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이토록 다채로운 세상에서, 당신의 세계를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글 입력 2023.11.0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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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지는 모르지만 꽤 오래전부터 이런 질문을 내게 던졌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그치만 웬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해도 노력으로 가능한 일일까? 계발할 수 있는 영역 내에 있을까?

 

어쩌면 이건 내 평생의 질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답을 내리기보다 관조하듯 인생을 훑고 주변을 돌아보며 답에 근접해 나가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같다.

 

우연히 아트인사이트에서 인류학과 재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분을 봤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인류학과 재학생으로서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두드려야했고 그럴 때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넓어짐을 느끼셨다고.

 

내가 이전까지 했던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여기에 인류학과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경험과 배울 수 없던 교훈을 얻으셨다는 말에 심장이 혹했다.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인류학과가 무슨 학문이고 어떤 학문이길래 이런 걸 얻을 수 있었는지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인류학과에 재학하시는 민우님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민우님의 세계 일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1년마다 성장하는 사람


 

JH(이하 J). 안녕하세요 민우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MW(이하 M). 저는 인류학과와 언론정보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는 강민우입니다. 영화와 방송 쪽에 관심이 많아서, OTT 플랫폼 중 한 곳에 들어가 콘텐츠 전략의 방향성을 바꿔보는 게 제 꿈입니다. 이전엔 창작자나 소비자의 관점에서 콘텐츠를 평가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과정을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마케팅하는 쪽에도 관심이 있고요. 문화 콘텐츠와 연관된 영역이라면 뭐든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J. 방향성을 바꿔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금의 OTT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이렇게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하는 게 있나요?

 

M. OTT에서 만들고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들의 라인업을 보면, 큰 고민 없이 제작비만 많이 들여서 작품을 찍어내는 상황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2021년 당시 넷플릭스의 <디.피.><오징어게임>, <지옥> 등이 비평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화제가 됐잖아요. 내놓는 콘텐츠마다 이례적일 정도로 반응이 좋았는데, 지금은 <더 글로리> 이후로 작품성으로 화제가 될 만한 콘텐츠는 딱히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일종의 ‘풍요 속 빈곤’인 셈이죠. ‘돈을 많이 들인 건 알겠는데 스토리는 잘 모르겠다’, ‘화면은 예쁜데 개연성이 부실하다’ 이런 평가가 주를 이루다 보니까 2021년과 비교해서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티빙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데, 최근 본 <방과후 전쟁활동>의 경우 고민을 안 한 티가 나는 장면들이 너무 많았어요. 반대로 웨이브의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와 <약한 영웅>, <박하경 여행기> 등을 생각해보면, 콘텐츠 자체는 잘 만들었는데 그걸 마케팅하는 방식이 약하고 소재가 대중들이 흥미를 가지고 유입되기엔 부족한 면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각 OTT들이 지금까지 내놓은 콘텐츠들을 보면, 방향성에 장단점이 다 있다고 생각해요. 티빙 오리지널들이 스케일은 뛰어나지만 작품성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웨이브는 반대로 작품성은 굉장히 좋은데 대중들이 혹할 만한 스케일이나 상업성은 다소 떨어지죠. 시청자의 입장에서 명확한 단점이 하나씩 있다 보니, 각본이나 IP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개입만 들어가도 많은 게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J. 최근 글에서도 ‘각본에 검수 과정이 많이 없는 것 같다’고 쓰셨어요.

 

M. 제가 문제의식을 느낀 게, 요새 한국 영화들 중에서 CG가 별로인 작품은 거의 없거든요. 미술과 촬영 부분에서는 우리나라 스태프들이 정말 잘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근본을 지탱해야 할 각본이 오히려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렇게 많은 스태프들을 데려와서 돈을 들인 의미가 퇴색되잖아요. 최근 한국 콘텐츠들을 보면, 후반부에 가서 각본이 황당할 정도로 허술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많은 제작비를 들인 만큼 본전을 찾으려면 이야기의 핵심 격인 각본에 그보다는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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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논란이 많았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 아트인사이트에는 어떻게 지원하게 되셨어요? 

 

M. 제가 지난 1학기에 처음으로 휴학을 했는데요, 전 항상 일을 찾아다니는 성격이라 ‘뭘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참에 평소에 알고 지내던 백나경님의 레드벨벳 뮤직비디오 분석 글을 보고 아트인사이트를 알게 됐어요. 그때 마침 신규 에디터를 모집하고 있길래, 영화와 관련된 생각을 쏟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을 하게 됐어요.

