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노란빛 손수건 - O Band 음반발매 공연

연노란빛 손수건에 얼굴을 부비는 듯이
글 입력 2023.11.0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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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포스터.jpg


 

금요일은 애매하게 비가 내렸다. 다행히 빗길은 전부 피했지만, 이상 고온에 뒤섞여 후텁한 기운으로 온통 진득했다. 땀으로 진자리를 뒤적인 듯, 이미 젖은 옷 위로 마치 축축한 조끼를 덧입은 느낌, 양복 재킷은 손에 들기에도 매우 찝찝했다. 여러모로 피곤하군, 어제 막 영월에서 돌아왔고 이런 저런 일(지난 에세이 참고)을 겪었으며, 회사에서는 긴급한 일로 예정에 없던 외근을 나왔다. 어으 정신없어. 어딘가 축축해진 듯한 양복을 소매에 걸치고 바른 팔로는 카카오톡으로 미팅 보고를 하며, 성남으로부터 홍대까지 먼 길을 돌아온다. 재즈를 위하여.


재즈를 위하여. 노곤한 직장인의 순간에는 재즈가 필요해. 이런 근거 적은 선언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 마음은 강짜를 부른다. 재즈, 나는 지금 재즈가 필요해. 누적된 피로, 축축하고 후텁한 거리와 머나먼 길, 그 모든 것을 한데 합친 것보다도 크게, 나는 재즈를 필요로 해. 오, 재즈, 오, 밴드, 오늘 내게 어떤 것을 들려줄 테야. 일찍 온 대기실에 흐르는, 90년대 무성영화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나릇한 재즈팝 선율.


 *


무대에는 커다란 콘트라베이스와 피아노, 드럼셋과 기타 두 대가 매달려 있다. 거두절미하고 시작은 EP1. H.O.P.E (Help Our Peace of Earth)라는 곡으로 연다. 나는 곧바로 놀랐다. 이걸 뭐라 불러봐야 하나, 힐링 콘서트에 온 듯했다, 리뷰 노트에 이게 무슨 장르일까라고 적는다.

 

돌아와 글을 쓰기 위해 벼락치기 공부를 잠깐 한다, 아무래도 모던 재즈라고 해야겠지? 이럴 때마다 음악을 좀 더 배우고 싶어져. 바운스 박자나 블루노트 위주의 시크함 보다는 스트레이트 박자와 장조계를 주로 이루는 담백함, 스윙과 비밥의 현란함과 흥겨움 대신에 자리한 차분함과 따뜻함, 트럼펫과 색소폰의 촉촉하고 끈적한 음색 대신에 전반적으로 미니멀한 음색과 산뜻한 구성. 잘 모르면서 이렇게 막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어.

 

각 세션들의 주법을 세세히 톺아듣자면 재즈적인 요소가 엿보이지만, 개괄적인 느낌은 내가 알고 있는 '재즈'와 사뭇 달랐다. 이걸 뭐라 불러보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안고 나는 공연으로 빠져들어 가기 시작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곡은 EP.2 수록곡 '바다'다. 보컬은 드러머가 맡는다. 나는 이 두 곡으로 해당 밴드를 바라볼 관점과 컨셉을 잡기 시작한다. 이 사람들 따뜻하다, 몹시. 이 노래를 듣는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콘트라가 간주의 텅 빈 공간을 홀로 맡는다, 베이스의 뭉뚝하고 뭉클한 선율이 아니었다면, 잠시 재즈 콘서트라는 사실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간주를 콘트라에서 기타가 넘겨받고 독주를 시작하더니, 고조된다. 노래의 전반적인 감성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고조되는 음, 즉흥연주, 맞다, 이거 재즈였지. 리뷰를 적기 위해 돌려 듣는 음원에는 이런 부분이 빠져 있다는 게, 여러분한테도 이걸 고스란히 전달하지 못하는 게 내심 아쉽다.



 

 

EP2. 'Fly Away'. 이번 노래의 남자 보컬은 기타리스트이고 여성보컬은 피아니스트이다. 앉아있던 맨 앞 열 최우측 자리는 올려다보는 각도로 기타리스트와 독대하는 자리였다. 거기서는 선글라스로 가려둔 그의 맨 눈이 보인다. 휘파람까지 라이브로 직접 불어주는데, 해맑게 웃는 한편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며 선글라스 낀 눈으로 찡긋하는 게 어쩜, 이 사람 나를 꼬시는가 싶었다.

 

얼마든지 넘어간 나는 해뜩 웃었고. 몽글몽글하다는 말이 참 흔하지만 적당히 맞아드는 것 같다. 그들의 음색이 좋다. 수준급의 연주자들이 수줍은 보컬로써 선뜻 다가오니, 이런 걸 뭐라 하더라, '갭모에'라 하던가, 아 그래 반전매력. 쟤네가 나 꼬셔요.


 

오종대(드러머) : 연주자의 보컬은 그 자체만으로 고유한 울림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재즈밴드.' 곡과 곡 사이, 진행 동안에 수줍은 목소리로, 우스갯소리인 것처럼 자청했으나 그게 딱 맞아들어가는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 노트에 적는다. 연구개 공명, 그러니까 가요 발성을 사용하지 않고 내는, 소박하고 스트레이트한 보컬이 그들의 음악을 내게 새로 정의하는 듯하다.

 

우린 재즈도 하고 노래도 해, 따뜻하고 온화한 노란색 음악을 해, 근데 그게 다가 아닌. EP 2 앨범은 연주자들의 보컬이 가미된 음악을 따로 빼둔 구성이라고 한다, 연주자들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기 위함. EP 2 앨범 커버의 색깔이 보여주듯, 오-뺀, 그들은 연노란색 재즈를 한다.


공연이 전부 나긋나긋하기만 한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음원에야 즉흥연주와 솔로가 빠져 있지만, 공연은 매 곡마다 미친듯한 독주가 서비스 마냥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앙상블로 갈 때는 모나게 튀어나지 않은 둥그럼으로 올망졸망히 전개해나가다가, 어느 한 파트의 연주가 힘이 실리더니마는 독주로 치고 나온다. 드럼이 특히나 강렬하다.

 

전반적으로 나긋한 노래였는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다가도, 이상하네, 왜 어울리지. 천연덕스럽다고 할까, 독주를 마치면 박수소리와 함께 원래의 텐션으로 매끄럽게 돌아온다.

 

 




공연의 마지막 부, 'U Know the Blues'의 차례에 이르러 익숙한, 그러니까 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즈'의 개념과 맞물리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미 후반부, 나는 오-뺀 만의 매력에 이미 충분히 젖었고 일전에 궁금하던 느낌은 지워진 지 오래다. 우리 온화하고 평화로운 음악해, 나긋하고 따뜻한, 근데 그게 다가 아닌.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등장하는, 비밥 박자의 더블베이스 솔로가 나는 너무 좋다. 둥-둥-둥-둥, 더블베이스가 빠르고 균일한 거리감의 4박으로 흐르는 걸 너무 좋아해. 오-뺀은 이런 것, 트레디셔널 재즈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들을 생각하면 보송한 양털 조끼와 자수가 들어간 면 손수건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나는 그 비유가 퍽 마음에 든다. 종일 따라다니던 땀은 이미 다 식었고, 의자에 뒤로 건히 기대어 고개를 조금씩 조악거렸다, 그때 '내 고개는 스윙하지 않았다.' 올곧고 똑바르게 흐느적거린다,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는 듯이. 연노란빛 손수건에 얼굴을 부비는 듯이.

 

 

[포맷변환]O Band ep2 커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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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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