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대 위 경계를 넘어 [공연]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젠더프리 캐스팅이 가지는 의미
글 입력 2024.05.1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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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만에 재연으로 돌아오는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캐스팅이 공개된 후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남성 배역인 ‘헤르메스’ 역에 한국 프로덕션 최초로 여성 배우인 최정원이 캐스팅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에서 헤르메스 역에 여성 배우를 기용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의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데스타운 최정원.jpg

 

 

젠더프리 캐스팅이란 배우의 성별과 관계 없이 배역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당초 기획 단계부터 성별이 고정되지 않은 배역으로 설정하거나, 특정 성별로 고정된 배역의 경우 다른 성별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남성인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하는 연극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 역할을 여성 배우인 차지연이 연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계를 넘어: 젠더프리와 캐릭터프리


 

소극장 뮤지컬계에서는 수적으로 많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젠더프리 캐스팅이 이루어져 왔다. 뮤지컬 <해적>, 연극 <오펀스>, 뮤지컬 <데미안> 등 상당수의 연극/뮤지컬 작품들이 배역의 성별과 관계 없이 배우를 기용하는 젠더프리 캐스팅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뮤지컬 <해적>과 <데미안>은 젠더프리 캐스팅을 넘어 한 배우가 정해진 고정 배역 없이 싱클레어와 데미안이라는 두 캐릭터를 돌아가면서 연기하는 ‘캐릭터 프리’ 캐스팅까지 시도하며, 무대 위의 또 다른 경계를 지워나가고 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데미안>의 경우, 배우들이 고정된 배역 없이 회차에 따라 싱클레어와 데미안 두 인물을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뮤지컬 <해적>에서는 배우 한 명이 각각 남자와 여자 캐릭터를 한 극에서 모두 소화하며 젠더프리와 캐릭터프리를 동시에 시도하기도 한다.


연극 <오펀스>의 한국 프로덕션을 담당한 김태형 연출가는 <오펀스>에 젠더프리 캐스팅을 도입하면서 이 이야기가 여성도 남성도 아닌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했다. 때문에 약 30년 간 등장인물 3명이 전부 남성 배역으로 캐스팅되어 온 <오펀스>의 원작 작가를 설득해 한국 프로덕션 재연 당시 최초로 젠더프리 캐스팅을 성사시켰다.


이렇듯 경계를 넘어 다양성을 추구하는 젠더프리 캐스팅은 반전된 성별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할 때의 새로운 시너지를 생산하고, 작품이 가진 해석의 지평을 더욱 확장해 준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여성 캐릭터 위주의 서사가 비교적 적은 극 장르에서 여성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며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큰 중요성을 갖는다.


주로 남성 주인공 위주의 서사가 많은 극 장르 작품들에서 여성 캐릭터는 이분법적인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로 남성 배역을 보조하는 역할로서 소모적으로 소비되어 왔다. 때문에 젠더 프리 캐스팅은 배역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던 여배우들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고, 나아가 더욱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하데스타운>의 젠더프리 캐스팅이 가지는 의의


 

소규모 연극/뮤지컬 작품에서 젠더프리, 나아가 캐릭터 프리 캐스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데 반해, 대극장 뮤지컬 작품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실정이었다. 특히 대부분 5~10년 이상 오랜 기간 유사한 레퍼토리로 공연되어 온 만큼, 대극장 뮤지컬 작품들에서는 전반적으로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와 남자 주인공 위주의 서사라는 틀이 다소 고착화되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하데스타운>의 최근 사례는 배우와 역할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시도가 미미했던 대극장 뮤지컬계에서 젠더프리 캐스팅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로써 우리는 젠더프리 캐스팅이 소극장 극 작품들을 넘어 대극장 작품들에도 이전보다 활발히 도입되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온 대극장 뮤지컬 작품들의 경직되고 구시대적인 캐릭터 및 서사 구조가 젠더프리 캐스팅, 캐릭터 프리 캐스팅 등 새로운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보완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잃어버린 사랑과 꿈의 회복을 노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헤르메스는 이야기의 전달자이자 적극적인 관찰자로서, 전달자와 관객의 입장을 넘나들며 인물들에 이입하거나 그들의 선택에 개입하기도 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오르페우스를 아끼는 마음과 그의 잘못된 선택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 그리고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다시 한번 노래를 시작하는 굳은 의지와 희망을 전달하는 헤르메스는 결국 남성과 여성을 떠나 우리네 삶에 맞닿아 있는 한 '사람'의 표상이다. 배우 최정원이 만들어나갈 헤르메스와 함께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새롭게 확장해 갈 <하데스타운>이 기대되는 지점이다.

 

 

 

이소영.jpg

 

 

[이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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