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위성이 던지는 질문 - Time Is A Blind Guide

글 입력 2024.02.0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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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Is A Blind Guide 공연 포스터.jpg

 

 

오늘이 입춘이라니, 거리에는 완연한 봄기운이 돌았다. 문화초대를 빌미로 하여 집에서 나를 끄집어내는 일은 이제 익숙지만, 언제나 유쾌하다. 오늘 같은 날은 더욱, 봄기운이 이리 화창함이니! 혜화의 JCC 아트센터로 간다. 지하철 안, 나름 얇게 입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땀이 마구 비집어대는 것이, 아, 아무래도 조만간 있을 환절기에 진땀깨나 빼겠다는 생각을 했다.


JCC 아트센터는 생각보다 커다란 규모의 건물이다. 맞은편에는 JEI 재능교육 사옥이 있었다. 맨 앞의 스펠링이 일치하는 데에서, 둘 간 모종의 유사성이 있으려나 생각했다. JCC는 재능 문화센터의 약자, JEI에서 설립한 문화센터이다. 좀 놀랐던 것은 안도 다다오가 시공 설계를 맡았다는 점이다. 시원하고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의 스파이럴을 따라, 지하로 내려간다. 오늘의 공연, 토마스 스퇴레넨의 'Time Is A Blind Guide'(이하 TIABG)이다.


2층 꼭대기, 개중에서도 맨 뒷줄 맨 우측 열에 자리를 잡는다. 홀은 좌우로 좁고, 위아래로 높다. 여느 콘서트 홀과 같은 라이트 우드 톤의 벽면으로는 구불구불한 골이 파여 있다, 음을 고르고 증폭하기 위해 촘촘히 나 있는. 공연 시작이 5분 남았다며 채근하는 안내 방송의 음성이 울리고, 이 골을 따라 연하게 공명한다.


정면 스크린에는 팜플랫 메인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측 하단에 위치한 익숙한 이미지가 눈에 들었다. Jazz Bridge Company의 CI 이미지, 해당 주관사의 몇 다른 공연을 인상 깊게 관람한 까닭에,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암전, 어두워진 객석 위로 차임 벨 소리가 울리며 공연 시작 알린다. 정면 스크린에는 어느새 바다의 이미지. 토마스 스트뢰넨과 같은 ECM Record 소속, 안웅철 작가의 사진이다. 바다의 이미지가 주되다.



TIABG 사진 (2).jpg

 

 

트리오, 콰르텟, 퀸텟. 소규모의 밴드 구성에서 흥미로운 것은 공연마다 채용되는 악기가 모두 다르다는 점에 있다. 현악이 빠지는 경우야 아주 드물긴 하지만, 지난번 "범인류적 유산"의 빅밴드 구성에서와 같이 베이스를 맡은 리더를 제외하고 전원 관악으로 구성하는 경우도 존재했고, "O-Band" 콘서트 때와 같이 드럼, 건반, 베이스, 일렉 기타로 구성되는 예도 있다. 오늘의 구성은 드럼, 건반, 베이스, 첼로 그리고 바이올린, 퀸텟이다.


본 밴드는 드러머 토마스 스트뢰넨을 필두로 결성된다. 구성원들도 대개 노르웨이 출신 음악가들이다. 무대 및 구성원 소개를 영어로 하는데, 필자는 영어에 약하므로 대강만 알아들었다. 그래서인가, 스리슬쩍 곡 안내로 넘어가는 동안 곡 제목을 놓쳐버렸다. 그래서 곡별 해석을 리뷰에 담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본 콘서트는 사전, 사후 별도로 프로그램을 공개하지 않는다.


