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나의 프랑스 적응기 4] 당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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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살면서 자신의 장점을 묻는 질문은 여러 차례 받아 봤다. 새 학기 교실에서, 어떤 면접에서, 어떤 어색한 첫 만남에서 우리는 주로 상대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곤란했다. ‘장점’이라는 것이, 참 대답하기 까다롭고 동시에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에서 기반한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어쩐지 나 스스로를 자랑하고 싶어서 우물쭈물하다가도, 내 장점이 과연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게 맞는지 확신하지 못해 그만두곤 했다.
이 악기는 잘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잖아. 달리기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 그런데 내가 감히 이런 걸 내 장점이라고 불러도 되나? 보통, 정말 누가 봐도 멋지게 눈에 띄는 걸 장점이라고 하지 않나? 매번 곰곰이 고민하다, 결국은 누구에게도 공격받지 않을 만한 안전한 특징을 꺼내곤 했었다.
지금의 나는 프랑스에서 기나긴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다. 프랑스에 와서 느낀 것은, 모두가 칭찬을 잘 주고받는다는 것. 겸손과 눈치를 미덕으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온 나에게는 조금 낯선 문화였다. 타인, 혹은 자신을 긍정하는 어떤 말들이 지나치게 쉽게 나오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조금만 배려해도 “C’est gentil”(정말 친절하시네요!)가 나오고, 요즈음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는 선생님께는 조금만 미리 준비하고 대답해도 “Tu es manifique”(너 정말 대단해!)가 나온다.
내가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은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칭찬하는 데에 일색이시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성격일 수도 있고, 프랑스인들이 모두 가진 성향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내가 공부를 그만두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달콤한 응원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프랑스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로 끙끙 앓던 나에게 선생님이 어느 날 나에게 갑자기 하셨던 한 칭찬이 있다.
“Tu es une personne avec une grande sensibilité!”
(너는 굉장히 ‘sensible’ 한 사람이야!)
나는 순간 어떤 반응을 내야 할지 몰라서, ‘오...’하고 작은 탄식을 냈다. ‘sensible’한 사람이란 곧 ‘예민한 사람’이라는 뜻일 텐데, 한국에서 그 표현은 좋게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어떤 것에 과하게 화를 내거나, 과하게 남을 내치는 사람에게 쓰이곤 하는 단어이지 않은가. 다만 선생님이 나에게 어떤 부정의 의미를 담은 말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잠시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이 곧바로 웃으면서 덧붙였다.
“내 말은, 네가 남들보다 느끼는 게 많다는 뜻이야. 남들이 하지 않는 의식이나 걱정으로 괴로울 수는 있지만, 동시에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너는 더 볼 수 있어. 축복과 같은 일이지.”
결국 앞서 선생님이 하신 말은, 내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것이 누군가의 장점이 된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었다. 예민하고, 느끼는 것이 많은 성격은 정말 ‘성향’의 영역에 머물지 누군가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곤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의 칭찬은 하루가 끝나고 다음 해가 뜨고 나서도 내 안에 계속 맴돌았다. 나도 몰랐던 나의 어떤 지점을 짚고 나니, ‘sensible’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많은 것을 느끼며 살았다. 길가에서 특이한 색의 꽃을 발견하는 것도 잘했고, 유독 다른 날보다 빛 번짐이 강했던 여름 저녁의 노을을 가려내는 것도 잘했다. 단골 가게의 장점을 발견하는 것도 좋아했다. 손님 말을 천천히 들어주어서 좋다거나, 계절마다 가게 앞에 놓인 꽃을 바꾸는 것을 보니 가게에 애정이 많은 것 같다거나, 하고 말이다.
다만 이런 나의 습관이 장점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디까지나 ‘남에게 인정받는’ 혹은 ‘우러러볼 만한’ 것이 장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점이란 무엇인가? ‘좋거나 잘하거나 긍정적인 점’이 모두 장점이다. 나의 장점이란, 나에게 어떤 긍정적이고 건강한 부류의 즐거움을 주고 열정을 돋아준다면 무엇이든 장점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장점을 평가하고 선정하는 심사위원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에 선정에 망설일 이유도 없다. 기준의 척도도 내 안에 있고, 선정에 따른 책임과 즐거움도 오직 나만이 즐기는 나의 것이다.
어쩐지 이제는 나의 장점을 소개하는 시간이 왔을 때 망설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자신 있게 ‘나의 장점은 일상의 여러 감정과 변화를 예민하게 잘 느낀다’고 답하지 않을까. 누군가 그게 무슨 장점이냐고 한 소리를 듣는대도 나는 내 장점이 당당하게 자랑스러울 테다. 원래 장점이란 그런 것이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장점을 찾아보지 않겠는가?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유독 기쁘게 하는 ‘무언가’를 찾아낸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한 움큼 더 이해하게 된 사람일 것이다.
[박소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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