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명의 새벽 - 김영후 빅밴드 단독공연

우리도 감미롭게 노래 부르자, 꿈꾸는 문명의 새벽을
글 입력 2023.12.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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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온이 참 이상하다. 이 정도면 초봄도 훌쩍 지난 즈음의 날씨라, 간만에 캠퍼스를 찾아 시간을 죽이는 동안 잠깐 봄이 왔는가 하는 설레는 착각을 했다. 12월 낮 기온이 14도라니, 지구가 어떻게 된 건 확실한 듯하다. 학교 근처 카페에서 에세이를 좀 쓰다가, 그 근방에서 자취하는 친구 놈과 만나 왕십리로 넘어간다. 예전에 자취하던 제기동 골목을 지나, 우리 추억이 가득한 약령시장을 지나, 내 젊은 날의 초상으로 가득한 마장동을 스치듯 지나지나 왕십리에 내렸다. 소월아트홀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앞에 있었다. 접근성이 참 좋구나. 친구 놈과 곧잘 티켓부스로 향했다. 김영후 빅밴드, 범인류적 유산 콘서트에 다녀온다. 

 

 

김영후 빅밴드 포스터.jpg

 

 

이 놈과 붙어먹은 지가 어언 4년이 지났고, 거의 매주 어울려 다니는 짝패인지라 언젠가 한 번쯤은 더불어 문화초대에 왔겠거니.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가 이전에 어느 문화초대를 갔더랬냐고. 나는 기억력이 매우, 매우 매우 안 좋은 편이거든. 친구는 익숙하다는 한숨에 더불어, 혀-엉, 나는 이번이 처음이야, 라고 말했다. 이젠 익숙할 대로 익숙한 나의 조악한 기억력, 둘 다 그러려니 자연스레 치부하였다. 왜 처음이었지? 그래도 몇 번은 네게 제안했던 것 같은데, 글쎄, 그냥, 안 내켜서 그랬겠지. 


그러고보니 늘 객석은 혼자 찾았었구나. 공연이 시작하기 직전, 일찍 찾은 객석에 앉아 팜플렛을 펼치며 그제서야 콘텐츠를 훔치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 리뷰를 수월히 쓰기 위해서는 콘셉트를 잡아두어야 해. 오늘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친구 놈과 이것저것 떠드느라 바빴어. 우린 평소에도 음악 이야기를 자주 하지, 주로 힙합, 개중에서도 붐뱁에 대한 이야기가 주이지만, 사운드에 대한 각자의 감상 포인트와 관점을 논하는 것은 즐거워. 오늘 공연이 끝나면, 너와 재즈 사운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 오늘은 혼자 콘셉트 잡기엔 다 틀렸다, 네가 나의 영감이 되어 줘야겠어,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입장 직전의 홀에서는 권현정 에디터를 만났다. 현정이는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에서 안면을 튼 친구, 문화초대 현장에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만난 건 처음이라, 우리는 신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번 리뷰를 어떻게 쓸지에 대해, 관람도 전에 걱정을 견주었다. 사운드에 대해 감상을 논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 서사류 예술은 비교적 표현하는 바가 직관적이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지. 미술은 작품이 고정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시각적으로 형상화되어 있기에 영감화하기가 좀 더 좋아, 서사에 비해서는 품이 들지만, 음악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지. 오늘 공연에 대해서 좋은 리뷰를 써낼 수 있을까, 받은 사운드의 반만큼은 돌려줄 수 있을까, 이 고민은 너나할 것 없이 에디터의 숙명인 것 같아. 


*


객석엔 악기가 참 많았다. 오케스트라를 제외하고는 처음 보는 악단 단위의 공연이니만큼, 빅밴드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 현악이 주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에 비하자면, 관악이 주를 이루는 빅밴드 사운드의 현장감이 그 어떠할지에 대해 우리는 기대했다. 객석엔 어둠이 깔려 있었고, 무대에 덩그러니 놓인 악기 위로 쪼이는 조명. 금관악의 매끈한 황동 몸체가 눈부신 황금빛을 발하였다. 우린 웅장하고도 끈적한 금관악 선율이 거대한 집채를 이루는 순간의 음파를 상상하다. 


