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거의 물길을 트는 법, 바다의 뚜껑 [영화]

글 입력 2024.06.30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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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동네에 대한 기억이다.

 

과거에 살았던 곳은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추억을 다시 경험할 수 없다는 건 아쉽다. 마리와 하지메 모두 자신의 추억이 담긴 것들에서 상실감을 느낀다. 마리는 변해버린 고향을 보고, 하지메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속도에 적응하는 우리들은 한없이 느리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변화를 나 한 사람이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추억을 간직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아간다.

 

마리와 하지메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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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뚜껑>은 고요한 바닷가 마을에서 조우한 마리와 하지메의 우정과 상처의 회복을 그린 작품이다.

 

삭막한 도시의 삶에 지친 마리, 그리고 화재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할머니를 여의고 깊은 상흔을 안게 된 하지메. 이 둘이 함께 꾸려가는 자그마한 빙수 가게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이 서로를 힘껏 끌어안는 장면이 빈번히 등장한다. 상대방의 어깨를 포근히 감싸 안는 몸짓에는 '너의 아픔을 내가 따스하게 품어줄게'라는 다정한 메시지가 생략돼있다. 그들의 끈끈한 우정에 가슴 한 편이 저릿하게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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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뇌리에 남는 장면은 바다가 두려운 하지메를 천천히 인도하는 마리의 모습이다. 모래사장에서 망설이는 하지메에게 "괜찮아 바다는 상냥하다"고 다독이는 마리의 편한 미소가 좋아서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마리의 손을 힘껏 부여잡고 한 발짝씩 나아가는 하지메.

 

화상흉터에 닿는 바닷물이 쓰라릴 텐데도 밝게 웃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응어리진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흉터 따위가 날 옭아매지 못한다는 확신처럼 느껴진 건 그저 기분 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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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들은 소멸하는 것들에만 집착하지 않고, 새로이 만들어 내는 일을 지속하기로 다짐한다. 원망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뜻이 맞는 이가 있다면 서로의손을 맞잡고 자그마한 꿈을 이뤄내면 그뿐인 것이다. 사라지는 것을 놓아주는 것 또한 추억에 대한 도리였다.

 

고통을 극복하고 스스로 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높은 둑을 무너뜨리고 과거가 흐를 수 있는 물길을 터, 소리 없이 강한 마음이 스며들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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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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