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멜버른에서 만난 한국의 인연 (1)호주 대학생이 된 우리들

열여덟에 만난 대학 신입생들, 5년 뒤 호주 대학생으로 재회하다
글 입력 2024.04.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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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달리 호주에는 대학교 학기 중간에 방학 기간이 있다. 탄탄한 교수진과 커리큘럼뿐만 아니라 중간 방학을 준다는 장점들이 연달아 매력적이다. 무려 약 2주간 수업을 하지 않고 휴식기간이 주어지니까. 이때를 잘 활용한다면 호주 전역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가 있어 말 그대로 '꿀 방학' 그 자체다.

 

이번 중간 방학에서는 멜버른과 퍼스를 다녀왔다. 원래 퍼스는 기숙사 친구들과 가기로 먼저 약속했는데, 고민 끝에 멜버른을 2박 3일 앞서 먼저 가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내가 꼭 보고 싶었던 두 명의 여인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멜버른_비행기.jpg

 

 

시드니에서 멜버른, 멜버른에서 퍼스, 퍼스에서 시드니까지. 총 세 번의 비행기를 타며 7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는데.. 마침 첫날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화끈하게 벌어졌다. 멜버른에 도착하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캐리어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캐리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급기야 가장 마지막까지 텅 빈 레일 앞에 기다리게 되어 '이건 큰일 났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스태프에게 문의했더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Sorry, It wasn't loaded", 즉 내 캐리어를 시드니에서 비행기로 싣고 오지 않은 것이다.

 

젯스타 항공이 지연이나 각종 이슈로 유명하긴 했으나 실제 내 경험이 되니 혀를 내둘렀다. 며칠 전 한 여행 유튜버의 일화를 봤는데 그가 겪은 똑같은 일이 나에게도 벌어진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행히 3시간만 기다리면 다다음 비행기로 내 짐을 우선으로 싣고 온다고 하여, 참을 인을 50번쯤 쓴 다음에 캐리어를 직접 잡을 수 있었다. 항공사 고객센터로 또 찾아서 15달러 바우처 쿠폰도 받았다. 드디어 캐리어까지 무사히 받았으니 참 액땜을 다했다고 느꼈다. 다행히 그 이후부터 무사히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고, 멜버른에서 가장 알찬 이틀 여행을 채워나갔다.

 

 

 

열여덟에 만난 대학 신입생들, 5년 뒤 호주 대학생으로 재회하다



멜버른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난 인연은 에밀리와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에밀리는 한국 나이로 우리가 스무 살(만 나이로 18세) 때 대학 입학도 전에 가장 먼저 대학 동기로 만난 친구다. 선배들이 팀 프로젝트로 신입생 환영 모임을 꾸렸을 때 우연히 만난 친구인데, 처음 만날 때부터 서로의 바이브와 죽이 참 잘 맞는다는 걸 우리는 느꼈다.

 

아일릿의 '마그네틱'이라는 노래 제목처럼 눈을 떠보니 왁자지껄한 모임 속에서도 둘만의 연결고리와 인연을 이어나갔고, 매해 꼭 한 번씩은 만나서 다이내믹한 한 해를 리뷰하곤 했다. 에밀리가 영국으로 두 번이나 건너가 다시 돌아올 때도, 호주로 새 공부를 하러 완전히 넘어갈 때도 우리는 매번 만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호주 본토에서 만날 줄이야! 

 

운이 좋게도 에밀리가 멜버른에 새로 대학을 입학했을 때 나도 시드니 교환학생이 되어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무려 3일을 볼 수 있었다. 시드니에서 하루, 멜버른에서 이틀. 시드니에서는 타운홀, 뉴타운과 오페라하우스, 록스 주변 관광지를 돌아보며 알차게 하루 여행을 했다. 멜버른에서는 너무 고맙게도 에밀리가 호스트로서 아파트에 초대해준 덕에 이틀 밤을 묵을 수 있었다. 시드니에서도 남자친구분과 함께 식사도 하고 여행했던 지라 다시 멜버른에서 뵈었을 때도 편안하게 지내고 대화할 수 있어 참 감사했다.

 

 

멜버른_비누.jpg

 


멜버른의 첫날은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고 꽤 운치 있게 흐려서 여행하기도 산뜻했다. 함께 만나기 전 나는 그 유명한 퀸 빅토리아 마켓(Queen Victoria Market)에 들려 혼자 구경도 하고, 호스트 에밀리에게 선물할 수제 비누도 직접 고르고 샀다. 그날 항공사 문제로 인해 머리가 꽤 지끈거렸는데 비누샵에서 좋은 향기를 가득 맡으니 단숨에 행복 세포들이 채워졌다.

 

샴푸바 신제품을 홍보했던 마케팅 인턴으로 근무했던 지라 향기를 맡자마자 '아, 이건 진짜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차올랐다. 6살 때부터 할아버지와 비누를 함께 만든 초고수 분께서 직접 만드셨다니 믿음이 갔다. 내가 느낀 산뜻한 향을 친구 커플도 오래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첫 선물을 기분 좋게 가지고 마켓을 떠났다.

