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대에게 편지를 써보고자 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편지를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나의 마음을 정리해서 편지지에 빼곡히 채우고 나면, 경건한 마음으로 펜을 잡았던 손에서 비로소 긴장이 사르르 풀리고. 그 무게를 미처 가늠하진 못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더라고요. 어느 날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르는 상대에게 편지를 써보는 게 어떨까.'
이미 많은 공간에서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편지를 남기고, 누군가가 이미 남긴 편지를 한 장 가져가는. 저도 꼭 가보고 싶어서 가고 싶은 장소 목록에 저장해두었습니다. 미리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생각도 해보았어요.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가?” “사람들은 어떤 글을 읽고 싶어 할까.”
저 같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더라고요. 타인은 요즘 어떻게 살아가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고민이 있는지. 열심히 나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문득 궁금해지더라고요. 글에는 이야기가 담겨있지요. 꼭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글에는 사람이 묻어납니다. 그 사람을 닮은 글씨체, 다정한 문장에 담긴 마음씨, 가치관, 자신도 모르게 글에는 흔적이 남죠. 오늘 저는 오랜만에 대학교에 합격하고 새로운 도시에서 생활하게 될 저를 위해 고등학교 친구가 써준 편지를 읽었습니다. 글 너머의 사람을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읽어내려가는 저의 표정은 오늘도 매우 밝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나요? 그래서 저는 요즈음 어떻게 살고 있냐면요, 졸업식을 앞두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하루하루 고민하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졸업을 위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막상 목표를 이루게 되니 시원하면서도, 이상해요. 정말 나의 삶은 이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리 흘러가겠다는 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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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가 되니, 주변 사람들이 대학 졸업하면 뭐 할 건지 물어보곤 해요. 제가 내놓은 답변은 여러 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순간을 모면하려고 아무런 직업군이나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배우는 속도에 상관없이 음악에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선생님, 이야기를 쓰는 작가, 멋진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게끔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는 기획자, 그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마케터. 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던 거죠.
한 번은 운전면허 학원에서 도로 연수를 받을 때였습니다. 시험 코스를 돌아보고, 학원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어요. 차 안은 자연스럽게 졸업 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갔습니다. 그날은 이것저것 뭐든지 전공을 살려서 해보겠다고 한 것 같아요. 안정적인 수입을 갖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 직종이라, 기회가 온다면, 아니, 기회를 찾아서라도 먹고 살아보겠다고요.
그러자 강사님은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그럼 꿈이 뭐에요?" 저는 “네?” 라고 반문하고, 앞서 말한 직업군 중 하나를 얘기했습니다. 집에와서 생각해보니 꿈과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은 같을 수도 완전히 다를 수도 있잖아요. 무엇을 할 것인지와 더불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물어봐주셔서 강사님께 참 감사했습니다.
강사님도 중년의 나이지만 여전히 꿈을 꾸고 계셨습니다.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고 계셨어요. 요즘은 자기를 드러내는 시대라고 하시면서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말씀하실 때 살짝 찡그린 얼굴을 하시면서도, 선생님의 눈동자는 열정으로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어렸을 적, 꿈은 무조건 직업으로 표현하곤했는데, 성인이 된 이후 지금은 그 범위가 더욱 넓어졌습니다. 조금 더 구체화됐달까요. 내가 추구하는 삶의 영역 안에 있는 세부요소들, 즉 가치관, 직업, 건강 등을 다 꿈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단순히 몽상가로 남고 싶지 않기에 꿈을 꾸면서도 현실을 살아가는게 저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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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제 사회 초년생의 나이로 접어들다 보니, 편지의 대부분이 진로와 삶의 방향에 관한 이야기 같네요? 저는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올여름 처음으로 사 먹은 콩국수의 매력에 빠진 이야기, 거실 에어컨이 고장 나서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던 이야기 등 말이죠.
친구들과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을 나누다 보면 공통으로 나오는 얘기가 있어요. “청소년기엔 대학 걱정, 졸업하고는 취업 걱정, 결혼, 자산운용, 노후 걱정…. 대체 언제쯤 여유가 생겨?” 어떤 고민은 도통 답이 나오지 않아 평생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어떤 고민은 소기의 목적을 이룬 후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잠시나마 크게 몰려오는 기쁨에 겨워하면서, 때로는 투덜거리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삽니다. 살아냅니다.
편지를 쓰다 보면 항상 분량 조절에 실패합니다. 문장이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종이의 마지막 칸을 채워갈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편지지 뒷장에 말을 이어갑니다. 그 문장들은 때로는 논리정연하지만, 때로는 참 두서없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함께 해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다가, 갑자기 그때 먹던 떡볶이 이야기를 하고, 밀떡과 쌀떡 중 무엇을 좋아하냐는, 아, 그럼 탕수육은 부먹파냐 찍먹파냐… 등등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튀곤 하지요. 하지만 그조차도 편지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상대방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읽어 내려가는 활자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모험을 따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이 편지를 쓸 때는 여느 때보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렸습니다. 이 얘기를 했다가 저 얘기를 했다가, 생각나는 대로요.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잘 읽으셨습니다. 혼란스러운 제 머릿속을 그대로 옮긴 거니까요, 하하.
이 인터넷 공간에 이제 편지를 부치고자 합니다. 발신인은 저 하나지만, 이 편지를 보시는 분은 여러 분이시겠죠? 이제 이 편지는 제 손을 떠났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더욱 편할 때가 많죠? 저에게 답장을 보내주세요. 요즈음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참, 답장은 자유로운 방식으로 남겨주세요. 에디터분이시라면 이 공간에 남겨주셔도, 댓글로 남겨주셔도,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넘기셔도, 다 좋습니다.
부치지 못할 편지라도 좋습니다. 저에게 쓴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담긴 이야기가 있다면 덜어내 주세요. 종이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 주세요. 부치지 않으셨어도, 저는 이미 받았습니다.
편지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읽어주실 분들을 상상하며 저는 이미 답장을 받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