전반적인 감상평을,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하다. 전위적이라고 밖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는데, 그것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입장에서는 차라리 청음 실패로 보아야 할지... 가열하게 실험적인 공연이었다. 현악들은 멜로디 파트를 마치자마자 현에 활을 문지르고, 현을 뜯고, 두드린다. 바이올린은 활을 직각으로 눕혀 치덕이면서 불쾌한 소리를 자아내기도 하고 첼로는 강판에 무를 갈듯이 현을 긁는다. 이는 건반도 매한가지, 자리에서 일어난 피아니스트가 프레임을 향해 고꾸라지듯 엎어져 손으로 현을 뜯는다, 본디 양털 망치를 위한 것을.

 


 


아쉬운 것은 그 미약한 소리들이 내 있는 꼭대기 자리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여느 공연에서도 느낀바, 어찌할 수 없는 아쉬움. 클래식 콘서트에서는 악기의 원형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 웬만해서는 음향 장치를 거치지 않기에 별도로 음량을 증폭, 조율할 수 없다. 이때 필연적으로 소리가 큰 타악류에 의해, 베이스와 같은 작은 소리 구성이 묻히게 되는 것은 매우 아쉽다.


한편 본 앨범의 전위성은 비단 사운드에 국한하지 않는다. 리듬, 선율, 화성에서도 실험적인 면모를 얼마든지 뽐내고 있었다. 주로 건반과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첼로와 베이스가 저음 화성을, 드럼셋이 리듬부로 묶여서 연주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많은 파트에서 각 부 리듬이 모두 달랐다. 박자가 상이한 가운데 불일치 화성이 날아드니, 숙련된 관객이 아닌 본인으로서는 본 라이브에 대한 완전 향유가 어려웠다. 자유롭고, 무규칙적이다. 귀에 익숙한 정규화음이 드물거니와, 음률과 구성이 예측 가능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주선율이 가리키는 바가 모호하다. 보통의 음악은 주선율이 주제를 표현해 나가고, 이를 악장 구성을 통해 뚜렷이 전개하는 것에 비하자면, 스트뢰넨의 음악은 전통 구성에서 확실히 벗어나 있다. 몇 곡에서는 멜로디가 선형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다가 툭, 가다가 툭, 맥없이 흐트러지고 그 사이, 소리와 주제의 텅 빈 광장으로는 각종 실험적인 사운드들이 세든다. 화성학적 이해가 전무하지만, 들리는 대로 느끼는바 화음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듯했다. 어디서 엿들은 바를 따라 하자면, 주제가 탈중앙화되었다고 불러보아야겠다.



불협화음, 각 부의 상이한 리듬, 실험적인 사운드, 탈중앙화된 주제. 비숙련 관객인 나는 낯선 것들의 군세 앞에 잔뜩 긴장했다. 여느 클래식컬한 음악에서도 의도된 불협화음이란, 관객으로 하여 긴장하게 만들고 이내 그것을 해소하는 데에서 카타르시스를 일으킨다지만, 이번 콘서트는 그렇지 않다. 낯설고 새로운, 긴장 그 자체가 목적인 듯했다. 주된 긴장과 아주 짧은 해소의 반복. 나는 내내 긴장했다.


리뷰에 있어 솔직해지자면, 듣는 동안 조금 힘들었고 자주 어려웠다. 전위적인, 즉 완전히 새로운 양식으로부터 오롯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선, 기존의 것에 틈 없이 익숙해져야 할 터. 이탈과 일탈에서 그 묘미와 비교론적 의의를 느끼기 위해선 기존의 고전 작법, 시간 순행적이고 전통적인 구성이 완전히 익숙해진 나머지 지루해진 다음에나 속 깊이 와닿으리라는 생각에 미친다.


괴로움과 몰이해에서 전통 음악 양식에 대한 나의 불가피한 집착, 내지는 구속감을 느낀다. '모름지기 음악이란 이러해야지'와 같은, 일종의 불문율. 내겐 음악을 구조적으로 분석할 능력이 없으므로, 내게 듣는 행위라는 것은 멜로디 및 그에 어우러지는 옳게 된 화성, 정답 화성을 듣는 것이고, 음악을 향유하는 일은 오직 음률 전반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가리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파트 별 리듬이 아예 달라 혼란스럽고, 원하던 멜로디 구성을 제공하지 않는 이 음악 앞에서 가슴 끓는 갈증을 느꼈다.


