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존재의 끝없는 아이러니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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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불행이다.
끝없는 불행의 연속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일까?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불꽃같은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인생과 고통에 대해 고뇌하는 한편, 빛나는 재능으로 시대를 앞서나간 시를 쏟아냈던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
문학계의 악동 아르튀르 랭보와 그의 연인이었던 폴 베를렌느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뮤지컬 <랭보>가 사연으로 돌아왔다.
뮤지컬 <랭보>는 프랑스 문학계에 전례 없는 스캔들을 일으켰던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단순히 자극적인 서사에 집중하기보다는 문인으로서 그들의 교류와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랭보>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희망과 절망의 아이러니
랭보와 베를렌느는 인간적, 문학적 교류를 통해 서로 관계를 맺고 시인으로서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특히 유부남이었던 베를렌느는 아내와 자식을, 랭보는 고향의 어머니를 떠나 몇 차례에 걸쳐 함께 시 쓰기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며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베를렌느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랭보의 공허함과 이해받고자 하는 열망을, 랭보는 매너리즘에 빠진 채 관습과 규율 속에서 좀처럼 스스로 인정할 만한 시를 써내지 못하는 베를렌느의 창작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었다. 그러나 처한 상황도,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도 달랐던 둘은 계속해서 갈등하고, 벨기에에서 베를렌느가 랭보의 왼손을 총으로 쏘는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갈라진다.
랭보와 베를렌느는 서로에게 희망이자 절망이라는 아이러니였다.
랭보는 그의 복잡하고 상징적인 시를 이해하는 베를렌느에게 끌렸고, 새롭고 독창적인 시를 더 이상 써내지 못하던 베를렌느는 관습을 거부하고 훌륭한 시를 쏟아내는 랭보에게 끌렸다. 랭보에게 베를렌느는 문학적 성장과 더불어 개인적인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희망이었고, 반대로 베를렌느에게 랭보는 새롭고 충만한 시를 쓸 수 있는 희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함께가 된 두 사람은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절망이 된다. 베를렌느는 자신만의 언어로 강렬하고 새로운 시를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랭보를 보며 스스로의 시를 초라하다 여기고, 시인으로서 가진 스스로의 한계에 직면하며 고뇌한다. 한편 이해받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던 랭보는 베를렌느와의 갈등 이후 사실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은 적 없다는 생각에 절망한다. 영혼의 단짝처럼 보였던 둘은 이렇게 각기 다른 존재론적 고뇌를 겪는다.
결국 베를렌느가 랭보의 손에 총상을 입히는 사건을 계기로 랭보가 절필을 선언하며, 베를렌느를 통해 시작된 ‘시인’ 랭보의 삶은 또 한번 베를렌느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된다. 특히 직접 초판 서문을 쓴 랭보의 시집 <일뤼미나시옹>을 비롯해, 랭보의 절필 이후 그의 작품 몇몇이 베를렌느에 의해 출판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랭보에게 베를렌느는 시인으로서 삶의 시작과 끝, 그리고 뜻하지는 않았지만 예술적 영속이었던 셈이다.
진정한 시
랭보는 시인은 모든 제약과 통제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는 투시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습과 규범,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는 언어라는 틀에서도 탈피하고자 했다. 직관적인 언어가 아닌 상징을 통해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함으로써, 시 속의 대상에게 자유를 주었다.
극 말미 베를렌느와 들라에는 결국 아프리카에서 랭보의 마지막 시를 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진정한 시’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의 마지막 시는 아프리카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을 담은 일기에 가까웠다. 상징도, 아름다운 시어도 아닌 일상의 말과 현실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글이었다.
결국 파란만장한 삶을 보내며 랭보가 찾아낸 진정한 시는, 그 어떤 거짓도 없는 삶의 민낯이었다. 어딜 가든 세상은 고통이라는 진리와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삶을 살아가겠다는 생존의 의지가 바로, 투시자로서 그가 발견한 세상의 본질이자 시가 담아내야 할 내용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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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강렬한 불꽃과도 같았던 인간 랭보의 삶과 그보다도 더 짧았던 시인 랭보의 삶은 그의 순수와 파격적인 열정을 오롯이 담은 시를 남겼다. 그리고 그가 고뇌와 방랑을 통해 발견한 시는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진정한 시를 찾아 헤매던 방랑자의 여정이 그에게도 성공이었기를.
[이소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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