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 소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4.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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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청소년 시기를 겪은 지는 꽤 됐지만, 여전히 청소년 소설을 즐겨 읽는다. 오히려 그 시절에 읽었던 청소년 소설보다 지금 읽는 비중이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청소년 소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 있다. 바로 이꽃님 작가님의 청소년 소설들이다. 작년부터 이꽃님 작가님의 책에 푹 빠져버렸다. 그렇게 <죽이고 싶은 아이>부터 시작해서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이라는 책을 며칠 만에 후다닥 읽어버렸다.


이렇게 연달아 한 작가의 책들을 읽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흡입력이 대단했다. 청소년 소설답게 간결하고 쉬운 문체 덕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강렬한 반전과 작가 특유의 섬세한 표현, 독특한 전개 방식, 여운이 남는 결말이 내가 이꽃님 작가님 책에 빠져든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고 최근 같은 작가님의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까지 완독하였는데, 이 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이 작가님의 소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물론 전작들 역시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문체였지만 남는 여운이 무거웠다면, 이 책은 문체부터 마지막에 남는 여운까지 훨씬 부드럽고 따뜻했다.


작가가 “이 소설은 내가 쓴 이야기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라며 큰 애정을 드러냈는데, 나 역시 이 작가님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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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유찬과 하지오라는 두 아이의 시점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유찬은 5년 전 화재로 부모님을 잃은 후 다른 사람의 속마음이 들리고, 하지오는 아빠 없이 엄마와 함께 살면서 스스로 태어나선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하지오는 엄마의 건강 문제로 있는지도 몰랐던 아빠가 있는 마을로 전학을 오게 된다. 그렇게 하지오와 마주친 유찬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지오와 함께 있으면 유찬에게 다른 사람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족에 관한 아픔을 가진 두 아이가 서로의 아픔을 눈치챈 듯 이끌리고, 유찬은 하지오를, 하지오는 유찬을 통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각자의 오해를 풀고 고통을 극복해 나간다.


여기까지 줄거리 소개는 간단하게 마치고, 이 작가님의 이야기 중에서 이 이야기에 가장 마음이 가는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청소년, 어른 모두가 이 이야기를 접했으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악역이 없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렸다. 초반에 하지오와 유찬의 상처를 보면 분명 악역은 존재해야 당연하다. 두 아이는 가족에 관한 아픔을 겪었고 그 때문에 오랫동안 외로웠으며, 누구에게도 이 고통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원망과 분노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악역은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인물이 선역이란 뜻은 아니다. 악역처럼 보였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줬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상처를 주게 된 원인은 그저 ‘선택’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깊은 고민에서 비롯된 ‘선택’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을 외롭게 해버린 것이었다.


유찬에게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5년 내내 진심으로 미안함을 가지며 착실하게 살고 있는 새별,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더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진실을 숨기는 선택을 한 지오의 아빠, 알고 보니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유도부 코치, 유찬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마을 주민들.


악역은 없었다. 그러면 오랫동안 외로웠던 두 아이의 상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동안 어른들을 원망했던 두 아이는 누구의 탓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악역은 없었다는 것과 어른들은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라는 걸 알고, 두 아이는 처음에 혼란을 겪지만 이내 어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본인을 아프게 했던 원인이 사실 원인이 아니었다니. 인정하기 힘든 일이다. 분명 아팠던 것은 사실인데, 그 원인이 사라지면 겪었던 고통도 없던 일이 되는 걸까. 왠지 억울하고 허탈할 것 같다.


그런데 두 아이는 억울함과 허탈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원망과 분노에서 벗어나 용서하는 것을 택한다. 악역이 없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두 아이가 상처를 치유할 길을 잃지 않을지 걱정되고 마음이 아렸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화해와 용서를 택하는 모습에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참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현실은 선역보다 악역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사실은 악역이 가득한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악역으로 보이는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악역으로 남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의도를 구별하긴 쉽지 않다. 악한 의도를 가진 선택으로 악역이 된 이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또 악한 의도에서 비롯된 선택을 해도 선역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씁쓸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의 이야기를 보면서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생각보다는 선역이 많은 세상일 수도 있다고 믿고 싶어졌다. 비록 상처를 얻은 이들이 있었지만 결국 선택의 문제였고, 악역이 없던 이야기 속 마을은 뜨겁고 습한 여름이 아닌 따뜻하고도 포근한 여름이었으니까. 소설 속 마을을 넘어 현실도 따뜻하고 포근한 여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뭐, 아니라 해도 괜찮다.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메시지는 ‘선택’에 관한 것이다. 선택한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선택에 따른 긍정적인 결과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고민해서 한 선택이 꼭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그래서 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두 갈림길 혹은 그 이상의 갈림길 앞에서 단 한 가지를 택하는 것. 선택의 순간과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라는 고민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기쁨, 환희, 행복, 슬픔, 원망, 후회 등 무수한 감정이 교차한다. 특히 ‘후회’라는 감정이 남는 결과는 내 선택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고 옳지 않은 선택이었다며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다시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당시에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 테니까. 물론 상식적으로 옳지 않은 선택은 제외하고 말이다.


 

“선택이라는 게 그런 거라고. 언제나 옳은 선택만 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래도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고.“ (p.95)

 


이 이야기에서는 언제나 옳은 선택만 할 수는 없다며, 본인의 선택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마주한 이들을 위로한다. 옳지 않을지도 모를 선택이었어도 오직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순간에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하루는 엄마가 그랬다. 무너질 걸 두려워하면 어떻게 블록을 쌓을 수 있냐고. 무너지면 다시 튼튼하게 쌓으면 되지 않느냐고. (p.102)

 


더불어 옳지 않은 선택이 무조건 옳은 선택으로 바꿔 나갈 수도 있다며 격려한다. 무너질 걸 미리 두려워하면서 선택을 미루기만 한다면 아무런 결과도 맞이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일 것이라고. 선택하지 않았음을 후회할 수도 있으니 그럴 바엔 선택하고 후회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목소리를 너무 무겁지 않고 부드럽게 전한다는 점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인 동시에 청소년, 어른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이유이다.


언제나 튼튼한 선택을 할 수는 없으니까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선택지라도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면 실행해 보자. 혹시 아는가? 그 선택이 사실은 튼튼한 선택이었을지도. 만약 무너졌어도 다시 튼튼하게 쌓으면 된다. 물론 어렵고 고된 과정이겠지만, 다시 튼튼하게 쌓으려 노력한다면 그 선택으로 빛을 보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까지의 옳지 않았던 선택에 대해 자책하지 말았으면 한다. 선택을 한 당신은 어쨌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으니까. 지켜보기만 하면 아무런 기회도 오지 않는다.


‘선택’을 한 것 자체가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무너질지도 모르는 선택이었고 진짜 무너졌다 해도 괜찮다. 동시에 다시 튼튼하게 쌓을 기회도 얻은 거니까. 그러니까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피하지 말았으면 한다.


수없이 해왔던 선택의 결과와 수없이 찾아올 선택의 순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뜨거운 여름을 겪고 있다면, ‘선택’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담긴 이 이야기를 통해 따뜻하고도 포근한 여름을 맞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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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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