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ge를 따라서] 수백가지 분자의 향, 커피

글 입력 2024.01.2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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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진 않지만, 생태계의 탄생과 존속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비생물 요소라고 부른다. 공기, 흙, 빛, 물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물은 직접 마셔 충족해 주지 않으면 빠른 시간 안에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이러니 지구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액체가 물인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콜라나 맥주 등을 떠올렸을 수도 있지만, 답은 커피다.


사실 이는 잠시만 생각해 봐도 당연한 결과다. 한국만 해도 세 걸음마다 카페가 있고 누군가를 만나도 어느 카페에 갈지부터 찾는 카페의 나라다. 역사적으로 커피와 관련이 적은 한국에서도 이 정도이니, 대다수의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카페인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수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에 커피를 끊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물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음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커피의 매력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한가지가 ‘향’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커피도 마치 와인처럼 전문 테이스터가 존재한다. 또한 와인의 향을 분류하듯 커피의 향도 아주 섬세하게 분류된다. 밝은 산미가 느껴지는 복숭아 노트의 커피부터 고소하고 달콤한 초콜렛 노트의 커피까지 말이다. 커피에 향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맛있게 마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향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킨 커피임에도, 향을 다룸에 있어 중요한 향수에 있어서는 유효한 커피 향 향수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유난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커피 ’향’에 반감을 가진 이들도 많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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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천연 향은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완벽히 천연향과 일치하는 향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향을 이용하여 어느 정도 천연과 유사한 향을 만들어내게 된다.

 

만약 향 자체가 아주 많은 수의 화학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핵심 향의 개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커피 향은 약 800-900개 정도의 향기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커피 향’이라고 느껴지기 위한 핵심적인 분자는 40여 개다. 어느 향을 재현할 때나 똑같지만, 더 간단한 개수의 향 분자를 가지고 향을 재현하려 할수록 어딘지 밋밋하거나 미묘하게 인공적인 느낌의 향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이 아닌 커피에서 직접 추출한 커피 에센셜 오일 혹은 앱솔루트를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물론 이도 가능하지만, 천연향료를 사용하는 것은 늘 높아지는 단가와의 싸움이다. 또한 용매 추출법을 이용한 커피 앱솔루트는 커피 특유의 향을 완벽히 추출해내기도 어려웠고, 색은 진하고 점성도 높았기에 제품에 적용하여 다루기가 어려웠다.

 

최근엔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초임계 추출법이 발전하여 이러한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커피의 핵심 향을 거의 파괴하지 않으며 연한 색상의 오일을 추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가격은 값싼 향료들에 비하면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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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진짜 커피의 냄새를 기대하고 커피 향 제품을 접한 이들은 실망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만들어진 커피 향을 선호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커피 노트의 향 제품들이 꽤나 많이 보여 접해보면 과거보다 진짜 커피향에 매우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일명 ‘니치’ 향수의 유행으로 독특한 노트의 향수들이 인기를 얻었기에 일반적인 플로럴 노트보단 덜 친숙한 커피 노트를 선택하는 비중이 과거보다 높아졌다.


커피는 정말 다양한 향을 지니고 있다. 고소한 향부터 카라멜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거나 초콜렛처럼 달콤쌉싸름한 향도 느껴진다. 거기에 향신료의 스파이시함이나 나무 향, 마른 건초 향도 섞여 토바코(Tobacco)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바로 이 복잡하고 섬세한 향이 다른 노트들의 매력을 살리면서 개성 있는 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간단히 떠올려보면 여성스러운 향을 표현할 때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라떼 같은 커피, 남성적인 향을 표현할 때는 가죽과 담배를 연상시키는 쌉쌀한 커피로 어느 분위기에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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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향수 가게에서 커피하면. 떠오르는 건 커피 향 향수보다는 커피 원두이다. 우리의 코는 한가지 향을 오랫동안 맡으면 쉽게 피로해져 향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후각 피로 현상’이라고 한다. 내가 뿌린 향수 냄새, 우리 집 냄새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타인의 향은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 후각의 피로는 악취에 적응해야 할 때는 유용하지만 향수를 고를 때는 방해가 된다. 향을 몇 개만 맡아도 금세 향이 잘 안 난다거나 구별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커피 원두는 바로 이때 등장한다. 커피 원두의 향을 맡으면 후각이 환기되면서 코의 피로가 조금은 풀린다는 것이다. 과연 사실일까?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커피 원두는 후각의 피로함을 풀어주는 것에 그다지 큰 효과가 없어 레몬 조각의 향을 맡는 것과 유사한 정도의 수치를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후각 피로 완화에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무엇일까? 사실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일정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낫겠지만, 커피 원두보다 효과가 있는 방법은 스스로의 살냄새를 맡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후각이 점점 마비되는 기분이라면, 다른 향이 묻지 않은 자신의 살냄새를 맡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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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플로럴이나 시트러스처럼 자주 쓰이는 향기 노트는 아니지만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왠지 가을에 어울리는 지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는 커피 향. 꽃이 아닌 좀 더 개성 있는 향을 찾는다면 커피 노트의 향수를 추천해 본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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