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와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 땅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그려낸 영화이다. 영화는 겨울의 한가운데서 시작되고 끝난다. 그리고 그 겨울 속에서 불을 들고 움직이려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찬찬히 드러낸다.
얼어붙은 땅과 눈으로 뒤덮인 나무, 드넓은 사막 등 영화는 거대한 자연의 모습을 담아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중력 같은 힘, 광활한 자연. 그러한 자연의 땅 위에서 인물들은 그저 묵묵히 걸어간다. 바람이 불어도, 눈이 내려도, 꿋꿋하게 걷는 그들의 모습은 그들이 향할 미지의 땅,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은 땅을 밟고 산다. 땅은 사람의 터이고 그곳을 잃어버리면 그들이 살 곳은 사라진다. 그렇기에 일제가 식민지화한 대한의 땅은 독립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독립운동가들이 밟고 지나간 땅 위에선 죽은 자와 산 자가 극명히 나뉜다. 영화에서 산 자는 안중근 의사이다. 다만 이미 죽은 독립운동가들은 그 땅에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안중근 의사의 뒤로는 무수히 많은 동지들이 존재하고 그 역시 그들의 존재를 잊지 않는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현 상황에도, 영화 <하얼빈>에서도 물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을 먼저 떠난 이들이 살아있는 이들을 구할 수 있는가. 죽은 동지들이 독립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다양한 인물 군상이 나온다. 독립을 위해 움직이는 독립운동가와 이미 그들을 떠나간 독립운동가, 그리고 그들을 배신한 채 살아남기 위한 밀정……. <하얼빈>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밀정이 된 이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줌으로써 그가 밝힌 불을 조명했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안중근 의사는 쉽게 목숨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동지들의 불만이 있음에도 일본인을 살려두고 밀정을 죽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결정에 의문이 들었다. 밀정 ‘김상현’에게 기회를 주자는 말이 과연 옳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말을 보고 ‘김상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독립운동가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 자연히 갖는 두려움, 극한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그려졌다고 느꼈다. 만약에 나였다면, 저 상황에 부닥쳤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김상현’이 마지막에 했던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더욱 인상 깊었다. 김상현에게 기회를 준 것은 안중근 의사의 결정이었고 김상현이 행동하게 만든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었다.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진 이 땅 위에서 살아간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겨눴던 총, 그 총의 방아쇠를 당긴 건 안중근 의사 한 명이지만 그러한 순간을 만든 것은 그 땅을 밟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이었다. 그가 외쳤던 ‘코레아 우라’는 하늘에서 듣고 있을 독립운동가를 위한 외침이었을 것이다. 또한 하늘로 떠난 독립운동가를 위한 총성은 아직 숨이 붙어있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들려주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불을 밝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은 빨갛다. 그리고 밝다. 어둠 속에서 눈에 들어오고 불을 쫓아 사람이 모인다. 사람이 모이면 희망이 생기고 그 희망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불은 우리의 목소리이고 염원이다. 영화 <하얼빈>의 계절은 겨울이기 때문에 푸르고 무거운 분위기가 지속된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눈발 위에서 안중근의 총성은 그가 밝힌 불이 되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독립운동가들이 밝혔을 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2025년 1월도 <하얼빈>의 계절과 같은 겨울이다. 12월부터 시작된 눈발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불을 들어 여전히 겨울을 밝히는 중이다. 하얼빈에도 봄이 찾아왔듯 우리에게도 봄이 찾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 봄이 올 때까지 불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