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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충동적인 여행은 소망보단 실리를 따진 판단이었다.

 

기념일을 보내기 위해 이것저것 콘텐츠를 따져보던 중 3월 하순 홍콩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비행기는 20만 원 이하(기내 수화물만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호텔은 3박 4일 2인 기준 40만 원짜리 특가가 있었고, 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며, 비싼 물가 대신 낭만이 저렴해 도처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며칠 골머리를 앓던 것이 무색하게, 결정은 아주 짧은 시간에 났다. 홍콩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마냥 더울거라고 생각했던 홍콩은 생각보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무래도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달인 듯했다. 누군가를 위해 적는다. 2025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의 홍콩은 비가 억수로 내리진 않았지만 약간의 안개비를 막을 우산이 필요했고, 바람막이부터 얇은 가죽자켓까지 겉옷이 있으면 좋은 곳이었다고. 민소매보단 확실히 반팔티가, 추위를 탄다면 얇은 긴팔이 더 나은 선택지였다고 말이다. 물론, 내년에도 비슷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위에 떨거나 더위에 지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면적이 좁은 도시로의 여행인 만큼 명소가 정해져 있어 일정은 모두가 비슷하다. 다만 디즈니랜드나 마카오 방문 여부가 여행을 결정하게 될 텐데, 우리는 '홍콩' 그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 어느 곳도 의사가 없었다. 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에게 3박 4일은 도시 하나를 경험하기 적당한 시간이었으며, 딱히 후회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하루가 더 있었더라면 마카오 정도는 들렀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여행에서 인상적이었던 장소 3가지를 추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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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MUSEUM


 

가장 큰, 그리고 가장 의외의 발견은 M+ 뮤지엄이었다. 가볍게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방문했던 미술관은 규모가 상당한 곳으로, 다양한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가 준비되어 있다.

 

사람과 건물로 비좁은 홍콩 거리를 헤매다 들어온 미술관이 어찌나 넓고 쾌적하던지, 이런 공간을 그 작은 도시에 조성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떤 전시를 볼 것인지에 따라 티켓의 선택지가 달라지는데, 모든 전시를 볼 수 있는 티켓은 5만 원가량으로 꽤 값이 나가는 편이다. 한두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왔다면 가장 저렴한 상설 전시 티켓을 추천한다. 상설전시관도 상당히 큰 편이라 둘러보는 데 꽤 시간이 소요된다.

 

상설전시관엔 우리에겐 생소한 중화권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많이 걸려있는데, 기껏해야 아이웨이웨이 같은 글로벌한 미술가의 작품이나 알고 있던 내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작품들도 있지만, 중국 화풍의 대범하고 또 섬세한 감성이 드러나는 작품이 많았다. 아름답거나 섬뜩한, 또 가끔은 강렬한 위트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천천히 눈에 담으면서 동북아시아 3국의 예술적 특징을 곱씹어볼 수 있었다.

 

작품 감상 외에도 하이라이트가 있다면, 바로 '뷰'다. 홍콩의 고층빌딩들을 강 너머로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다, 밖에 앉아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여유로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팁을 약간 덧붙이자면, 미술관 내부에 카페가 있지만 바깥 테라스 공간에도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간식 트럭이 있다. 굳이 안에서 사서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카페에서 우리 돈 만 원에 상당하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시켰는데, 나오자마자 녹기 시작해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했다는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인 경험을 했다고, 그래서 카페에 약간의 앙금이 남아있다고도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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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청빌딩


 

홍콩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방문하는 곳 중 하나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스팟'에 도착하게 되면, 왜 이곳이 그리 유명한지 곧바로 깨닫게 된다.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이 빌딩은 수많은 홍콩인의 삶과 과거를 그대로 간직한 채 담대하게 버티고 서 있다.

 

명소에서 사진 한 장 건질 겸 도착했던 이곳에서 나는 오히려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관광객인 내가 카메라 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 공간의 매력이 전부 날아가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카메라로 이 건물의 아름다움을 찍어낼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멍하니 건물을 올려다보는 일뿐이었다.

 

도착했을 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습윤함과 조금은 컴컴한 날씨를 배경 삼은 익청빌딩은 내가 생각하던 홍콩의 바로 그 이미지였으니까. 왕가위 영화로 따지자면 <아비정전>쯤 되었다. 그 유명한 아라비카 카페가 내부에 있어서 조금 감상이 깨지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오히려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공간을 음미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관광객이 한 번에 많이 몰려들지는 않는 곳이지만,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공간이다. 동선의 편리함을 위해 오후보단 오전 방문을 추천한다. 또한 여전히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남아있는 생생한 현실의 공간이니, 매너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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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카페


 

영화 속 홍콩의 감성을 조금 더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는 곳이다. 차찬텡 식당이라 음식을 시켜도 좋지만, 나는 오후 느지막이 방문해 밀크티와 토스트를 주문했다.

 

체인점을 제외하고 홍콩에서 처음 마신 밀크티였는데, 한국과는 사뭇 다른 맛이다. 아주 진하고, 단맛은 전혀 없으며 조금은 쓰다. 잎을 제대로 우려서 우유와 섞은 정직한 맛이랄까. 자리에는 설탕이 구비되어 있었고, 도저히 쓴 맛과 친하지 않은 나는 망설이지 않고 설탕 두 팩을 집어 들었다.

 

음식 맛보단 내부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이다. 알록달록 불투명한 유리와 녹색 창틀, 파란색 타일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테이블과 의자가 만나니 금방이라도 주인공들의 총싸움에 휘말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천장지구>나 <도신>같은 영화가 생각이 나다가도, <펄프픽션>이 떠오르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 같다. 미국식 다이닝과 홍콩의 차찬텡 식당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구석구석 움직이게 되는 홍콩의 특성상, 아침에 방문해 한 끼를 가볍게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발이 아파질 때쯤 잠깐 머무르는 공간으로도 적합하다. 명성에 비해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웨이팅을 각오했던 게 머쓱하게도 좋은 자리를 쉽게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평일 오후 3시 가까이 방문한 영향도 없지 않을 테다.

 

여행지에서 방문하는 카페는 제법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잠깐의 휴식이 달콤해서이기도 하지만, 동행인과 일정을 변경하거나 여행 소감을 나누며 재정비하는 순간이 그날 하루를 더욱 잘 보내도록 의지를 돋구어 준다. 그뿐 아니다. 시선이 있다. 느긋하게 앉아 창밖을, 어깨 너머 현지 사람의 웃음과 전경을, 또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은 널리 있고 삶은 별로 거창하지 않아 살 만하다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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