악단이 간단한 조율을 마치고, 김영후 베이시스트가 진행을 맡았다. 왜 오늘 공연의 소제목이 '범인류적 유산,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인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도 객석에 앉아 그 소제목에 대해 미리 논하며 의뭉하던 참. 범인류적 유산이라, 그것이 무엇인지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심오한 주제를 사운드로 다 담아낼 수 있을는가. '범인류적 유산'은 본 공연이 다루게 될 수록곡 앨범 명. 본 앨범은 김영후 베이시스트의 독서 경험을 영감으로 하여 작곡된 앨범이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총·균·쇠' 등의 인문교양서적에서 힌트를 얻어, 인류 종의 문명 사회적 발달과정과 그 산물들에 대한 소감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마치 도슨트처럼 곡 시작에 앞서 해석을 달아주었다. 적어도 한 개 문단씩의 설명이 쏟아지는데, 그 설명이 심상한 기대를 가뿐히 뛰어넘을 정도로 소상하여 우리는 놀랐다. 음악을 감상함에 있어, 나아가 그것을 글로 표현함에 있어 콘셉트는 매우 중요해. 길잡이가 없는 청음회는 청각적 쾌감과 아주 미약한 영감, 활자로 채 태어나지 못한 미약한 빛무리만을 남긴 채 쉬이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좋았다, 단 세 글자만을 남기고는 깜깜히 사라져버린 기억들이야 내게도 얼마든지 많아. 음악의 예술성은 동시성에 있지만, 그것이 바로 음악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음악적 기예의 생산에 있어서도, 그 기예의 감상에 있어서도 말이야. 중략, 콘셉트의 길라잡이로서, 그의 도슨트적 해설이 좋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  Program  -


1. Dancing on the Floor


2. Cognitive Revolution


3. Network Song


4. Artificial Intelligence and Hyperconnectivity


5. Florescence


6. New Discoveries


7.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


* 앵콜곡 : Pure imagination(초콜릿 공장의 비밀 ost)

 


프로그램 1번은 들어가는 곡이다. 익숙한 전개와 구도의 음악이 흘러나오며, 공연 전 빅밴드 사운드를 귀로 적셔 넣는다. 본 주제인 '범인류적 유산'의 파트는 2번부터 7번까지로, 필자는 프로그램 2번부터 4번까지를 제1주제, 5에서 7번까지를 제2주제로 상정하고서 감상을 이어간다. 두 개 섹션을 나누는 두드러지는 차이라면 무드와 태도를 꼽겠는데, 제1주제를 관통하는 상승·고조의 전개하는 악장 및 프로그램 구성과 당차고 호기로운 감각의 코드 진행은 문명 고도화의 찬란함을 노래한다. 

 

 

 


브라스 세션의 음률은 신비하지, 자주 산업시대를 생각하게 해. 좀 더 심상의 초점을 정확하게 돌려보자면은 30년대 미국, 공장 노동자의 수난시대, 종일 힘겨운 노동의 하루 끝, 겨우 모아둔 돈은 이 밤, 술로 탕진하자! 죄다 귀찮노라 까무러치라지라는 한구석 마음 안고 재즈바로 입성하는, 어느 평범한 노동자의 1인칭 시점을 내 안에 펼치지. 문지방을 넘자마자 눈앞에는 콘트라베이스를 안고 있는 흑인과 그 무리들. 그들이 즐거이 연주한다, 오 그들은 즐거워, 그들도, 그들의 손끝에 걸려있는 선율들도. 스윙의 통통 튀는 율동감이 내 가슴 안에 한사코 밀어 넣어 버린 듯이, 뭔가 괜찮은 미래,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근거 없는 희망과 자신감. 브라스 세션이 힘차게 진군하는 음파의 제 일 열에서 나는 이런 것들을 느낀다. 


그래, 이런 근거 없는 희망과 자신감. 그것은 범인류적 유산인 인간 문명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도 유사한 부분이 있지. 우리는 더 이상 미루고 외면하지 못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아주 자신만만하고 희망찬 꿈을 부여잡으며 낭만적 태도 속을 살아가곤 하니까. 그 얼마나 찬란한가 이 모든 유산은, 의심하기에 너무도 훌륭하다. 그리고 얼마나 유쾌하고 당찬가, 그 안에 태어난 우리가. 인간 종으로 태어난 그것만으로, 이 모든 문명 유산을 무상으로 누린다는 것이란. 


