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말은 사람을 이어주기도, 끊어내기도 한다. 말로 성공하기도 하고, 말로 실패하기도 한다. 말로 따뜻함을 느끼기도, 말로 인해 상처 받아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세상에 말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누구나 실수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말이 지닌 참뜻을 모르고 사용하기도 하여 특정 집단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요즘에는 말로 인한 갈등이 더욱 심화하여, 다양한 집단 간의 갈등이 더 심화하고 있는 것 같다. 다 같이 잘 지내면 좋으련만, 그 장벽이 말로 인해 점점 더 높아져만 가는 것 같다. 말에 대해 세상이 예민해진다는 것은 물론 좋은 징조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한다는 뜻이며, 차별 언어의 사용이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의 징조가 양날의 검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왜 사용하면 안 되는지, 그 원인을 모르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배척하기도 한다. 나 또한, 나에게 좋은 뜻으로 말한 것임을 앎에도 기분이 나빴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넘겼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그 사람에게는 악의가 없었는데, 내가 설명을 해 줄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나 혼자 멀어질 필요까지 없었던 것 같다이 책은 우리를 둘러싼 말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장 최신의 사례들을 활용하여 재미있게 설명한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내 스스로를 반성해 보기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게 되기도 하였다. 마음속 소용돌이를 품으으며 읽는 에세이는 따뜻하고도 강렬했다. 이 책을 읽다가 보면, 말들을 더 사랑하고 포용하게 될 것이며,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나이를 불문하고 한 번씩 읽어보면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에 일조하고 싶어질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었던 구절들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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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혹시 본인이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타입이라고 생각해? 진짜 잘 들어주는 사람은 상대가 치기 쉬운 공을 먼저 던져 줘. 너는 상대의 눈치만 보면서 공을 안 던지니까 상대 가 배려해서 화제를 만들어주는 것뿐이야. 그럼 네가 대화 의 공을 던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네가 상대에게 관심이 없어서야." (...) 지인으로부터 조언을 받고도 나기는 한동안 슬럼프를 겪게 된다. '그래, 그럴 수 있어'라는 추임새만 잘 넣으면 공감을 잘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공감의 추임새가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은 건 그가 진심으로 '맞아!'라고 외치게 된 순간이었다. 공감은 진심으로 이해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것이었다."]

 

진짜 공감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장이었다. 그저 추임새만 잘 넣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 혹시 내가 껍데기 뿐인 공감으로 상대에게 미미한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요즘에는 생성형 AI에게도 공감을 해달라고 하면, 상황에 맞추어 공감의 언어를 보내준다. 차가운 기계의 공감과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우리의 공감이 다른 점을 생각해 본다. 점점 차가워지는 인간들과, 따뜻함까지 장착해 가는 기계가 공존하는 세계를 살고 있다. 좋은 사람들은 언제나 진짜의 사랑과 따뜻함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알아본다.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에 걸맞은 기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줌마’라는 이름을 긍정할 때


 

["‘아줌마'라는 이름이 가진, 잊고 있던 모습들이다. 억척스러움, 엉뚱함, 단순함, 정이 넘쳐나다 못해 꾸덕꾸덕 묻어나오는 면면을 다시금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예찬의 시선이다."]

 

굉장히 센세이션했던 장이었다. ‘아줌마’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장이다. 간혹 버스, 지하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거나, 물건의 가격을 조금이라도 흥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50대, 60대 여성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던 적이 있는가? 솔직하게, 나 또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아줌마’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는 사건들 또한 인터넷에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이러한 억척스러움의 보호를 받고 자란 사람이다. 우리 엄마를 포함한 ‘아줌마’ 들은 자식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으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장착한 생활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 엄마도 우리한테 맛있는 것 하나 더 먹이려고 회사에서 받은 물건들, 음식들을 본인이 하지 않고 가져오신다. 가끔 유명인 혹은 유명한 노래의 이름을 잘못 말해서 나와 동생이 엄청 웃기도 하지만, 그 엉뚱함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그 나이대 여성들의 특징이 때로는 사랑스럽다. 그러한 아줌마들의 기질들을 나쁘게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

 

‘아줌마‘라고 불리는 사람들, 정말 정 많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먼저 섣불리 판단하여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장이었다.

 

책에서는 아줌마를 사랑스럽게 보는 관점을 담은 영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안 좋게 보기 이전에,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연습을 더욱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떼’를 말하며 얼굴을 붉힌 까닭


 

["우리에겐 옛것을 이야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기에. 통신기의 형태는 계속해서 변화했을지언정 기계를 관통해 온 정서 자체엔 변함이 없기에. 그리움, 설렘, 기다림, 약속의 무게와 책임감 같은 것들. 어쩌면 수많은 라떼와 꼰대들이 갈구하는 건 그 시절의 '삐삐'가 아닌 그때나 지금이나 유효한 인간의 '정서'가 아니었을까."]

 

SNL 등의 프로그램에서 신입사원들에게 본인 시절을 이야기를 하며 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들을 희화화한다. 그러면서 ‘라떼’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MZ세대로서, 이러한 단어가 생성된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였다. 없어져야 할 문화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 맞기에.

 

하지만 옛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다시금 LP와 줄 이어폰을 찾고, 옛 노래를 다시 듣는 젊은 세대들을 생각해 보면 조금은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이야기로 젊은 세대를 곤란하게 하는 것은 잘못되었으나, 지켜가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절에 외할아버지 댁에 가면 항상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신다. 6.25 때의 이야기, 할아버지가 교사였을 때 체육대회를 준비하시던 이야기 등.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재미없었다. 말이 많은 할아버지는 나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하지만 들을 수록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반짝임,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또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들을 공유해주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장을 읽으며 옛날이야기들은 사실상 도파민 가득한 세상 속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물론 괴롭힘의 의도가 분명히 섞인 옛날 이야기들은 걸러서 들어야 하는 것이 맞다. 세상에 좋은 어른들만 있는 것은 아니고 나는 내가 지켜야 하는 게 맞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내게 진짜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상식에서 벗어나는 단어를 맞닥뜨렸을 때


 

["차별 언어란 어쩌면 그러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명 백히 잘못된 언어를 발설하는 것과 그 잘못된 언어를 지적하는 일엔 거쳐야 할 시간이 존재한다. 물론 위트를 섞어 상대방이 무안해하지 않는 선에서 조곤조곤 잘못된 점을 전달할 수 있다 면 이상적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런 침착함과 현명함 은 없었다. (...) 아마도 고민의 지점은 ‘못 쓰게’ 하는 것이 아닌 “안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만큼의 세계를 더 알고있는데 당신은 고작 그 세계에 머물러 있는가, 라며 상대를 억누르는 듯한 눈초리는 모름지기 전달되기 마련이다."]

 

무례한 언어로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화를 내서 알려주거나, 재치 있게 알려주는 상상을 한 적이 많다. 작가 또한 일본 여행 도중 ‘조센징’이라는 호칭 앞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회상하며 이 장을 작성했다.

억지로 특정 차별어를 쓰지 않게 만들기보다, 쓰지 말아야 할 이유를 각인시켜, 스스로 쓰고 싶지 않게 만드는 나만의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언제나 강제성보다는 ‘교육’과 ‘깨달음’의 힘이 더욱 크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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