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랑해서 놓아주다, 뮤지컬 피에타

엄마와 아들, 두 사람의 이야기
글 입력 2024.03.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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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란 누구일까.

 

자식이 자랄 때까지 지키려는 사람이자 오직 자식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사람이다.

 

뮤지컬 <피에타>의 주인공, 마리아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다. 마리아는 관객을 향해 아들을 꼭 지킬 것이라 다짐하고, 아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밝게 웃는다.

 

피에타는 예술사에 있어 지대한 흔적을 남긴 기독교적 테마이다. 뮤지컬 피에타도 아들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를 극의 주요 인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 배경지식이 없어도 관객들은 <피에타>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 종교가 없는 나 또한 마리아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 새 극이 막바지에 달해 있었다. 그렇게 뮤지컬 관람을 마친 내 안에는 마리아와 예수가 아닌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만이 남아, 이 글을 쓰는 내게 이야깃거리를 전달해주고 있다.

 

 

“엄마와 아들, 엄마와 아들. 엄마와… 아들!”

 

 

마리아는 어린 아들 앞에서 조용히 읊조린다. 세 번의 독백이 관객의 가슴에 박힌다. 여성이자 어머니였고, 거대한 사회 구조 속에서 핍박받는 작은 민중이었던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뮤지컬 피에타_포스터.jpg

 

 

극은 시간 순으로 전개된다. 마리아의 아이는 곧 뛰어놀 수 있을 만큼 자란다. 이내 어른이 된 아들. 가난하고 핍박받는 백성의 삶이지만, 마리아는 아들을 사랑으로 키워낸다. 그런 어머니의 소원은 아들을 지키는 것, 아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아들은 어머니의 소원과는 완벽하게 불일치하는 존재다.

 

아들이 어른이 된 후 극 중에서는 세 개의 관계가 더욱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바로 제국과 민족, 어머니와 아들, ‘그 분’과 민족이 그것이다.

 

제국은 권력자이자 억압하는 자이고, 민족은 힘없는 자, 억압받는 자이다.

 

어머니는 민족의 일원으로 아들을 지키려는 자, 아들의 행복을 비는 자이고 아들은 그 지킴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자, 지도자이다.

 

그 분은 보이지 않으며, 대답하지 않는 절대적 존재자이지만, 민족은 힘든 시기를 ‘그 분’에 대한 믿음으로 견디려 한다.

 

아들은 ‘그 분’이 아닌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드려 한다. 힘없고 억압받는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역설한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치 ‘그 분’을 부정하는 것만 같은 발언. 아들의 입바른 소리는 그를 어머니의 소원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결국 아들은 마을의 거센 외면을 받아 떠나고 만다.

 

어머니는 오직 아들만 무사하면 되건만.

 

마리아는 두렵다. 아들이 지키려는 것은 너무나도 크다. 그가 지키려는 것은 한낱 자신의 몸이 아니라 무려 세상이다.

 

마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은 이제 자신의 품을 떠났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에.

 

 
“아들의 발걸음을 집으로 돌려주세요…”
 

 

새로운 주장을 설파하는 사람들을 향한 억압이 점점 심해지고, 어머니는 아들이 걱정스럽다. 아들을 만나러 찾아간 날. 그녀는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박수갈채를 받는, 이제는 지도자가 된 아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들의 뜻은 자신의 품보다 컸다. 아들의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게 해달라고 그 분께 기도하던 엄마는, 결국 자신이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그녀의 사랑은 아들을 지키는 것에서 아들이 뜻을 이루도록 두는 것으로 뒤바뀐다. 그러나 그 본질이 여전히 사랑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은 잔인하고, 아들이 뜻을 이루도록 두지 않는다. 민족이 그토록 따르던 ‘그 분’은 그녀의 아들이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에서도 아무 말이 없다.

 

이내 그녀는 두 눈으로 아들의 죽음을 보게 된다. 세 번의 못질이 아들의 몸에 박힌다. 어머니가 피 묻은 아들의 몸을 품에 끌어안고, 대답 없는 하늘을 붉어진 눈으로 올려다보며 극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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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김사라.

 


기존의 이야기였더라면 주인공은 마리아의 아들이었을 터. 그러나 <피에타>는 전위적으로 어머니인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 역을 맡은 오직 한 명의 배우만이 무대에 등장한다. 우리 눈에 아들은 보이지 않으며 아들의 모습과 감정, 말은 오직 마리아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뮤지컬 <피에타>는 마리아의 시선으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뜯어보는 재미가 있는 극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부조리가 끝없이 순환하는 인간 역사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억압과 부당함이 극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우리다. <피에타>는 그 점에서 우리에게 지난 인류 역사의 모습을 다시금 되새겨보도록 만든다.

 

한편 <피에타>는 김사라 배우가 마리아 역을 맡아 열연했으며, 오는 3월 24일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다.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뮤지컬 <피에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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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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