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 묻은 속죄의 칼끝에 용서가 맺히지 않더라도 [영화]

우리는 왜 금자씨에 측은함을 느낄까
글 입력 2023.01.2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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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세계는 늘 ‘망한 것들’로 가득하다. 망한 우정(<공동경비구역 JSA>), 망한 복수(복수 3부작), 망한 사랑(<박쥐>), 망한 불륜(<헤어질 결심>)까지. 물론 결과만 놓고 봤을 때 그렇다는 거고, 동시에 박찬욱은 그것들이 망해가는 과정을 극도로 탐미주의적으로 훑어낸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비록 주인공의 여정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처절한 붕괴뿐이더라도, 그 과정의 잔혹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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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의 작품들 중에서도 이런 탐미주의가 단연 돋보이는 영화다. ‘리즈시절’ 이영애의 미모, 시종일관 우아한 연출의 톤, 하얀색과 빨간색의 지속적인 대비까지. 그야말로 ‘엄청나게 예쁜’ 영화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그 짙은 아름다움만큼이나, 전하고자 하는 바 또한 깊고 심오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와 함께 묶이는 이 영화가 ‘복수 3부작’ 안에서 갖는 의미도 결코 가볍지 않다.

 

 


친절한 금자씨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금자씨가 아동유괴범 백 선생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당시 교생이었던 백 선생의 집에서 지내던 금자씨는, 알고 보니 극악무도한 인물이었던 백 선생의 아동 유괴 및 살해를 방조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딸을 인질로 잡혀 백 선생의 죄까지 덮어쓰게 된 금자씨는, 교도소에서 ‘친절한 금자씨’로 거듭나 복수의 조력자를 차근차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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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복수극들과 이 영화가 다른 지점은, 금자씨가 복수의 목적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물론 금자씨도 백 선생에게 복수할 명분이 충분하다. 자신을 13년간 감옥에서 썩게 했고, 자신과 자신의 딸을 떨어뜨려 놨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자씨가 정말로 이 복수를 하려는 이유는 개인적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금자씨의 복수는, 자신의 방조하에 백 선생이 죽인 아이인 ‘원모’에게 바치는 복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영화의 주제는 ‘복수’에서 ‘속죄’로 변주된다.

 

 


겸허한 금자씨


 

박찬욱의 ‘복수 3부작’에서, 금자씨는 <복수는 나의 것>의 박동진이나 <올드보이>의 오대수와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세 인물은 복수의 행위자도 대상자도 될 수 있는 복잡미묘한 관계 안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박동진과 오대수의 복수가 자신이 입은 직접적인 피해에 대한 뜨거운 복수라면, 금자씨의 복수는 타인이 입은 피해에 대한 차가운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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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금자씨는 복수 앞에 겸허하다. 금자씨가 쥔 복수의 칼은, 자신이 아닌 남이 쥐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금자씨는 마치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나긋나긋한 톤으로 말하고, 총을 손에 쥐고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조차 기꺼이 포기한다. 하늘에 있는 원모에게 띄워 보내야 할 속죄의 복수는, 그토록 숭고하고 거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가 원모 1명이 아닌 여럿이라는 점이 밝혀졌을 때, 금자는 친절하게도 복수의 기회를 그 유가족들에게 양보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유가족들이 살아 있는 백 선생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고 끝내 죽이고야 말 때, 금자씨는 백 선생의 시체에 총 두 발을 쏘는 것으로 만족한다.


복수의 여정에서 금자씨가 속죄해야 하는 인물은 셋이었다. 백 선생이 죽인 원모, 원모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딸 제니. 먼저 원모의 가족을 찾아간 금자씨는 손가락을 잘라 가며 속죄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결과적으로 복수를 함께하며 간접적으로나마 용서를 받는다. 이후 금자씨는 제니에게도 그녀의 요구대로 ‘세 번 사과’를 하고, 역시 용서를 받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으로 유가족들과 함께 복수를 끝낸 후, 금자씨는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원모의 영혼을 마주한다. 금자씨는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원모와 대화를 시작하려는데, 그때 원모는 백 선생의 것과 똑같은 재갈을 금자씨의 입에 물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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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금자씨


 

그러니까, 금자씨는 영혼의 구원을 얻는 데 실패했다. 기나긴 여정을 거쳐 원모의 가족과 딸인 제니에게는 용서를 받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피해의 당사자인 원모에게는 전혀 용서받지 못한 것이다.

 

아마 금자씨가 구원받는 데 실패한 건, 속죄와 용서를 수학의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개념으로 착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속죄해야 되는 거야.

큰 죄를 지었으면 크게, 작은 죄를 지었으면 작게.”

 


속죄에 대한 그녀의 철학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속죄가 작든 크든, 피해자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금자씨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인 금자씨가 가해자인 백 선생의 입에 재갈을 물린 것이 합당한 처분이듯, 피해자인 원모가 가해자인 금자씨의 입에 재갈을 물린 것 역시 응당한 처벌이자 권한이었다.

 

최근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복수극 <더 글로리>에서 시청자들을 분노케 한 이사라의 대사를 떠올려 보자.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받았어."

 

 

물론 아무도 이 대사에 공감하지 않는다. 구원은 셀프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은 가해자의 속죄와 피해자의 용서가 맞닿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비록 이사라의 속죄와 금자씨의 속죄가 두 극에서 다른 비중으로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용서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지 않은 셈이다.

 

 

 

그래도, 금자씨


 

금자는 속죄를 위해 서슬 퍼런 칼을 꺼내들었지만, 그 칼끝에 맺힌 건 피뿐 용서는 아니었다. 그리고 원모의 그 결정에 대해 누구도 부당하거나 불공평하다고 평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3자인 우리는, 새하얘지려고 두부에 연신 얼굴을 박아대는 금자씨에 대해 측은함을 느낀다. 결국 용서도 없고 구원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속죄를 위해 최선을 다한 금자씨였다는 걸. 흰색으로 돌아가려는 빨간색과, 그대로 남기를 선택한 빨간색은 다르다는 걸.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해자가 아닌 우리에게 금자씨를 용서해줄 자격은 없다지만, 우리는 금자씨, 아니 금자씨들을 가련히 여기고 보듬어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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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복수 3부작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 보자. 금자씨가 박동진이나 오대수와 다른 점은 사실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파멸하지 않는다는 것. 박동진은 육체가 파멸되고 오대수는 영혼이 파멸되지만, 금자씨는 복수 끝에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완전히 파멸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딸과 재회하는 그녀 위로 새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장면은 희망차기까지 하며,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분노가 아닌 안도감을 느낀다.

 

물론 그 이유는, 우리가 금자씨에게서 속죄를 향한 끝없는 열망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해자의 딸인 제니의 마지막 대사를 오롯이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다.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

 

 

[강민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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