언어와 소통의 발명을 통한 유사 이래 최초의 인지혁명(2번), 인터넷과 각종 통신기술을 통한 국경을 넘은 네트워크 혁명과 연결사회(3번),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인 AI와 IoT를 통한 실시간의 초연결사회(4번)의 순으로 이어지는 제1주제는 말 그대로 범인류적 유산을 직접적으로 가리켜 나타내는 섹션이다. 범인류적 유산, 인간 이성 산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 그리고 날이 갈수록 높아만지되, 단 한 번 몰락과 역행이 없었던 우리의 문명에 대한 그것은 마치 이 진군가처럼 흔들림 없이 당당했다. 






5번 Florescence에서는 분위기를 단숨에 반전시킨다. 제2주제는 문명에 대한, 더 정확하게는 문명과 인간 이성을 향한 우리의 또 다른 한가지 태도에 대함. 일전의 맹신과 자신과 자부는 하강하고 소강하는 이 선율처럼 사그라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좋고 좋은 것만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거든. 비판기 이전 이성에 대한 태도는 그것을 신적 무언가로 상정하며, 자기자신의 최선을 다하여 최선의 이성을 행하는 것이 가장 신적인 것이라고들 착각하였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열기는 점차 시대의 뒤편으로 떠나가, 마침내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가 열리지, 문명의 고도화는 찬란함 뿐 아니라 비밀리에 그림자를 낳았으니까. 지나친 개인주의와 극단적 자본주의의 폐해, 소외와 인간성 상실 같은 것들이 우리로 하여, 첨단 이성으로 맹진하는 진군의 시대를 지나 회의와 비판, 그리고 해체의 시대로 이끈다.


회의하고 번뇌하는 듯이 조용하게 기어드는 음색. 중간중간 끼어드는 불협화성이 인간의 시대 속, 우리의 정서적 방황을 가리키는 듯하다. 사실 그건 현재진행형이야. 우리는 아직도 너무 높이 쌓아올린 고층건물의 그림자 안을 헤매고 있지. 5번 Florescence는 개화 開花이자 개화기 開化期, 문명이 충분히 개화한 시점에 대함이자, 옛것과 새것이 부딪히며 갈등하는 개화기의 혼란에 대함. 말하자면 신구와 노소, 세대와 집단 갈등 같은, 이 또한 영영 현재진행형이지. 우리는 어쩌면 너무 연결된 탓에, 서로 너무 가까워,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을 것들까지 강제로 내 귓전으로 배송되지. 부른 적이 하나 없고, 얼굴 한번 본적이 없는 자들로부터, 정제되지 않은 발칙한 사상과 두려운 혐오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그럴수록 우린 지레 겁먹어 오해하고, 소리쳐 사방 밀치며 멀어질 수밖에.  


제2주제는 문명의 고도화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를 맞닥뜨리며 갈등하고 반성하고 소강하는 분위기를 향해 차분히 하강한다. 참으로 길었던 19년도 코로나 유행은 연결사회의 맹점이자, 우리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한 가지 그림자가 아니었던가. 각 국의 항공노선이 연결되던 시기, 시민 여러분, 이제 뉴욕까지 하루 반나절 만에 갈 수 있습니다, 지구촌은 연결되었습니다, 지구라는 하나의 세계 아래에, 우리는 모두 이웃이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이렇게 떠들어대던 흥분의 목소리가, 아주 먼 기억 속에 떠오른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 끝없이 인간을 편리에 종속시키는 도시와 콜로나이즈 되어 가는 메트로폴리스 속에서 어떤 것이 썩어가고 있을 줄은.  


인간의 시대는, 아직도 문명과 고층건물의 그림자 속을 헤매고 있지. 세계도 우리 민족도 기나긴 전후 우울증을 겪으며, 오래도록 비탄의 센티멘털리즘을 노래하고 새벽을 기리는 시를 지었으나, 문명의 새벽은 어데 다시 찾았던가. 잃어버린 자부와 자긍의 시대, 누구나 최고로 행복하진 않으나, 누구나 썩 괜찮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노라는 공통된 믿음, 그런 믿음을 자아내는 시대. 이 밤이 지나, 새벽 동이 터오는 것을 보았던가. 아니 아직 그러나,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기림과 바람, 그를 위한 자성과 비탄의 노래가 스러지고, 언제로부턴가 불현듯씩은 이 시대에 체념의 침묵이 감도는 듯한 기분이 들어. 


