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9+1=10 [공연]

10cm 콘서트 후기
글 입력 2024.02.0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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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마다 십센치의 콘서트를 가는 건 어느새 하나의 루틴처럼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내가 음원으로만 듣던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기대감에서, 두 번째는 마찬가지로 새로 나온 곡들을 들어보고 싶어서, 다음에는 그냥 그의 목소리가 그리워서.

 

그렇게 같은 가수의 공연을 여러 번 볼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올해도 차가운 공기에 이끌려 그의 노래를 들으러 공연장으로 향했다.

 

 

 

2024년 1월 28일은 Nothing witout you로 시작해서 쓰담쓰담으로 끝났다.


 

 

"아무일도 없이 아무런 걱정 없이 일상을 살다가도 I'm nothing without you" - Nothing without you

 

"쓰잘데 없던 나의 손이 이런 용도일 줄이야"

"오갈 데 없던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 쓰담쓰담

 

 

공연이 끝나면 나는 첫 곡과 마지막 곡이 뭐였는지 되짚어 보곤 한다. 내가 공연의 기획자라면, 첫 곡에는 슬쩍 하고 싶은 말의 운을 떼고, 마지막 순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티스트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는지 찾아본다. 하지만, 이번에는 굳이 되짚어볼 필요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진심을 느꼈으니까.

 

본격적인 시작 전, 십센치 공연의 역사, 팬들이 힘이 되었던 순간 등 오늘에 이르기까지 십센치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후 공연의 포문을 연 곡은 제목부터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인 'Nothing without you'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꾹꾹 눌러 담듯 부른 그 노래는 마치 십센치의 음악은 ‘팬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홍대 공연장에서 300석을 꽉 채워보는 게 목표였던 십센치는 이제 자신의 원래 목표보다 훨씬 큰 무대에서 사랑받는 가수가 되었다. 항상 팬들에게 감사할 줄 알던 가수는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이야'라는 가사에 진심을 담았다. 다정하게 툭툭 오늘의 안부를 묻는 것 같은 쓰담쓰담의 따뜻함에 이번에는 벅차오르는 감정과 감사함이 더해졌다.


 


반짝이던 마음 조각, 십센치의 청춘 3부작.



 

달콤한 색감이 물들어 조금씩 정신을 차렸을 땐 알아볼 수도 없지 가득 찬 마음이 여물다 못해 터지고 있어 내일은 말을 걸어봐야지 - 그라데이션

 

예고편이 공개되지 않고 뻔한 엔딩도 맺지 못했지만 나의 마음속 언제나 항상 빛나고 있는 부동의 첫사랑 - 부동의 첫사랑

 

눈을 떠 멋진 밤이 펼쳐지고 있어

세상이 무너지고 끝날 것만 같아도

건강하고 웃고 사랑하고

그대로 찬란하게 있어줘 - 소년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을 담은 그라데이션과 부동의 첫사랑, 그리고 마침내 그 외사랑을 마무리하고, 앞으로의 자신을 응원하며, 반짝였던 마음의 가치를 간직하길 바라는 마지막 이야기 소년까지, 드디어 완성된 10cm의 청춘 3부작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밴드 사운드와, 10cm의 목소리는 마치 한 편의 청춘 영화를 연상케 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참 신기하다. 일이 끝나고, 친한 언니가 차로 집까지 바래다주는데, 언니의 플레이리스트에서 10cm가 피쳐링으로 참여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그 목소리를 듣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마구 올라왔고, 그 후에 나는 “언니, 나 십센치 음악을 정말 사랑하나 봐."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가득 찬 마음은 여물다 못해 조금씩 삐져나와 숨길 수가 없나 보다.

 

 

 

모두에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물할게요.


 

길어야 5분에서 마지막 가사 'good night'과 함께 권정열이 무대 위로 쓰러졌다. 쓰러진 무대는 침대가 되고, 침대에 누워 다음 곡 '메트리스'를 시작하는 연출이 인상깊었다.

 

그 이후로도 즐거움은 계속되었다. 안경 없이 노래하던 십센치의 간절한 기도에 하늘에서 안경 하나가 덩그러니 내려온 적도 있었고, 커피차를 탄 멋진 사람이 객석 주변을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기도 했다. 아마 아메리카노를 꽤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그 사람은 어느덧 이번 곡이 마지막 곡이라고 아쉬움을 표하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뉴진스의 Hype boy. 이 신선한 선곡에 주위를 둘러보며 마주한 눈동자는 평소보다 커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쓰담쓰담으로 노래가 전환되자, 객석에서는 비로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콘서트가 영화였다면, 코미디가 가미된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이런 아이디어는 어때요?


 

이번 콘서트의 VCR은 '부러우면 진짜 배가 아픈 사람’, 안경좌 세 명의 재판', '고영배의 해킹', '버스커 권정열’과 같이 평소 십센치의 행보를 바탕으로 구성된 에피소드가 주를 이뤘다. VCR은 다음 곡들의 컨셉을 설명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했는데, 소란의 고영배님이 공연장 시스템을 해킹해서 침입했다는 영상 이후에 직접 게스트로 등장해서 ‘너를 보네’를 부르기도 했다.