 

J.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얻고 싶은 게 있었나요?

 

M. 지원서를 낼 때 글 2개를 내잖아요? 두 글을 쓰면서부터 ‘이 활동을 정말 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전 글을 쓰다 막히면 지원을 안 할 생각이었어요. 글을 매주 쓰는 건 굉장히 큰 결심이 필요한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영화와 관련된 인사이트로 3000자 글도 뽑아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안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글을 쓰면서 평소에 좋아했던 작품들을 내가 왜 좋아했는지 꼼꼼하게 돌아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하고 나서부터 달라진 점도 있어요. 예전엔 왓챠피디아에서 즉흥적 감상에 따라 영화 평점을 매겼다면, 이젠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나빴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하에 평점을 매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J. 글쓰기가 가장 큰 이유였군요?

 

M. 네. 그렇기도 한데 저희 학과가 글을 정말 많이 써야 하는 학과거든요. 거의 모든 수업에 매주 글 쓰는 과제가 있다 보니 글쓰기에 익숙해져 있는데, 휴학을 한다고 하니 ‘글 안 써도 된다!’는 해방감보다 ‘글 안 써도 되나…?’(웃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아요. 전 항상 글을 쓰면서 얻어가는 게 많았던지라, 어떻게든 쓰는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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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과 교재. 글쓰는 과제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J. 글쓰기가 힘들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M. 쓰는 것 자체는 고통스럽지 않은데, 마음의 부담은 있어요. 여기에 올리는 글들은 내가 혼자 보는 글이 아니라 플랫폼 내의 많은 분이 보시는 글이잖아요. 제 이름으로 올라오는 결과물은 완벽하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러다보니 글 쓰는 시간이 길어지고 퇴고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네요. 힘들다기보다는 고민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J. ‘오히려 좋아’같은 느낌인가요?


M. 네, 그렇죠. 사실 성장이란 건 고민을 해야 따라오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수업을 듣는다 하면 ‘이 정도 하면 A0 정도는 나오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 했던 수업은 남는 게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선 잘했을지 몰라도 스스로 만족이 안 됐거든요. ‘내가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려면 고민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J.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꼽으라면 ‘성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M. 맞아요. 전 2020년과 2021년, 2022년, 2023년의 저 모두가 다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인터뷰를 한다면 삶의 태도가 확연히 다를 것 같아요. 2020년의 제가 고등학교 시절의 사고에 어느 정도 갇혀 있었다면, 2021년의 저는 수장직을 맡으면서 ‘조직을 어떻게 운영해야 좋을지’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22년은 작품 창작에 대한 고민을, 2023년은 학회의 팀장을 맡으며 어떻게 하면 ‘돈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고민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텀이 1년 주기였던 것 같네요.


J. 각 1년마다 원하는 답을 찾았나요, 아니면 지금도 찾고 있는 중인가요?

 

M. 당시의 고민들은 그때 나름대로 완결이 났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 ‘이런 게 더 있었구나’ 하고 알아갈 테지만, 그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얻어가는 것도 많았고 새로운 질문도 생긴 것 같네요. 다르게 표현하면 스테이지 클리어하는 느낌인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잘하기 위한 단계들을 하나씩 밟아가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요한 건, '한 줄의 인사이트'


 

J. 민우님 글을 읽고 든 생각은 ‘기승전결 잘 나눠서 논리적으로 풀어내신다’였어요. 전 특히 결말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기승전결 네 파트 중 어느 부분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시나요?

 

M. 정말 잘 보셨는데, 마지막 부분에 노력을 많이 쏟아요. 전 어떻게 하면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한 줄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하거든요. 영화나 글 같은 결과물은 제작자 입장에서는 정말 열심히 만든 것일 테지만,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한 줄의 짤막한 평가로 끝날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예로 들 경우 당장 20분짜리 단편영화를 하나 만드는 데도 거의 6개월을 통째로 갖다 바쳐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정하게도 단 한 줄의 평가만 내릴 뿐이잖아요. 그래서 그 한 줄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어떤 걸 해야 하나, 생각을 해봤을 때 저는 결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 얘기도 하고, 저 얘기도 한다기보다는 처음에 많은 걸 뿌려놨다가 마지막에 모든 걸 합쳐서 한 줄의 인사이트를 만드는 게 기억되기엔 더 용이한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결국 한 줄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다보니까 마지막에 항상 공을 많이 들이게 되는 것 같고요.

