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주 많이 심심했다.


타지에서 시작된 사회생활은 같이 어울릴 친구가 없어 혼자 놀기 일쑤였고, 책과 영화를 더 가까이 접하게 되었더니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이든 이야기든, 뭔가가 내 머릿속에 잔뜩 들어와 생각과 감정을 휘젓고 있는데 조용히 가라앉도록 내버려둬야 하는 게 싫었다고 해야 하나. 표현하고 싶어 근질근질했다. 그러나 입에 자크를 채운 지 너무 오래되어, 막상 친구들을 보면 말이 잘 안 나왔다. 분명 머릿속에 논리적인 분석과 감성적인 표현이 층층이 쌓여있는데, 할 수 있는 말이 "존잼" 아니면 "노잼" 단 두 마디 비속어뿐. 그때 생각했다.


'차라리 글을 쓰자. 그런데 쓸 거라면 좀 제대로 써보자.'


그렇게 시작한 기고 활동이 이제 3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말이 아니라 글에 재미를 붙인 나는 어디 말하기 민망한 욕심이 생겼다. 바로 내 이름 적힌 책을 한 권 갖고 싶다는 것.

 

 

3472598223644008268.jpg

 


<원숭이….>로 시작하는 임승수 작가의 대표작 두 권을 잘 알고 있다. 한참 패기롭게 세상 모든 지식을 흡수해서 제일 똑똑해지고 싶던 대학 신입생 시절, 나는 그의 저서로 마르크스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임승수 작가는 내게 사회주의 스승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 2025년 연말, 어딘가 인생의 변화를 주고 싶어 안달이던 내 눈에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가 눈에 띄었다. 어딘가 익숙한 저자명을 달고 있는 책은 마침 내 취미 생활에 도움이 될 것만 같지 않은가. 책장을 몇 장 넘기고 헉했다. 그 작가다. 내 아는 체에 소금 한 스푼, 그리고 자본주의 비관에 마른 장작 서너 개는 넣어준 그 사람! 새 책이 오면 며칠이고 미루던 나를 잠깐 휴가 보내기로 한다. 반가움과 설렘 속에서 나는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르크스 하면 공산당부터 시작하는 한국식 욕설만 아는 독자를 위해 <원숭이….>를 일부러 쉽게 쓴 것이지, 사실은 엄숙한 논문만 작성할 것이라 생각했던 임승수 작가의 이미지는 이 책에서 깨졌다. 취미도 다양하고 유쾌하신 분이 아닌가. 책을 읽는 내내 학생들과 수다 떨기 좋아하는, 그러나 대학 강의 특성상 반응이 없는 학생들을 두고 만담을 하는 교수님의 수업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강의는 정말이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재미와 실속을 다 잡아서, 이야기와 강의가 한 덩어리가 된다. 물론, 좋은 뜻이다!


작품 계약 전 알아두면 좋은 사실들을 설명하는 3장을 제외하면, 책은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책을 쓰는 여러 가지 팁이나 경험담, 그리고 조언을 들려준다. 동어반복을 피하고, 지시어를 남발하지 말고, 주어와 서술어를 일치하고 등등 글쓰기 수업에서 반드시 나오는 내용부터 쓰고 싶은 표현이 홀로 툭 튈 때 글감을 엮어 자연스럽게 만드는 방법까지, 그만의 그러나 많은 글 쓰는 이들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가 담겨있어 가볍게 후루룩 읽기에도, 깨달음을 얻기에도 좋다. 특히나 수동태. 나도 모르게 수동태를 정말 많이 쓰고 있다 걸 깨달았다.


나는 글을 쓰기 전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꼭 완성된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 그리고 그게 꼭 내 마음에 들 때야만 제대로 된 글이라는 생각. 물론 결국은 마음에 안 드는 미완성같 글을 남기게 되지만, 그런 글 하나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꽤 긴 편이다. 끙끙 앓는다고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결국은 제출에 의의를 두고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몇 개월 뒤에는 '너무 못쓰진 않았네.'하고 이상한 위로를 얻는 패턴의 반복. 그러다 보면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딱히 할 말도 없는데 억지로 쥐어짜는 것 같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것 같고.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는 어쩐지 기운을 북돋아 준다. 프로 작가이기에 할 수 있는 하소연이나 독자를 향한 유연한 사랑 남발을 보고 있자면, 글에 그런 무게를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책으로 밥 벌어먹는 전업 작가도 똑같이 고민하고, 아쉬워하고, 모르고, 또 알면서도 직진한다. 꼭 한 분야의 전문가가 써야만 하는 게 아니며, 알베르 카뮈의 작품 같은 글을 써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는 글인데, 뭐 그걸로 얼마나 대단한 위인이 되겠다고? 되면 좋겠지만, 깜냥 안돼도 아무 문제 없으니 그냥 써라, 식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물론 이런 표현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정말 전혀 없다. 다만 그의 시행착오와 경험에서 나오는 작가로서 인고의 시간이 그렇게 내게 읽힐 뿐이다.

 

특이한 것은 챗GPT와의 대화 장도 있다는 점. 글을 쓸 때 이젠 필수가 되어버린 인공지능이지만, 그 역할을 어디까지 한정지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정말 사람과 인터뷰를 하듯 인공지능을 다루는 것도 재미있지만, 글쟁이들에게 인공지능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또 스스로 정리해 영리하게 써먹으라는 이론적이고도 실용적인 장이라, 기억에 꽤 뚜렷하게 남는다.


단순히 글을 쓰는 방법부터, 내 글을 어디에 어떻게 투고할지(처음 알게 되어 너무 신기했다.), 또 실제로 책이 어떻게 엮이고 계약은 어떤 유형이 있는지. 생각보다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는 책을 쓰고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볍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다만 임승수 작가는 비문학 작가이기에,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일정 부분 아쉬울 수 있겠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