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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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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일을 마치고 퇴근한 이후에도 소위 업무 스위치가 쉽게 꺼지지 않는다고 종종 동료들과 얘기한 적 있다. 저녁을 먹거나 쉬면서도 업무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며 이건 어쩌지, 저건 어떻게 하지 자기도 모르게 떠올리며 온전히 쉬지 못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애플 티비 오리지널 시리즈 <세브란스: 단절>은 사람들의 이런 고충을 반영한 듯이 업무 시간의 ‘나’와 일하는 시간의 ‘나’를 분리하는 단절 시술이 상용화된 세계를 보여준다. 다국적 대기업인 ‘루먼’의 단절 층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 시술을 필수적으로 받는다. 사생활과 직장 생활을 철저히 분리하는 이 시술은 일하는 ‘나’는 바깥의 ‘나’가 뭘 하는 사람인지, 가족이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모른다. 반대로 회사 바깥의 ‘나’는 회사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간단히 말해, 한 사람의 일하는 자아는 평생 회사 바깥을 볼 수 없으며 퇴근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회사 생활을 하는 ‘이니’와 사적인 삶을 사는 ‘아우티’는 과연 같은 사람일까? 내가 원한다고 생각한 일들이 과연 나에게 좋을까? <세브란스: 단절> 속 세계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건 사고들로 가득하다.

 

 

 

회사를 배경으로 한 도시 괴담 또는 부조리극


 

수직, 수평으로 뻗은 커다란 루먼 인더스트리 건물 안에서도 단절 층은 유독 황량하고 공허한 느낌을 준다. 단절 층의 데이터 정제팀에서 일하는 마크와 동료들은 암호화된 숫자들을 보면서 그중에 무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숫자들을 삭제한다. 암호화된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숫자들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알지 못한 채 무수한 추측만이 난무한다. 그리고 바깥세상을 알지 못하는 업무 자아 ‘이니’들이기 때문에 현재 세상이 어떤지도 추측할 뿐이다.

 

어느 날 마크는 친한 동료이자 팀장이던 피티가 갑자기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이에 따라 데이터 정제팀의 팀장이 된 마크가 난생처음으로 신입사원을 맞이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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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루먼’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어딘지 기괴하고 섬뜩하다. 직원들이 회사나 업무에 관해 의문을 가질 때마다 주의를 돌리려는 것처럼 벌어지는 각종 사무실 이벤트와 보상들, 그리고 상담 세션. 회사 바깥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하는 직원들을 위해 마련된 상담 세션에서 상담사는 “당신의 아우티는”으로 시작하는 온갖 좋은 말을 들려준다. ‘루먼’의 이런 직원 복지는 망가질 것 같은 사람들을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임시 방편들이다. 듣기 좋은 말,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반복되는 상담 세션을 비롯한 이벤트들은 회사에 무언가 어두운 속내가 있음을 암시한다.

 

직원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단절 시술을 받지 않은 관리직 직원들을 비롯하여 회사의 타 부서들의 존재감도 기이한 분위기를 불러온다. 마크를 비롯한 데이터 정제팀 직원들은 회사와 자신들의 업무에 수상함을 느끼고 같은 단절 층의 다른 부서를 알아보기로 한다. 대기업 특성상, 그리고 광활한 회사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에 무슨 부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기에 시작된 탐색이다. 이 탐색을 통해 주인공들과 시청자는 회사에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자자한 부서는 그저 디자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존재를 알 수 없는 아기 염소를 키우는 부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루먼’의 수상함은 그 창립자로부터 시작된다. 마치 신화나 창세기처럼 전해지고 기록되며 직원들에게 꾸준히 주입하려 하는 창립자의 사상과 이야기는 단순히 회사가 아닌 컬트 집단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한다. 네 가지 기질을 다스리고 극복하여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는 창립자의 이야기는 관리직 직원들을 통해 더욱 강렬히 전해진다. 창립자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묘사한 그림을 본인 얼굴로 바꾼 선물을 받고 기뻐하며, 자기 집에 창립자의 제단 같은 걸 마련해 두고 기도를 올리는 고위직 직원들을 보면 ‘루먼’은 점점 수상하게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가질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대기업 역시 ‘루먼’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 않나? 초라하고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머쥔 창립자의 이야기, 자서전, 유튜브 영상들은 과장되게 말하자면 컬트적인 구석이 있다. 주기적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펼치는 사무실 이벤트들, 회사와 관련된 단체 선물들은 비리를 감추려는 ‘루먼’의 의도와 다를 수 있지만 회사가 작동하는 원리 중 하나다. 현실의 시청자들은 어디서부터 컬트이고 어디까지 회사 생활인지 질문하게 된다. 회사를 비롯한 단체 생활의 컬트적 면모와 전체주의적 면모를 돌아보게 되는 부분이다.