 

J. 한 줄의 주제는 이미 글 쓰기 전부터 염두에 두시는 건가요?

 

M. 저는 처음에 제목을 정해두고 시작해요. 90% 정도는 그렇게 글을 써요. 결과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으니까,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상세한 내용들은 오히려 글을 쓰면서 찾아가는 편이에요.


J. 여태까지 제목이 수정된 경우가 많나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나요?

 

M. 제목이 수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J. 정말 확고하게 정하고 글을 쓰시나 보네요.

 

M. 네. 사소한 워딩 바꾸는 거 말고 기본적인 틀 자체는 처음부터 가지고 시작해요. 그래서 글 쓰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사실 제목은 되게 짧잖아요. 한 줄 제목을 뽑기까지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면서 2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 있어요. 그러다 제목이 나오면 그 후부터는 쭉쭉 써내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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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기깔난 제목들이 맨 처음부터 나왔단 말이죠..? (<-제목 맨 마지막에 쓰는 사람)

 

 

J. 퇴고도 하시는 것 같은데 퇴고할 때 글을 많이 수정하는 편이신가요?

 

M. 처음에 쭉 쓰는 과정에서 수정을 많이 하지,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면 그 다음부터 문장 구조 자체를 수정하진 않아요. 문장 내부의 표현 정도만 수정하는 편이에요.

 

근데 퇴고를 할 때 여러 번 보다 보면 질리거든요(웃음). 글이 길다 보니 많이 질리고 익숙해져서 수정할 부분을 많이 찾아내지 못해요. 그래서 다 쓴 다음에 다시 읽어보고, 밥 먹고 다시 읽어보고, 한 시간 후에 다시 읽어보는 식으로 시간차를 두고 글을 봐요. 그렇게 해야 완전히 처음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더라고요.

 

J. 맞아요. 저도 퇴고할 때 그런 적 있어요. 글이 눈에 익숙한 상태로 퇴고를 하면 어색한 부분도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말씀해주신대로 시간 차를 두고 퇴고를 했을 때 글이 더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이전까지 쓰셨던 글 중에 가장 쓰기 힘들었던 글은 뭔가요?

 

M. 고민을 많이 했던 글이 힘들었어요. 비판적인 논조의 글이 그런 경운데 길복순, 퀸메이커, 한국 콘텐츠 전반, PC 이렇게 4가지는 소재 자체가 예민하다 보니 ‘이걸 어떻게 건드려야 하지’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PC를 두고 아예 옹호하는 글을 쓰거나 잘못됐다는 글을 쓰면 글 자체가 논쟁의 장이 되잖아요.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선이 어디인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또 한편으로 제가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창작자 입장에서도 많이 생각하게 돼요.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는 게 느껴져서 갖게 되는 애정과, 소비자 입장에서 매몰차게 평가해야 하는 지점의 간극이 정말 크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비판을 위한 비판, 감정을 담은 비판이 아니라 ‘이 콘텐츠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하는 데도 시간을 많이 들였어요.


J. 글을 쓸 때 중요시 여기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M. 아까 잠깐 언급한 ‘한 줄의 인사이트’인 것 같아요. 제가 영화 평론을 할 때도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부담스럽지 않은 인사이트 한 줄을 얻어가도록 만드는 게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는 거거든요. 영화 안에 들어있는 인사이트가 너무 많으면 한 번에 납득되지 않으니까 대중들에게는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한 줄도 없다면 깊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교훈 한 줄을 뽑아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J. 추후 써보고 싶은 글이 있나요?

 

M. 너무 방대해질까 봐 못 쓴 글이 하나 있는데, 콘텐츠 제작사의 방향성 자체를 짚어보는 글을 써보고 싶어요. 제가 학회 하나를 하는데, 그곳에서 하는 일이 회사 하나를 맡아서 이 회사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점을 극복하면 잘 될지를 제안하는 거예요. 이와 비슷하게 특정 OTT 플랫폼이 마주한 과제가 뭔지, 또는 그 OTT가 만드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부족한 점, 제안하고 싶은 점 등을 소비자나 생산자 입장에서 조망해보는 글을 써보고 싶어요. 

