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자라 결국 내가 되겠지 [사람]

솔직할 준비
글 입력 2024.03.0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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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십 대는 자기혐오와 어리광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학에 오면서 목표를 잃고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서 헤매던 중에 사람을 잘 만나지 않고 나도 남도 어색하고 싫은 시기를 꽤 오랫동안 보냈다.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면서도 어설펐다. 알바하러 나갈 때면 깊이 다짐을 해야 했고 어느 날은 과하게 친절하고 또 어느 날은 너무 쌀쌀맞게 굴었다. 높이가 심하게 다른 징검다리를 건너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은 푹 꺼졌다가 또 어느 날은 제멋대로 치솟는 게 반복되었다.


나는 문제의 원인을 알고 싶어서 자꾸만 정신질환과 관련된 영상을 봤다.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하다 보면 감기가 암처럼 큰 병으로 여겨진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나도 자꾸만 수많은 정신과적인 진단명들을 내게 대입했고, 진단의 체크리스트에 높은 비율로 해당이 되었다. 나는 대단히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번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진단명을 다 적어 보았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공포 회피형 애착유형, 성인 ADHD, 착한 아이 콤플렉스, 소시오패스, 아스퍼거 증후군, 트라우마, 사회 공포 장애, 의존성 성격장애, 결핍된 내면 아이, 회피성 성격 장애, 자의식 과잉, 강박 장애, 연극성 인격 장애.

 


이 무시무시한 진단명들이 전부 다 내 얘기 같았다. 사실은 몇 개는 아직도 고려하고 있다. 정신과에 가서 ADHD 진단을 받아볼 생각까지 했다. 이렇게 스스로를 의심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씻은 듯이 나아서 나는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

 

내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네 가지 노력을 했다.

 

먼저 나는 어린 시절을 되돌아봤다. 어렸을 때의 애착 형성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크게 사랑받은 것 같지 않았다. 항상 사랑을 갈구했고 쌍둥이 동생과 나를 비교했으며, 관심은 아무리 받아도 부족했다. 나는 부모님께 수용되고 싶었는데 나 자체로 수용 받을 자신이 없었다. 부모님이 사랑하지 않고 못 배길 만큼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생겼던 것 같다.

 

단편 영화 ‘리코더 시험’에서는 은희가 엄마에게 “엄마 나 예뻐?”라며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물음이 어려워서 은희는 망설이고 입술을 씹는다. 왜냐하면 그냥 예쁘냐는 물음이 아니라 사실은 “날 사랑해?” 라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에 대한 수용을 묻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 존재의 자리를 찾지 못해서 내 존재가 받아들여질까 하는 걱정이 담긴 질문이라서 은희는 쉬이 말을 내뱉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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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그런 마음이었다. 나는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 같고 내가 누군지, 뭘 하고 싶은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고. 날 잡아주는 뿌리 하나 없이 외로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가면을 쓰고 살았다. 착하고 순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체했다. 귀찮은 일을 도맡으려 했고 짜증 한번 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한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게 처음엔 가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삼 년 내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그건 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노력이 가상하다 인정받은 것 같으면서도, 나의 행동이 가식이라는 의심을 샀다는 것을 듣고 덜컥 불안해졌다. 하지만 조금 부자연스러운 것이니 더 노력하면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최근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너는 뭐든 좋다고 하는데, 나중에 보면 아닌 것 같더라. 근데 그게 다 티가 난다.” 나는 여전히 고등학생 때에 머물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내 가면을 쓰고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람인 척 연기를 하며 살았다. 그 가면 뒤의 나는 연약하고 쉽게 주눅들고 싫은 게 참 많고 귀찮은 게 싫은 어린애인데.

 

그 가면은 너무 연약해서 조금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면 금세 알아챘다. 다정한 사람들은 이걸 모른 체 해줬고 성격 급한 이들은 대놓고 물어보곤 했다. 남도 나도 속이는 연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심리 상담을 받았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원인을 모르겠기에 그걸 객관적으로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선생님과 뭔가 손발이 맞지 않았다. 나는 묻지도 않은 것을 말해놓고 후회했고 선생님은 내 얘기를 다른 애의 이야기인 양 나에게 얘기했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함부로 전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상처받았다.

