있다. 30분 이상 달렸을 때,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고 자꾸만 달리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을 말한다. 토하고 싶고, 이러다 죽나 싶은 피로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난 후엔 정반대의 상쾌함과 욕심이 생기는 거다.
조나단 라슨은 자신의 공연이 대성을 이루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길고 긴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빠져나와 두 팔을 벌리고 행복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는 죽기 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적어도 삶을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력 질주 후에 후회하는 선수는 없으니까. 나는 그가 '러너스 하이'에 돌입했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모든 고통을 뒤로하고, 자신의 선택과 삶을 아름답게 여겼기를. 그래서 아픔을 도저히 느끼지 못했기를.
<틱틱붐>에 담긴 조나단 라슨의 삶을 통해 돌아보는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아름답고 참을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