경제 정세와 경기는 매해 안 좋아질 전망이야, 이제는 좋지 않은 경기와 저성장 기조, 0점으로 소실하듯 기어드는 이 지표들이 바로 NEW-NORMAL이라고들 하지. 이것은 새로운 보통, 고대하던 호시절은 오지 않으리라는 비관의 뜻이 섞여 있는 낱말. 그리고 이것이 시대와 문명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도 상통하는 부분이지. 어쩜 우리는, 너무 오래도록 시대를 방황하며, 또 누군가는 그 시대 한가운데에서 태어나며, 점차 무뎌지고 익숙해진 우울 안에 담겨 있다. 담겨있는지도 다 모른 채로 이 시대의 밤거리 위에 떠다니고 있지. 우리에겐 이 모든 비관과 패배주의가 너무도 오래어, 이제 저항하기에는 친숙한 듯하다. 


오- 너무 우울하게 썼군. 그러나 비관은 비관에 그쳐서는 안 돼.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함이니. 6번 new discovery는 그러므로, 아니 어쩌면 그럴수록 새로운 관점의 모색이 필요하노라 말하는 듯하다. 거의 대부분의 문예는, 그 까닭이 문화에 놓여 있는지, 예술에 놓인 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결말로 맺지. 더 나은 미래, 그것이 무언지 모르며, 어떻게 닿을지 모르나, 우린 그것을 붙잡아야 해. 우린 희망을 노래해야 해. 천성이 비관주의자인 나로서는 썩 공감되지 않는 논지이지만, 서로 붙잡을 결말에 같다. 어쨌든 멈추어 설 수 없고 역행할 수 없다면, 그런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바라고 추앙해야 해. 문명에 새벽 여명이 트는 때까지, 노래하며 기리는 것을 멈추어선 안 돼.


 

김영후 (2).JPG

 

 

책과 지식으로부터 얻은 영감이 음악이 되었노란 사실은 흥미롭다. 나는 음악의 달란트를 지니고 있는 자, 김영후의 행복을 결코 모르겠으나 대신하여서는 글쟁이이기에, 그 반대로 거꾸로 들어 행복을 꾀해야지. 그의 음악이 구석구석 품어둔 영감을 들추매, 음악이 다시 글로 거꾸로 들며 피어나는 영감의 순간에 그의 즐거움을 이해하는 듯한 순간순간을 누린다. 

 

공연이 끝나고 친구와 홀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심상하여 우리는 곧잘 헤어지지 못하고, 어델 가볼까, 왕십리 열십자 복판에 서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다투어 이야기할 것들이 공회전 배기음처럼 드릉그릉 거리고 있었고, 적당히 멀리 'FRANZ KAFKA'라는 빨간 글씨가 우리를 확 끌어 당겨주었다. 크리스마스 치장이 잔뜩 된, 지하의 맥주집은 그 이름만으로도 먼저 특별해져 있었다. 카프카라는 낱말에 외상을 걸어둔 낭만적 기대감과 체코산 맥주를 머금어 삼켜 놓고, 우리는 앞서 떠올린 수많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범인류적 유산, 그 낭만과 좌절에 대하여. 


우린 둘 다 비관주의자, 그러나 비관이 비관에 그쳐서는 안 돼. 그건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거든. 이건 우리가 합의한 퍽 오래된 명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을 대단히 심오한 양 떠드는 것은, 다 지나 볼 제 아주 부끄러운 일이 되어 있곤 했지. 그러므로 새벽, 그게 무얼지 모르고, 어떻게 닿을는지 모르나, 우리는 그것을 말하기를 멈추어선 안 돼. 각자가 꿈꾸는 문명의 새벽은 다르나, 우리는 그것을 노래하는 모습에 있어 똑 닮았다. 너는 정치 사회적 새 새벽을, 나는 인문사회의 새벽을. 오래도록 그래왔듯이 우리는 계속해서 노래하자, 각자의 새벽을. 그리고 김영후의 선율이 그러하였듯, 우리도 감미롭게 노래 부르자, 꿈꾸는 문명의 새벽을. 



 

아트인사이트 컬처리스트 태그.jpg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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