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우리의 만남을 위해 오실 때
글 입력 2023.11.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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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내내 여자의 문장만 읽기로 했다 中

 

 

우리 만남을 위해 오실 때/경비견을 데려오지 마세요/굳은 주먹은 가져오지 마세요/그리고 나의 호밀들을 밟지 말아주세요/다만 대낮에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울라브 하우게의 시를 읽으면 내가 왜 시인을 사랑했는지 돌이키게 된다. 이제는 시만을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두고 시를 읽는 사람이 됐지만 가끔 이런 시를 만날 때면 그 뒤에 있는 시인을 만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밀려있던 일이 모두 끝난 주말 오후쯤 나는 오랜만에 하우게의 시를 읽으면서 겨울을 맞이하기로 했다.


대낮에 당신의 정원을 보여달라는 말처럼 담백하게 누군가의 진심을 청하는 말이 있을까. 정원 관리는 사람의 손이 많이 닿는 일이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하고 장기간 손을 타야 하는 난이도가 있는 취미. 자신만의 취향이 드러나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 정원이다.


그러한 정원을 보여달란 건 하우게의 간곡한 청 같다. 당신과는 나를 보호할 필요도 없고, 경계할 필요도 없으면 좋겠다.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호밀로 뒤덮은 겉모습을 굳이 파헤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관계이고 싶다. 그런 완곡한 부탁.


대낮은 어떤 치부도 가릴 수 없다. 햇빛은 빛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감싸안아 세상에 드러내보이므로 때때로 낮 아래선 어떤 때보다도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내 정원은 대부분 아마 식물을 잘 다루지 못하는 주인 덕분에 전투적으로 살아남은 것들만 가득할지도 모른다. 햇빛이 드는 쪽으로 고개를 꺾어 자란 식물들과 강하지 못해 스러져간 것들이 거름이 된 그런 약육강식의 정원. 나는 내 정원을 보여줄테니 도망가지 말아달라는 약속 아래서만 내 정원을 오픈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우게와는 친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초라하단 것을 기를 쓰고 숨기려고 하니, 우리의 만남에 경비견 같은 경계도, 굳은 주먹과 같은 긴장도 다 내려놓으라는 하우게의 제안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셈이다. 아쉽지만 나는 그의 시를 경계로 두고 먼발치에서 하우게의 우정을 구경할 수밖에 없겠다.


다시 시인을 사랑한 이야기로 돌아와보면 나는 그 사람이 쓴 시가, 소설이 아무리 맑고 달아도 그것이 문체 주인의 모습일 것이란 기대는 말라는 말을 꽤 여럿에게서 들어왔다. 문학을 전공한 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꽃같은 시를 쓴 사람의 됨됨이가 시정잡배보다 못한 경우가 있으니 섣부른 기대는 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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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그 사람이 쓰는 언어나 문체에서 그 사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나의 오만에 불과한 일이었다. 나긋나긋한 글을 쓰는 사람이 만나 보니 이렇게 거칠 수가 없고, 뾰족한 글을 쓰는 사람의 구사하는 단어들이 참 고운 경우도 있었으니. 시보다 시인이 못한 경우를 발견할 때면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


하우게는 평생을 정원사로 일하며 노르웨이 고향 땅에서 살았다. 목이 마르다고 바다를 청하지 않고, 어둡다고 하늘을 달란 소리도 않는다. 빛 조각, 이슬 한 모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손사래를 치는 모습에서 나는 이번에도 시인을 사랑하게 됐음을 깨닫는 것이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마세요/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 같이/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6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에서 시간이 가는 속도를 눈으로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눈을 깜빡하는 사이에 밤이 올 수 있다. 이런 시간에는 안나 아흐마토바의 <자살하고픈 슬픔>도 생각난다. 하룻밤 사이에도 겨울은 올 수 있다는 한숨은 그의 고향인 러시아를 닮았다.

 

하우게의 시에서도 겨울 공기가 느껴진다. 내가 알던 겨울과는 조금 다르다. 따뜻하고 폭닥한 이불의 감각이 느껴지는 겨울 공기. 겨울이 오면 낮이 짧아 자주 서글퍼진다. 그럴 때면 나는 하우게의 시집을 방패처럼 끼고 겨울 길거리 군데군데에서 그의 따스한 겨울을 펼친다. 그러면 겨울이 덜 미워진다.


겨울은 종종 봄이 오기 전 이겨내야 할 계절로 그려진다. 일년을 열심히 달려온 후 맞이하는 마지막 계절이라서 더 그런걸까. 겨울을 나쁘게만 보고 싶진 않다. 비록 아침에 더 일어나기 힘들어도, 손이 굳어 행동이 느려져도, 어깨 너머로 드는 바람이 원망스럽게 느껴지더라도 계절에는 죄가 없다.


겨울엔 다른 사람의 말에 자주 기대고 싶다. 나는 여태 잘 뿌리내리고 튼튼하게 살아왔지만 타인의 따뜻한 평가에 기대고 싶을 때가 온다. 나의 글은 어떻게 보이는지 묻고 싶은 날도 있다. 내 글은 어떻게 보이나요, 내 글을 쥐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 당신들은 내 정원이 궁금한가요. 이런 질문들 뒤에서 나는 가끔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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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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