 

그래도 상담을 통해 나에 대해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편향이 있다는 것이다. 9가지 좋은 일이 있고 1가지 나쁜 일이 있다면 나는 그 안 좋은 것 하나에 신경을 쓴다. 상대의 행동과 말에 내 멋대로 의미 부여를 해서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나쁜 일만 기억하고 좋은 일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나의 어렸을 적을 나쁘게만 여기는 것도 좋은 기억을 남겨두지 않는 탓일 수도 있었다. 그게 정말도 모두 나빴던 게 아니라.

 

또 심리검사에서는 자극 추구와 위험 회피 성향이 동시에 높게 나왔다. 자극 추구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꾸 시도하는 성향을 의미하고 위험 회피는 익숙함을 좋아하고 리스크가 있는 일은 꺼리는 경향성이다. 하나는 엑셀, 다른 하나는 브레이크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높은 나는, 우습게도 액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며 뒤뚱뒤뚱 운전하고 있었다. 양발 운전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간 더 힘들었을 수 있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위로받았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자아 강도가 높다, 고 하셨는데 이는 조금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비판에 아주 악한데 어떻게 내가 자아가 단단할 수 있지? 외부 자극에 휩쓸리지 않을 힘이 내게는 있는 걸까? 하면서 나도 모르는 나를 알아가며 용기를 얻었다.

 

한 편으로는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려 했다. 의외로 친한 친구들과의 대화는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그 아이들은 나를 잘 알면서도 나름의 미해결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자꾸만 나를 비난하기 일쑤였다. 제 코가 석 자인 것 같았다. 오히려 친구보다 애매한 타인이 실마리를 주었다. 나와 같은 쌍둥이인 사람을 만났고 그때 했던 대화가 힌트가 되었다.

 

나는 쌍둥이라는 정체성이 나를 강하게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둘이었던 사이, 평생을 의식하고 경쟁하던 나의 반쪽이 있는 게 남들이 하기 힘든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의 남동생은 나에게 평생 경쟁상대였다. 얘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내고 싶고 더 사랑받아야 했다. 최소한 같은 것을 받아야만 억울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롯이 사랑받지 못했다는 억울함과 비교 의식이 있었다.

 

다른 쌍둥이도 그런지 궁금했다. 같은 성별의 쌍둥이들은 오히려 좋아 보였다. 둘도 없는 친구처럼 보였고 그 아이들은 저들끼리 잘 화해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동생과 나는 몇 년이나 제대로 대화를 안 하는 시기가 있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일도 많았다. 앙숙이었다. 사이 좋은 동성 쌍둥이 말고 사이 나쁜 이성 쌍둥이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친구의 남자 친구와 밥을 먹을 일이 있었는데, 그분도 이란성 쌍둥이이고 여동생이 있는 것을 알고 물어봤다. “나는 남동생에게 경쟁의식이 있다. 당신도 그러하냐?” 했더니 자신은 아무 생각 없는데 여동생이 자신에게 비교 의식을 가진다고 이야기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나와 비슷했다. 아주 조금의 차이도 못 견디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너는 아무렇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냥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것도 내 남동생과 비슷했다. 내 남동생은 그냥 나를 의식하지 않았고 애초에 나한테 큰 관심이 없다. 내가 어떻게 살든 별생각 없고 자기가 즐거우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잘 화해는 했냐? 지금 둘의 관계는 어떠하냐.”라고 물었는데, “하도 여동생이 억울해하길래 어른들께 용돈을 받으면 반절을 준다. 걔가 따로 용돈을 받았더라도 상관없이 반을 떼준다.”고 말했다. 그게 그 나름의 위로 같은 것인가 보다. 그 얘기를 듣고 벙찌면서도 괜히 눈물이 났다. 나만큼 쌍둥이를 질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반가웠다. ‘왜 우리는 이렇게 반쪽을 미워해 왔을까, 왜 이리도 속이 좁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쌍둥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적인 감정들을 듣는다면 나는 조금 나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구정에는 친척 집에 가면서 엄마 아빠와 대화를 나눴다. 나를 충분히 사랑해 주지 않은 것이 밉고 부모에게 잘 보이려 평생을 착한 아이인 척 연기하면서 살아온 내가 싫었다. 그러다 보니 내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를 잘 모르는 엄마 아빠가 미웠다. 내가 개성 없고 호불호 없고 자기 색 없이 희멀건 애로 자란 게 어느 정도는 부모님 탓 같았다. 왜 나는 그렇게 살았을까.