 

 

 

실례합니다만, 한 번만 더 인류학과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J. 민우님 글을 보다보니 인류학과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처음 들어보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해서요. 구체적으로 어떤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지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M. 인류학과는 숙명처럼 이 학과가 무엇을 하는지 답을 해야 하는 학과인데(웃음), 누구나 처음 들으면 ‘도대체 뭐하는 학과냐’라고 물어보세요. 다들 짐작하시는 건 호모 에렉투스 같은 거예요(웃음). 근데 그건 분과 중에 하나일 뿐이고 그 자체가 주 분야는 아니에요. 

 

인류학과는 쉽게 얘기하면 문화를 공부하는 학문인데 인류학과에는 모든 걸 다 갖다 붙일 수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정치 인류학부터 문화 인류학, 스포츠 인류학, 진화 인류학, 언어 인류학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학문 분야에 인류학을 붙일 수 있거든요. 즉 ‘해당 학문 분야에서 문화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한 예로 언어 인류학을 들면, 언어 자체를 통해 우리는 그 언어를 쓰는 문화권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어요. 쉬운 예시로 일본은 자기를 낮추는 겸양어를 많이 쓰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표현이 없는 것처럼요. 우리나라와 일본은 높임말이 있지만 미국은 없는 것도 비슷한 예죠. 나라마다 가진 특수한 정서가 언어에 반영되는 거예요. 반대로 그 언어의 사용이 사람들의 특정한 사고방식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해요.

 

그래서 인류학과에서 많이 쓰는 게 민족지예요. 민족지는 특정 문화권의 생활방식을 글로 설명하는 방식의 분석법인데, 어떤 집단이나 문화권에 직접 들어가서 1~2년 정도 현장 조사를 하는 거예요. 경로당을 조사하고 싶다면 그곳에서 2년 동안 살아보는 식으로요.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하는지, 어떤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지 같은 것들을 익혀요. 그렇게 익힌 사고 방식을 글로 표현하는 게 인류학과의 주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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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과에서 작성하는 민족지.

 

 

J. 무수히 많은 다름을 경험하겠군요.

 

M. 맞아요. 인류학과를 공부하며 알게 된 건 모든 사람의 삶의 궤적은 다 다르다는 사실이에요. 사실 인류학과에 다니기 전에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생각이 많지 않았어요. 그냥 내 인생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는데, 여기 오고 나서부터는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떤 삶을 살았기에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 걸까?’를 떠올려보는 자세가 생겼어요. 

 

저는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쯤 된다고 하면, 하나의 세상에 80억 명이 사는 게 아니라 80억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사람들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류학에서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개념이 문화 상대주의에요. 저는 그게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을 글에도 많이 녹여내려 했어요. 장르적 재미를 주제로 평가하는 글도 있지만, 성난 사람들이나 밀양주토피아 등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를 주제로 잡은 글이었거든요. 전 그런 삶의 자세를 인류학과에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인류학과가 더 궁금한 분이 계시다면? 이 영상을 한번 보시라.

 

 

J. 이해라는 얘기를 들으니 민우님이 글에 쓰셨던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말을 걸어야 했다’라는 문구가 떠올라요. 민우님이 생각하는 이해란 무엇인가요?

 

M. 전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오랜 시간을 들인다 해도 그 사람 사고 방식의 총체를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문을 두드려보고, 그 사람이 나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알아보려는 시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노력을 해야만 그 사람과 공존할 가능성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제가 주토피아 글에 썼던 것처럼 ‘병존’과 ‘공존’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병존이 단순히 한 장소에 같이 존재하는 걸 뜻한다면 공존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걸 뜻하는데, 그렇게 돕는 세상은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잖아요. 그런 작은 노력이 결국 그 사람을 이해하는 작은 발걸음이 될 테죠.