 

이윽고 에밀리와 들뜬 마음으로 처음으로 간 곳은 멜버른 뮤지엄. 우리만의 방식대로 짧고 굵게 박물관을 즐겼다. 엄청 큰 대형 곤충들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등학생처럼 눈알이 튀어나오기도, 마치 우리네 할머님들이 간직할 법할 보석 파트에서는 눈을 반짝이며 각 국가의 자랑거리인 아름다운 광물들을 분석하기도 했다. 한국 대학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공교롭게 각자 멜버른 학생증, 시드니 학생증이 있어 입장 티켓도 무료로 갖게 되어 여러모로 호주 거주인의 장점을 톡톡히 누렸다.

 

 

멜버른_카페.jpg

 

 

그다음으로 에밀리가 꼭 가고 싶었던 카페, 굿 메쥬어(Good Measure)에 갔는데 이날 인생 커피를 만나버렸다. 평생 커피라고는 반 컵도 안 마시는 내가, 숟가락으로 얼음까지 싹싹 긁어가며 마셨다. 여기에 한 컵을 더 원샷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피츠로이 거리에 있는 이곳 굿 메쥬어 카페에는 몽블랑 커피가 가장 유명하다. 이날 아이스 초코를 먼저 시켰다가 에밀리의 몽블랑을 한 모금 마셔보고는 머리에 천둥이 요동쳐서 바로 몽블랑 한 컵을 더 결제했다.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산뜻한 과일향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몽블랑 커피. '커피를 안 마시는 네가 숟가락으로 긁어먹는 걸 다 본다'면서 에밀리는 엄청 웃었다.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인 카페에서는 꽤 높은 천장과 식물들도 곳곳에 배치돼 있어 '카페 고수'라는 느낌을 풍겼다. 커피의 도시, 멜버른에 온 이유를 바로 찾게 되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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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디너는 에밀리, 그리고 또 한 명의 끈끈한 인연인 조안나를 만났다. 조안나도 우리 각자와 굉장한 인연이 있다. 그녀는 내가 대학 러닝 크루 회장했을 때 동부 대학연합 모임에서 만난 타 대학 회장이었다. 그때가 2020년이었는데, 정말 놀라운 확률로 조안나와 에밀리가 멜버른의 약대 신입생으로 나라는 겹지인을 두고 2024년 이곳에서 만나게 되어 새 인연이 되었다. 그렇게 모인 세 사람은 서울도, 인천도 아닌 멜버른 도클랜드(Docklands - New Quay)에서 스테이크를 썰어보는 디너를 함께하게 된다.


역시 미리 예상대로 에밀리와 조안나의 합이 너무 잘 맞아서 보기 좋았다. 유일하게 서로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기로서 가까이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계속 공부한 채로 같은 대학 동기가 된 사람들은 두 명이 유일하다는데, 어떻게 나를 겹지인으로 두고 둘이 만날 수 있었을까? 인생을 더욱 투명하고 사랑스럽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이 인연들을 보고 더 진해졌다.

 

에밀리와 나는 멜버른 첫날, 그리고 마지막 둘째 날에도 같은 침대에서 눈을 감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루의 끝과 시작을 함께하게 되니 마치 친척 집에 온 것처럼 편안했다. 덕분에 유머러스한 아침과 밤을 보낼 수 있어 참 고맙고 즐거운 마음만 가득했다. 마지막 날에는 조안나, 에밀리, 남자친구분까지 다 같이 모여 이른 브런치로 마무리해서 네 명이 다 함께 멜버른에서 굿바이 인사를 했다.


에밀리와 시드니, 그리고 멜버른에서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깨달았다. 예전부터 알고 있지만 더 선명히 보였다. 우리들은 충분히, 이 세상을 더 거침없이 개척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가올 시련과 장애물에 집중하기보다 뻗어나갈 수 있는 그 잠재력과 가능성에 더 집중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에밀리와 내가 언제 어디서든 재회해도 우리는 웃는 얼굴로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겠다는 직감을 했다.

 

호주라는 큰 대륙에서 우리의 가장 젊은 시절을 마주했다. 예상하지도 않았던, 상상 그 이상의 풍경들을 함께 마주한 것이 감격스러웠다. 시드니와 멜버른 시티를 고루 오가며 호주 안에서도 두 지역을 여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삶에 대한 진취적인 방향과 생각들을 나눌 수 있어 벅차올랐고, 행복한 현재만큼 앞으로가 더 흥미진진하게 기다려진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들에는 알지 못했던 선물 같은 인연이 오늘날의 호주로, 멜버른으로 우리를 이끌었구나. 서로의 크나큰 에너지를 항상 응원하고 또 바라보며 새로운 미래로 우리는 또 달려나가겠구나.

 

다음에는 인천 송도에 내가 직접 가기로 꼭 약속했으니 얼른 그날이 성큼 다가오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멜버른에서 에밀리와 보낸 이틀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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