전위성, 전처로 하여 그건 아직 내게 요원한 일이다. 이지 리스닝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직관되는 음악만을 느낄 수 있는 내게는 말이다. 그러자 이상한 생각이 하나 든다. 글은 어떠한지, 나의 글은. 일부러 난해한 표현을 남발하거나, 문맥 구조를 어렵게 비틀진 않았던지. 직관성보다는 고유성을 중시하지는 않았던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는, 어떤 이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누구나 좋아할 만한 것보다는, 어떤 이만 애호할 만한 것을 고수하지는 않았던지. 물론 이 가열한 기준을 본 공연에다가 그대로 대입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이라는 타에 대한 태도를 나한테도 공평히 투사한다. 글을 좀 쉽게 써야겠구나… 음악을 듣다가 생각이 이상한 대로 튀었다지만, 그래도 모종 의미를 갈무리해 온 것 같아 흡족하다. 공연 종료. 이런저런 생각에 파묻힌 채로 스파이럴을 따라 올라온다. 거리엔 벌써 어둠이 내려 있었다. 


*


공연을 마치고 자주 가던 카페를 찾아, 리뷰를 위해 앨범을 찾아보았다. 음악 리뷰를 쓰기 위해선 필히 수반되는 일, 콘서트 경험만으로 음악을 이해하여 소개하기엔 시간도 여력도 부족한 까닭이다. 이번 콘서트 곡이 수록된 앨범인 'Lucus'의 전곡을 플레이한다. 콘서트의 기억이 아직 잔향으로 울리고 있는 동안 앨범을 들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공연과 앨범 플레이가 아예 독립된 경험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얼른 기억 위에다가 앨범을 재생했다. 그러자 어딘가 조금은 다른 음악이 흘러나온다, 2층 꼭대기인 내 자리에까지 닿지 못한 사운드들이 모조리 살아 있는. 그 질감이 또 아예 달라 놀랐다.


위에 링크-인한 영상으로 'TIABG'의 음악을 접하는 여러분께는, 내가 경험한 난해함이 전부 전달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기억하던 것보다 영상 속 멜로디 라인의 색깔이 뚜렷한 것 같아 놀랐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실험적이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것들, 그것은 기존의 안정된 질서에 대한 변증법적 반 反으로서 그 의의를 가진다. 아차 쉽게 쓰자고 했지. 말하자면 틈 없이 진실한 것으로 여겨지던 기존의 것들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 되어준다는 것이지. 집에 돌아오는 길, 창모의 신보와 누야베스 비트 위에 얹힌 힙합 사운드 몇 가지를 들으며 돌아온다. 그리고 질문하지. 이 듣기에 쉽고 친근한 음악들에 대해, 실은 그것을 별다른 놀라움 없이 꿀덕꿀덕 삼키고 있던 내게.


질문이 지니는 가치는, 기존의 생각을 뒤흔들어 불안정하고 가변한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므로 질문이 또 다른 성급한 가설로 불시착하면 아니 되겠지. 질문의 원천은 음악에서 빌어왔다지만, 집 가는 길, 나는 조용히 질문한다. 음악은 어떠해야 하며, 나아가 글은 어떠해야 하고, 그를 대하는바 생각은 어떠해야 하는지. 평범한 사람인 이상 어느 것에건 기성답안이 자생하게 마련이라지만, 나는 부술 수 있는 만큼은 한없이, 믿는 바 정답을 깨어 부수길 원한다. 그리하여 믿는 바 답이 해체되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아 일견 불안하지만, 일반화의 오류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태에 내가 머물 수 있기를. 오늘의 공연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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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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