J. 인류학과 재학 중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요. 기억나는 사람이 있나요?

 

M. 우선 조선족 분들을 만난 게 기억에 남아요. 한창 코로나19가 터지던 시절 조선족이 정체성의 측면에서 중국과 연관되다 보니 안 좋은 인식이 많이 퍼져 있었어요. ‘조선족이 우리나라에 코로나를 퍼뜨리고 있다’, ‘우리나라를 떠나야 할 더러운 종족이다’ 같은 이미지들이요. 그러나 그건 미디어에서 무차별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였지, 실제로 만나본 그분들은 오히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더라고요. 미디어에서 표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내 앞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만나야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들어진 순간이었습니다

 

또 경로당에서 나이 드신 분들을 만난 것도 기억에 남아요. 경로당에 사시는 분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사신 분들이잖아요. 그분들의 길고 긴 삶의 궤적을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는 오래 사신 만큼 나오는 깊이 있는 통찰과 노련함도, 어떻게 보면 오래 사셨기 때문에 당연히 가지고 있을 편견도 공존했던 것 같아요. 양면이 공존하는 걸 보면서 ‘사람이란 이렇게나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존재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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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서태평양의 항해자들>. 이 책의 저자인 말리노브스키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뉴기니와 북 멜라네시아를 다녀왔고 이때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위 책을 펴냈다.

 

 

J. 여러 집단 속에 들어가서 생활한다고 하셨는데 그 분들과 직접 소통도 하나요? 아니면 가만히 앉아서 개입하지 않고 제3자의 시선으로 둘러보나요?

 

M. 두 가지 모두 병행하는데, 인류학에서 제일 중요한 게 주관성과 객관성의 경계를 지키는 거예요. 내가 보는 대로 기록하는 특성이 있다 보니 인류학은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이게 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가능한 한 제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해요. 그렇다고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만 보면 연구가 안 돼요. 직접 들어가서 그 분들의 음식을 먹어보고 행동도 따라해야 그 집단의 사고방식이 내재화돼요. 

 

이 점이 참 재밌어요. 모호한 경계를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하나의 현상을 안에서도 지켜보고 밖에서도 지켜봐야 하거든요. 인류학은 어렵지만 그래서 재밌기도 한 신기한 학문이에요. 남들이 가질 수 없는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

 

한 번은 교수님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인류학과 학생 중 증권가 면접을 보신 분이 있었대요. 그 분이 마지막 면접 때 “다른 사람들은 다 경제학과인데 당신만 인류학과다. 내가 당신을 왜 뽑아야 하는지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들었어요. 그때 그 분이 “경제학과 사람들이 컴퓨터만 두들기고 있을 때 나는 밖에 나가서 소비자를 직접 만나겠다”고 말했다고 해요. 

 

전 그 말로 인류학과의 정체성을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비자를 미디어상에 표상되는 이미지로만 볼 게 아니라, 직접 그 사람들을 만나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사해볼 결심을 할 수 있는 게 인류학과의 강점인 것 같아요.


J. 듣다보니까 말씀하신 요소들이 언론과도 연관이 될 것 같아요. 언론인도 취재 현장에 들어가서 사람들의 모습을 글이나 영상으로 담아내는 게 주 업무잖아요. 그런 점 때문에 언론정보학과 복수 전공을 하시는 건가요?

 

M. 전 오히려 인류학이 하지 않는 걸 보충하기 위해 언론정보학과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인류학은 참 좋은 학문이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 이상적인 측면도 있어요. 한 집단에 들어가서 생활하다 보면 그 집단에 친화적인 렌즈가 자연스레 생기게 되거든요. 오래 들어가서 산 만큼, 그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는 정말 어려워요. 

 

그런 면에서 언론정보학과가 객관성을 보충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전 객관적 진실이라는 게 언론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인류학과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주관적 진실이 있다면, 언론정보학과에서 배울 수 있는 객관적이고 시야가 넓은 진실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 면을 보충하기 위해 복수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바라만 보던 영화가 삶에 들어오기까지


 

J. 민우님이 쓰신 ‘프로젝트 당신’에 영화 관련 내용이 많더라고요. 영화를 어렸을 때부터 계속 보신 건가요?

 

M. 네 맞아요. 어렸을 땐 판타지 영화를 정말 많이 봤죠. 보고 나서는 ‘만일 내가 판타지 영화를 만든다면 뭘 만들까’하는 상상을 하면서 조그만 노트에 시놉시스 30개 정도를 계속 찍어냈던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독특한 아이라고 많이들 그러더라구요. 다만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느라 바빠서 시놉시스를 잘 쓰지 않았어요. 영화도 많이 보지 않았고요.


