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과 '기록' - 제24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네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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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서울국제대안영상페스티벌이 8월 1일부터 7일까지 KT&G 상상마당, 서울아트시네마 등지에서 열렸다.
통칭 네마프는 대안영화, 디지털영화, 실험영화, 비디오아트 등 평소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영상부터 다큐멘터리, 실험적이고 새로운 형식의 영상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영화제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안영화제인 네마프는 올해 30여 개국 87편이 상영, 멀티 스크리닝 전시되었다.
그중 올해의 주제인 '박제된 데이터, 떠도는 기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데이터로 재환원되는 장소성' 섹션의 네 작품을 감상했다.
산책자들(Two flaneurs in Gajaeul) - 두 명의 창작자가 산책자가 되어 재개발 예정 구역인 남가좌동 가재울로의 골목을 거닌다. 영화는 횟집 수조 속 물살이를 클로즈업 한 장면에서 시작하여 골목을 구석구석 누빈다.
나고 자란 곳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는 삶과 미로와 미궁의 차이, 양자 얽힘, 젠트리피케이션 등 두 산책자 사이에 산책에서 촉발된 많은 대화가 오고 간다. 콜라병으로 만드는 음악 소리와 함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날 것 같은 골목의 모습이 담긴다. 많은 게 빠르게 허물어지고 세워지는 서울에서 예전의 풍경을 간직한 가재울로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나온다.
검은 바람(Black Wind) - 염소의 눈, 허공에 흩날리는 가루들, 그리고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 무리의 이미지가 하나의 에세이 비디오를 이룬다. 3분 6초의 짧은 찰나에 폭발하듯이 펼쳐지는 감각적인 이미지들은 흑백과 대비되게 생동감이 넘친다. 흩날리는 입자들의 움직임이 철새들의 움직임과 연결되고, '우연'과 '운명'이 스친다. 세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면들 속에서 어떠한 징후들을 읽어내고 연결하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비슷한 골목(Similar Alley) - <비슷한 골목> 속에 등장하는 골목의 이미지들은 덧붙여지고, 확장되고, 축소되며 우리의 기억 속에서 금방이라도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익숙한 풍경을 보여준다.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이 되었다가, 갈림길이 되었다가, 어느 집 대문이 되었다가, 쭉 뻗은 길이 되는 '비슷한 골목'의 이미지는 동시에 사라졌고, 사라져가는 골목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가재울로이지만 가재울로에 한정되지 않는 골목 풍경의 연속은 개인이 가진 기억과 실제 기록이 공명하는 경험을 만들어낸다.
레너드 기억법 예제(An example of Leonard’s methods for memorization) - 건물 외벽, 골목의 일부 등 이미지 데이터 조각들이 세포처럼 우글거리는 화면이 펼쳐진다. 각각의 데이터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듯이 푸른빛이 되었다가 베이지색이 된다. 하나의 모자이크 작품 또는 이 자체로 하나의 생명력을 가진 것 같은 화면은 지도에 길이라고 나와 있지만 로드뷰가 없는 남가좌2동 337-8번지를 촬영한 사진의 모음이다.
음악 분야에서 쓰이는 레너드 방식(Leonard’s methods)을 차용한 것일까, 새롭게 느껴지는 레너드 기억법이라는 단어는 곧 현재가 될 미래의 상실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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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재울로가 있는 서대문구 어딘가에 산다. 부동산 중개업자 분의 말씀을 빌리자면 '서울 속의 시골'인 일대의 지역은 우리가 흔히 '서울' 또는 '도시'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풍경과 거리가 멀다.
이사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추억 속의 풍경을 다시 만난 설렘에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고, 버스 1~2 정거장만 지나면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된다. 실존하는 문제들을 덮어놓고 마냥 감상적인 말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몇 가지 확실한 것도 있다. 누군가 집 앞 골목에서 텃밭을 꾸리고, 고양이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며, 작은 슈퍼들이 남아있는 이런 동네가 좋다. 부러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아도 이미 그 자리에 존재하는 자연의 풍경이 있는 동네가 좋다.
'데이터로 재환원되는 장소성' 섹션의 대부분 작품이 서대문구 특정 장소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장소뿐만 아니라 시간 또한 맞아떨어져야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법. 앞으로 몇 년간 이곳의 풍경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예전과 다르게 변한다 해도, 그래서 특정 장소들이 기억 속에만 남는다 해도 여기 기록이 남아 있다.
카메라, 그리고 영상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과거의 모습을 미래로 전한다.
[안소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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