 

 

 

나는 둘이 될 수 있나


 

<세브란스: 단절>을 흥미로운 시리즈로 만드는 요소는 회사뿐만이 아니라 둘이 되어버린 ‘나’에도 있다. 단절 층의 직원들은 각기 다양한 이유로 단절 시술을 받았다. 일하는 동안에는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위해, 바깥에서는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그리고 시즌 2에 이르러서 밝혀진 그 밖의 비리와 관련된 이유다.

 

이야기 속 사회는 단절 시술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다. 평생 바깥을 보지 못하고 일만 하는 자아 ‘이니’를 반인권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생긴다. ‘이니’와 ‘아우티’는 같은 사람인가?

 

‘이니’와 ‘아우티’는 같은 몸에 긷든 두 개의 자아다. 업무 중에 부상을 당하면 퇴근하면서 부상의 이유가 쓰인 카드와 식사권 같은 보상을 받는다. 한 편으로는 ‘이니’가 여기서 일하고 싶지 않다며 그만두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영상을 찍어 ‘아우티’에게 보낸다. 이에 대한 ‘아우티’의 답신은 ‘넌 사람이 아니다.’였다. ‘이니’는 사직의 자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정말로 두 자아가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더불어 사직하면서 일하는 자아가 사라질 경우, 죽음이라고 봐야 할까?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이토록 잔혹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에 그럴 수 있구나 싶은 현실 세상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특정 시기나 시간을 희생하면서 뭔갈 성취하려 하고, 살면서 스스로에게 안 좋은 것을 원하거나 강요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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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미술가 제니 홀저의 작품 "Protect me from what I want"

 

 

시리즈 안에서 한 가지 다른 예시가 등장한다. 주인공 마크의 여동생 데번은 출산을 앞두고 아기 캠프에 머무른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다른 산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고, 아기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듣는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캠프 바깥에서 그 산모를 다시 마주친다. 출산을 무사히 마치고 서로 아기를 안은 채다. 데번이 그때 산모에게 들었던 아기 이름을 말하며 아는 체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기 이름은 그때와 전혀 다르고. 이에 의문을 가진 데번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산모가 단절 시술을 찬성하는 국회의원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타인의 신체를 착취해 출산하는 대리모가 떠오르는 사례인데, 이 경우는 자신의 몸이라는 것이다. 다만 자아가 다르다. 출산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자아, 출산 이후에 사라지는 자아는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한 사람이 둘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싶던 짐작은 앞선 ‘루먼’의 풍경과 더불어 산모가 지어준 다른 아기 이름으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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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몸에 두 개의 다른 기억이 쌓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쪽은 기억이 쌓인다기보다 언제든 치워질 수 있다. 극도로 다른 두 개의 기억이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하고 점점 갈라지는 풍경을 비추는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시즌 2의 다음 화를 기다리게 된다.

 

<세브란스: 단절>은 회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 현실의 모습과 유독 닮은 구석구석이 마음을 찌른다. 쉬는 날에도 일 생각을 하며 심란해하거나, ‘워라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고민해 보거나,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강요해 본 적 있다면 누구나 생각할 거리를 잔뜩 떠안게 된다. 일하는 나와 그 밖의 삶은 정말 분리될 수 있나? 시리즈 속 풍경은 단절 시술을 활용해서 회사의 비리를 숨기는 ‘루먼’이지만 아이디어의 핵심인 ‘둘이 되어버린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춰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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