J. 대학교 이후 많이 보셨나요?

 

M. 네. 대학교 들어가고 영화 동아리에 들어간 이후부터 다시 그런 활동을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저희 동아리 사람들도 생각보다 영화를 정말 열심히 보시더라고요. 소위 말해 영화에 미친 사람들이었죠(웃음). 그 사람들의 영향으로 영화 연출을 해봐야겠다는 다짐이 생겼고, 기본적인 연출 지식을 쌓기 위해 영화도 많이 봤어요. 최소한 봉준호랑 박찬욱 감독 영화는 다 봐야 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보는 풀도 넓어지고 좋아하는 영화의 기준도 생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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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시는 민우님.

 

 

J. 좋은 영화의 기준이 생겼다고 하셨는데 민우님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무엇인지도 궁금한데요.

 

M.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곱씹어보게 만드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친절한 금자씨>가 대표적인데요, ‘속죄를 하더라도 용서받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죄하려는 마음은 아름답다’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거든요. ‘속죄하는 것만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어’라는 말만 하는 것도 아니고 ‘속죄하면 다 해결돼’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둘 모두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니까 우리에게 생각할 명분을 만들어주죠. 전 그런 것들이 우리 삶과 정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은 결국 삶의 면면에 대한 재현이니까요. 평소 막연하게 생각하던 걸 한번 정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영화가 참 좋은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영화가 ‘메시지를 던져주는 영화’ 중에서 좋은 영화의 기준인 거고요, 재미를 위해 만든 영화라면 그 재미를 확실히 살린 영화가 좋은 영화라 생각해요. 대표적인 사례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예요. 이 영화는 히어로 영화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어요. 도입부터 결말까지 모든 순간이 설렜기 때문에 왓차피디아에 평점 5점을 줬어요. 제 주변 친구들은 5점을 준 친구가 없는데 말이에요. 아마 히어로 영화에는 5점을 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요(웃음). 

 

항상 두 가지 기준에서 영화를 보고 판단해요. 둘 다 포함되면 정말 좋겠죠?


J.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M. 항상 두 영화를 꼽는데 우선 <더 랍스터>가 있어요. 아까 말했던 삶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잘 맞는 영화거든요. 사랑을 반드시 해야 하는 사회와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두 개가 나오고, 영화는 두 사회의 폐해와 함께 그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 군상을 그려내요. 세상에는 연애와 결혼을 필수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혼주의를 외치며 혼자인 삶을 택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두 가지 사고 방식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압박과 강요를 견디며 살아가는지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하나는 <마더>인데, 어머니의 단상을 잘 해체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하면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어머니라는 말 안에 그런 의미만 존재하진 않잖아요. 그 이면에 있을 수 있는 것들을 정말 깊게 분석한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주연 배우가 김혜자님이었다는 사실도 너무 좋았어요. 그 분은 이미지 자체가 인자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어머니 상에 어울리는 분인데, 그분한테 악에 받친 표정을 짓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악역 전문 배우를 썼다면 그만큼의 충격이 안 왔을 텐데, 워낙 착하고 따뜻한 역할을 많이 맡은 분이셔서 신선했어요. 

 

 

민우님 선정 최애영화 <더 랍스터>의 예고편.

 

 

J. ‘프로젝트 당신’에 <죽일 년>이라는 단편을 만드셨다고 쓰셨어요. 해당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잠깐만 부탁드려요.

 

M. 오이디푸스 신화와 비슷하게 ‘누굴 죽일 운명을 타고났다’는 예언을 받은 여고생이 있어요. 이 친구가 어떻게 그 예언을 실현하게 되는지에 대한 얘기에요. 여기서 <죽일 년>은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사람을 죽일 년’이라는 미래 예언의 의미가 있고, 정말 본성이 나쁜 사람을 일컫는 ‘죽일 년’이 있죠. 그 간극이 모호하게 합쳐져서 운명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서 쓴 단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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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년> 촬영 사진들. 꼭 한번 보고 싶다..!

 

 

J. ‘사진에만 찍히는 여자, 사진에만 찍히지 않는 남자’ 설정도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요.

 

M. <프레임 아웃>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나리오였는데요. 우리가 보통 ‘심령 사진’이라고 부르는 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져요. ‘사진에는 찍히지 않는데 존재는 하는’ 사람도, ‘실제론 없는데 사진에는 찍히는’ 사람도 유령이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진’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세계 같다고 생각했어요. 현실 세계가 있고, 사진 속의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거죠.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이 두 세계 모두에 발을 붙이고 살지만, 만약 한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각각의 세계에 위태롭게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하다가 나온 설정이에요.