 

이런 비슷한 대화를 이전에도 했는데 아빠가 주변 학원 원장님한테 내 증상을 얘기하면서 물어보셨다더라. 그랬더니 “모범생 콤플렉스”라는 진단을 내려주셨단다. 뭐든 잘해야 하고 사랑받아야 하고 남의 평가에 과도하게 민감해하고. 이는 바르고 착한 애를 연기하는 모범생들이 겪는 일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것도 같았다. 전부 다 해소되지는 않았으나 나를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아빠의 모습이 기꺼웠다.

 

또 요 몇 달간, 연애 프로그램을 엄청나게 많이 봤다.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 무의식적인 반응을 보면서 나의 모습이 절로 돌아봐졌다. 감정적이고 사랑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비일상적 공간에 갇혀 촬영하는 동안 일반인 출연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인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곤 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도 가끔 하는 행동들이었다.

 

연애 프로그램은 시청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리뷰와 해석 영상까지 잔뜩 봤다. 같은 행동을 두고 다르게 해석하는 걸 보면서는 같은 걸 보고도 제각기 다르게 평가하는 걸 보고 다들 제 입장에서만 보는구나. 그러니까 주관적인 남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남한테 피해만 안 준다면 내 맘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도 비겁한 행동을 하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대리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 성숙하고 멋진 출연진들을 볼 때면 저렇게 안정된 정서를 갖는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

 

나는 아직도 확신이 없다. 어제도 소리내서 울었다. 하지만 이야기할 친구가 있고 원망을 들어주는 부모님이 있는 내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배불러 보일 수 있겠다. 꽤 괜찮은 상황에서 어리광 부리는 애처럼 보이겠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불안 장애를 겪던 작가의 에세이가 많은 인기를 얻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걸로 죽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팔자 좋다.’는 반응이 한편에 있었던 걸로 안다. 그런게 무서워서 나도 이 글을 적기가 조금 두려웠다. 그렇지만 이런 배부른 소리라도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적어봤다.


무시무시한 정신질환 대신, 오늘의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진단명은 ‘과도한 페르소나 사용으로 인한 자아의 미확립’과 ‘사회불안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다. 이만큼 극복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희망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만 아직 나도 내 문제를 전부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 더 많이 대화를 나누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려고 노력하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어리광을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 나의 내면에 억눌린 내면 아이를 충분히 달래고 싶다. 그래서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히 행동하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동안 유익했던 유튜브 채널을 소개하고 싶다. ‘상담 심리사 웃따’와 ‘심리 대화 LBC’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객관적이고 다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영상들이 많아서 추천한다. 그리고 진짜 의외로 MBTI에 관한 글들도 나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잘못하고 있지만 사람들과 대화하고 부딪히는 것도 은근히 도움이 된다. 내 머릿속에서는 최악이었던 상황들이 막상 마주하면 별것이 아니기도 하니까 한 줌의 용기를 내어 보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자라 결국 내가 되겠지.” (문문-비행운) 이다.

 

내가 자라서 내가 되는 건, ‘겨우’로 치부할 만한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 그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일이라는 것. 내가 미워서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왔고 이제야 겨우 솔직하게 살 준비가 되었는데, 내가 나인 것을 부끄러워하고 부족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

 

나로 살기 위해 이만큼 돌아왔다. 여전히 연약하지만, 솔직해질 준비가 조금은 된 것 같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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