버스커 영상 이후 음향 효과 없이 펼쳐진 공연장 생목 라이브는 생소한 경험이었는데, 목소리만으로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일상의 자연스러운 소음들에서 잠시 벗어나, 십센치의 음악들로 가득 채워진 섬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이렇게 불러줄게요.


 

음원은 아티스트가 마음에 들 때까지 녹음한 곡을 완벽한 상태 그대로 아무 때나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공연은 조금 다르다. 꼭 음원에서 부른 대로, 똑같이 무대를 재현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콘서트에 가면, 가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편곡한 음악을 들려주는 가수들이 있다.

 

십센치도 그렇다.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들었었던 pet은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칭얼거리며 매 순간 떨어지기에 싫은 연인을 귀엽게 표현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공연의 pet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매 순간 있어 달라 속삭이는 듯한 재즈 버전이라 매우 색다르게 다가왔다.

 

애상은 쿨이 부른 원곡과 십센치의 리메이크 버전, 각기 다른 분위기의 두 버전 모두를 좋아하는데, 이번 콘서트에서 십센치는 원곡에 가까운 분위기의 무대를 선보였다. 그의 무대는 연인 간의 나름 심각한 다툼을 신나는 멜로디에 희석해 듣는 사람들이 귀여운 사랑싸움 정도로 들리게끔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마지막으로, 봄이 좋냐는 사랑 노래로 가득 찬 봄노래 중 독보적으로, 커플 사이에 낀 솔로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곡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rock 편곡을 가미해, 벚꽃은 어차피 떨어질 거라면서 툴툴거리는 솔로들의 부러움을 한껏 극대화했다.


음원과 비교했을 때 공연의 또 다른 묘미는 '변수'다. 사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무대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몇 번이고, 틀린 부분을 고쳐서 부르는 것보다는, 흐름이 깨지지 않게, 끝까지 음악을 마무리하는 것이 더 좋은 무대라고 평가된다.

 

감정이 올라와서 부르다 놓쳐버린 소절,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놀라 약간 틀려버린 가사, 깔끔하지 않은 목에 메인 목소리 이 모든 것들은 다시 오지 않을 오늘, 그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요소다.

 

 

 

‘내가 콘서트를 가도 예전만큼 즐겁지 않으면 슬프겠다’는 생각은 괜한 걱정이었다.


 

사실, 10cm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잘 들어왔으면서도, 나는 마음 한구석에서는 '십센치의 곡에는 이렇게 좋은 이야기들이 이미 많은데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내가 콘서트를 가도 예전만큼 즐겁지 않으면 슬프겠다’와 같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사실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글을 쓰고, 음악을 하면서, 내 글과 음악이 뻔하지 않은 이야기인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지면 어떡할 것인지 의식적으로 혹은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도 생각하곤 했다. 자신의 발전을 위한 고민은 꼭 필요하지만, 고민하는 거에 대한 스트레스 보다, 그렇게 방향을 찾아가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이번 콘서트를 보면서 깨달았다.

 

 
"내가 늘 들어오던 음악이라도, 감상마다 느껴지는 바는 항상 다르구나. 그럼 이건 또 다른 즐거움이자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나의 창작물을 다듬고, 돌아보는 자세는 좋지만, 지나친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다. 그냥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말하다 보면, 그게 크게 생각해 보면 같은 말일지라도 또 새로운 이야기가 되겠구나.”
 

 

모든 기록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옮기고, 정리한다. 이번 콘서트에서 느꼈던 많은 감정을 잊어버리지 않게, 나는 이렇게 또 자판을 두들긴다.

 

 

 

정말로 마지막, I am fine thank you and you?


 

 

"나는 잘지내, 고마워. 너는?"

 

 

How are you라고 물어보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I am fine thank you, and you는 우리의 정서로 생각해 보면 군더더기 없는 표현이다. 나의 근황을 말하고, 고마움도 표하며, 상대에게 적당한 관심까진 내비치는.

 

이 곡은 앵콜의 마지막, 콘서트의 막을 내리는 곡이었다. 우리는 마지막을 함께 노래했다. 권정열이 지휘자이자, 노래의 중심이 되어 관객들에게 파트를 분배해 줬고, 넓은 객석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그의 지휘를 따랐다. 우리는 모두의 안부를 묻고, 행복을 기원했으며, 앞으로 다시 보자는 여운을 남기며 작별 인사를 꽤 오랫동안 나누었다.

 

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러 같은 장소에 모인 만 명의 사람들. 다들 어떤 마음으로 걸음 했을까? 감히 모든 이들의 마음을 짐작할 순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이들과 들을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하다. 내가 느끼는 행복을 내 옆 사람과, 그 뒤 사람과도 함께 나누고, 모든 이의 행복을 맨 앞에서 두 팔 벌려 맞이하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노래하는 가수까지. 모든 사람이 행복했던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공연의 이름은 9+1이다. 가수가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해준 것은 팬들이 9 자신이 1, 그렇게 함께 더해져 십센치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 비율이 얼마냐에 상관없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전한 그날, 우리는 모두 10이었다.

 

 

 

원정민 명함.jpg

 

 

[원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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