 

J. 너무 흥미로운 설정인데요. 만날 수 없는 존재인데 만나는 지점이 있나보죠?

 

M. 그렇죠. 그런 지점을 생각하다 보니 나온 스토리였죠. 남자와 여자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의 세계에서만 산다’는 점은 똑같기 때문에 나오는 공통점도 있거든요. 다르면서도 같은 지점에서 타인에 대한 이해를 생각해보려 했던 것 같아요.

 

이처럼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가진 너를 이해하기까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항상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 같아요. ‘계획형 연쇄살인마인 남자와 기분파 사이코패스인 여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그런 관점에서 썼는데, 두 사람은 계속 서로를 자신의 신념에 맞게 개조하려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요. 실패는 뼈아프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니까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되죠. 두 사람은 다른 특성을 지녔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면에선 똑같잖아요. 다르면서도 같은 사람들의 설정에 항상 매력을 느껴요.


J. 흥미롭네요. <프레임 아웃>의 결말은 어떤가요?

 

M. 두 사람의 설정 중 하나가, 사진에만 찍히지 않는 남자의 경우 자신이 사진 속 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려면 자신과 닿은 물건도 사진에 나오면 안돼요. 펜을 잡고 있는데 그게 공중에 붕 뜬 채로 나오면 이상하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잡은 물건이 사진에서 사라지는 능력이 있고, 반대로 사진에만 찍히는 여자의 경우 자신과 접촉한 모든 물건들이 실제로 보이지 않게 되는 능력이 있어요.

 

그런 두 사람의 존재를 세상에 까발리려는 빌런의 계획이 있지만, 최종적으론 그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으면서 끝나요.

 

J. (흥분한 목소리로)두 사람 모두 사라지나요?

 

M. 네, 서로 사라지는 거죠.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되찾는 게 아니라, 두 세계에서 모두 사라지면서 둘만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나는 것이 결말이었어요. 결국 너와 내가 다른 면이 있더라도, 그럼에도 공유하고 있는 서로의 같음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공존의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모든 사람은 각자의 다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같으니까요.

 

J. 와, 나중에 만드실 민우님의 작품이 기대되는데요(웃음). 마지막 질문 드리고 끝낼게요.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셨는데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문화는 무엇인가요?

 

M. 사실 문화라는 건 결국 업계의 관행을 의미하는 거겠죠. 업계 안에서 오랫동안 지속됐고 아무도 바꾸려고 생각하지 않지만, 바꾸고 나면 좋을 것들이요. 아까도 설명드렸지만 저는 각본에 대한 검수 과정을 좀 더 체계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초기 단계에서 작가만 작품을 쓰는 게 아니라 스태프들이 정기적으로 들어가서 함께 집단 검수를 한다든지, 감독만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제작사에서 꾸린 평가단의 검수를 받는다든지 하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평가가 아쉬운 작품을 보면서 생각이 들었던 게, 객관적인 시선에서 검수만 제대로 받았더라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작품을 많이 만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발견하지 못한 허점이 있지 않나는 생각이 들어서, 일반인과 대중의 시선을 환기해줄 모니터링단이나 평가단을 만들어서 스토리를 꼼꼼히 검수한다면 어떨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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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SUMMIT 2023에서 발표를 하고 계신 민우님. 민우님은 제 2회 Mobidays Young Marketers Championship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수상, 추후 열린 MAX SUMMIT에서 수상작을 발표하셨다. 출품작은 <무채食의 시대는 끝났다>.

 

*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 쯤 된다고 하면, 하나의 세상에 80억 명이 사는 게 아니라 80억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이 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 건, 그것이 너무나 큰, 정말 거대한 하나의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이해는 '충돌'의 과정이다. 서로 다른 세상이 만나 각자의 다름을 확인하는 혼돈의 과정이다. 충격이 얼마나 덜하냐, 더하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해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이해가 어렵다는 것에 큰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려운 것을 기꺼이 인정하고 강박적으로 나를 옥죄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그렇게 아낀 에너지를 이해하는 것에 쓰면 되지 않을까. 이 세상엔 무수히 많은 세상이 있고 난 그런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다. 어렵지만 도전해보고 싶다. 어렵기에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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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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