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앞둔 '존'의 머릿속엔 어느 순간부터 틱틱- 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의 초침 소리, 시간이 흘러가는 걸 알려주는 소리.
[존]
솔직히 진짜 솔직히
나 저 틱틱대는 소리 거슬려서 미쳐버릴 거 같아
어떨 땐 두어번 틱틱 대다가
다른 소리가 들리기도 해
틱, 틱, 게다가 저기 어딘가에서
붐! 뭔가, 폭탄 터지는 소리 같기도 한데
느낌이 그렇게 멀지는 않아
다음 건 더 가까이에서 터질 거 같아
<30/90>
그 소리는 마치 서른도 십대, 이십대처럼 똑같을 거라는 불안을 자극한다. 그 불안의 기저엔 서른은 '달라야 한다', '무언갈 이뤄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하고 있다. 서른, 청소년도 성인도 지나간 서른은 성공을 했거나, 성공을 지나 안정에 도달하고 있는 시기여야 한다고.
그러나 그에겐 성공은 멀기만 하다.
그러나 아직 모르는 일이다. 서른을 앞두고 자신이 5년간 준비한 뮤지컬 <슈퍼비아> 워크샵이 성공한다면, 브로드웨이 무대를 올리게 된다면 붐! 하고 서른은 십대 이십 대보다, 지금껏 살았던 어떤 시기보다 크게 대박이 터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존의 마음은 초조하기만 하다.
[존]
세월은 빠르고 주름살은 더 늘어가고
발버둥 치는데도 한결같이 제자리고
당황도, 체념도, 하지 마, 괜찮아
살면서 한 번씩은 겪는 거야
축하해 해피벌스데이 나는 슬퍼 죽겠는데
천구백구십년의 서러운 서른 왜
아직도 실감 안 나, 스물아홉으로 해줘
내 인생 쫑난거야, 서른 살, 별 수 있나?
별 수 있나?
<30/90>
뮤지컬 <틱틱붐>은 비운의 천재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유작이다.
극의 주인공 '존'과 마찬가지로 조나단은 브로드웨이 작곡가를 꿈꾸며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지냈다. 그리고 서른이 된 1990년 '락 모놀로그'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틱틱붐>을 선보였다. 직접 배우로 출연하고 수 차례 워크숍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지만, 그의 또다른 대표작 <렌트> 공연 하루 전 사망(1996년 1월 25일)하면서 사장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친구들과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작품은 5년 뒤인 2001년, 기존 1인극에서 3인극으로 재정비하여 뉴욕 제인 스트리트 극장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수 차례 공연이 진행되었고 2024년에는 앙상블이 추가되어 8인극으로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조나단 라슨이라는 실존 인물이 평생 가지고 살았던 불안,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존'이라는 인물의 내면에 짙게 깔려 있다.
존에겐 훌륭한 친구들이 있다. 무용수인 연인 '수잔'과, 마케팅 회사 임원이 되어 BMW를 몰고 다니며 매일 해외출장을 다니는 친구 '마이클'.
수잔은 남자친구인 존의 꿈을 위해 뉴욕에서 계속 지냈지만 이젠 경쟁에 지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케이프코드'로 이사를 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워크숍을 앞두고 있어서 존은 망설인다.
[수잔]
경쟁에 지친 수잔은
바닷가를 꿈꾸고
가족을 원하지만
존은 아직 망설이네
존과 오랜 친구로 같이 뮤지컬을 했었던 마이클은 존에게 회사에 자리를 알아놨으니 오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마이클]
마이클은 세상을
다 가질 듯한데
존은 할 수 없는 걸까
다른 선택을 한 친구처럼
계속해서 뮤지컬을 하고 싶지만, 유망하다고만 하지 인정 받은 적 없는 존은 자신의 열정을 믿을 것인지 친구들의 권유처럼 안주를 택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존]
난 그냥 곡을 쓰고 싶은 거야
지금 당장 피아노 앞에 앉아서
사람들이 듣고 기억해줄 노래를 만들고 싶어
매일 아침을 그렇게 시작하고 싶은 거야
내 남은 인생동안 평생
그의 꿈은 확실하다. 그러나 흔들린다. 꿈이라는 다리는 자꾸만 흔들리는 것이다.
[존(수잔, 마이클, 앙상블)]
흔들리는 너
흔들리는 나
숨고만 싶어
포기해야 할 땐 언제일까 (포기해야 할 땐 언제일까)
주저하는 나 (주저하는 너)
주저하는 나 (너)
주저하는 나 (주저하는 너)
주저하는 나 (너)
뮤지컬 워크숍까지 이런 긴장은 갈수록 팽팽해진다.
존은 마이클과 과거를 회상하다가도 마이클의 엄청나게 화려해진 새 집을 보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끝내 마이클의 권유대로 마케팅 회사에 나가보지만, 거기 사람들과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쫓겨나기도 한다. 수잔과는 사소한 다툼이 큰 다툼으로 커지며 사이가 틀어지기도 한다. 존의 에이전트인 '로사'한테서 전화가 오지만 그녀가 실제로 워크숍에 올지는 미지수다. 그런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 존은 혼란스럽다.
그러나 <슈퍼비아> 워크숍에서 주연 여자 배우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넘버
소음이 허공을 가득 채우고
환상 속에 말을 가두고
냉정함만이 필요해진 세상
초라해진 사랑
우리의 세상은 망가진걸까
마음의 눈을 떠 그렇게 주저하며
의미없는 화면 속에 숨지 말고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
필요없어 musicbox melody
너도 알잖아
내 눈빛을 바라봐줘
한숨 소리 들어봐줘
그대 마음 깊은 곳에서 음악이 흘러 넘치도록
이젠 눈을 떠
이젠 눈을 떠
제발 정신 차려봐
이젠 눈을 떠 제발
과연 존은 워크숍에서 대박이 나 뮤지컬을 올릴 수 있게 될까. 그의 서른 생일은 어떻게 펼쳐질까?
1990년대 뉴욕 배경임에도 대사와 가사에 지금도 통하는 언어유희나 개그가 있어 말맛이 느껴졌고, 현실감 넘치는 대사들이 많아 몰입하면서 보았다.
무대 중앙에 마련된 대형 정글짐이 존의 집, 마이클의 집과 회사, 편의점, 슈퍼비아의 무대 등으로 활용되는 게 흥미로웠다. 인터미션도 없는 110분짜리 공연인데 존(배두훈 배우분)이 한번도 퇴장하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는 게 제일 놀라웠다.
마이클(양희준 배우분)과 수잔(방민아 배우분)은 다른 배역으로도 열연(존의 부모, 로사, 슈퍼비아의 주연배우 등)하는데, 배역마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게 연기해서 볼만했다. 앙상블로 인해 소리가 풍부해서 재미와 몰입을 동시에 느끼며 공연을 보았다.
아직 겪지 않은 서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공연이기도 했다. 꿈에 대한 열정이 정말 열정인지, 아니면 고집밖에 되지 않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아서인지 극중 존의 심정에 공감이 많이 갔다. 하지만 이상을 쫓을수록 현실이 엉망이 되어가는 존을 보면서, 안주를 택한 극 중 친구들한테도 공감이 갔다. 어떤 선택이든 우리는 그 선택을 통해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열정과 안주 사이에 서서 어떤 걸 골라야만 한다. 그 시기가 서른이 아닐까 싶다. 그 선택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또다른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의지를 전해주는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