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병존의 합집합에서, 공존의 교집합으로 [영화]

어울려 사는 세상을 위한 노력, <주토피아>
글 입력 2023.05.0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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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등한 사회’는 가능할까?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질문이겠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고, 자라나면서 달라지며, 마지막에는 다른 채로 죽는다. 각자에게 이득을 안겨주기도, 손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 모든 다름들을 안고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어쩌면 차별에 대한 담론이 유독 강력한 힘을 갖는 이유는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내게 손해를 입히지만 애써 참고 살아가던 그 다름을 건드릴 때, 사람들은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별을 막기 위한 시작점은,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죄가 될 수는 없음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이다. 그 다름이 손해가 되는 다름일 때와 마찬가지로, 이득이 되는 다름일 때도 말이다.

 

<주토피아>는 이런 차별에 대한 문제를 모두에게 납득될 만한 문법으로 풀어간 애니메이션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복잡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 대한 은유임을 알게 될 때,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애니메이션을 돌아본다.

 



편견을 버리고 모든 것에 도전하기를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주토피아’는, 마치 동물원처럼 서로 다른 동물들이 모여 사는 부유한 도시다. 그래서 외부인들에게 주토피아는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상적인 곳으로 인식되고, 경찰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한 시골 토끼 ‘주디’ 역시 부푼 마음을 안고 주토피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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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토피아는 지상낙원이 아니었다. 주디가 경험한 주토피아는, 토끼이자 초식동물인 자신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 같은 경찰을 비롯한 주토피아의 주민들은 경찰 일을 하는 조그마한 토끼인 그녀를 비웃었고, 초식동물을 위한 음식조차 제대로 된 형태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차별은 비단 토끼인 그녀를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주인은 ‘손님을 거부할 권리’를 주장하며 여우를 비롯한 특정 동물들에게는 음식을 팔지 않았고, 양인 벨웨더는 부시장이라는 높은 직급에 있음에도 시장에게 폭언을 들어야 했다.

 

주토피아의 화려함과 그 이면은, 묘하게 현실의 미국을 연상시킨다. 다양한 인종들이 어우러져 잘 사는 도시인 것 같지만, 실상은 종족 간의 갈등과 폭력을 오랜 골칫거리처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 미국뿐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뒤엉켜 살아야만 하는 공동체는 으레 이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내가 대신 살아볼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정의내리려는, 그 위험한 시도를 큰 경각심 없이 하게 되는 우리들의 습관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일차적으로, 누군가에 대한 섣부른 편견을 거둬들일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힘을 더하기 위해, 생김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을 하는 캐릭터들의 단상들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조그맣지만 용감한 경찰인 주디부터 능글맞게 생겼지만 남모를 정의감을 갖고 있는 닉, 다른 모든 캐릭터보다 작지만 마피아 조직의 보스인 미스터 빅, 갓난아기처럼 생겼지만 마초적인 목소리를 가진 핀닉, 엄청나게 느린 나무늘보지만 고속 운전을 즐기는 플래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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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제가인 'Try Everything'이 말하듯, 모두에게는 자신이 바라는 그 어떤 것이든 될 자유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그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의 시작점일지도 모르겠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개념이 사회 내에서 만연해지려면, 각자의 꿈을 지지해주는 구성원들의 존재가 필수적이니까.

 

그러나 이 영화가 우리에게 버리도록 권장하는 것은, 비단 ‘나쁜 편견’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의 진가는, 극중 캐릭터들과 관객 모두의 ‘좋은 편견’ 속에 꽁꽁 숨겨져 있던 한 캐릭터의 본성을 들춰내고 나서야 밝혀지기 때문이다.

 

 


존재만으로 가해자가 될 수 있는가


 

‘작은 토끼지만 강한 경찰인’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답게, 이 영화의 빌런 역시도 일반적으로는 가장 순하고 착하다고 인식되는 동물이다. 바로 양인 벨웨더 부시장이다. 그녀는 초식동물들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육식동물을 혐오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계획을 꾸민다. 육식동물들에게 몰래 야수화 약물을 주입함으로써,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육식동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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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영리함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차별을 다루는 많은 영화들은 한쪽을 절대적인 가해자로, 한쪽을 절대적인 피해자로 다루곤 한다. 물론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차별도 있지만, 사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강자인 가해자와 약자인 피해자로 딱 나눠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강자인 가해자(주디를 차별하던 맹수들), 강자인 피해자(야수화된 맹수들과 닉), 약자인 가해자(벨웨더), 약자인 피해자(주디)를 한 영화 안에 모두 담아낸다.


분명 육식동물은 강자고 초식동물은 약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육식동물에게 세상이 아름다운 건 아니었다. 초식동물에게 신체적 약함이라는 고충이 있었다면, 육식동물에게는 감내해야 할 부당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디가 토끼라는 이유로 경찰이라는 꿈을 몇 번이고 무시당할 때, 닉은 여우라는 이유로 야비한 맹수라는 증오 어린 시선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닉에게 여우 퇴치 스프레이를 꺼내드는 주디를 비난할 수도, 그런 주디에게 상처받는 닉을 비난할 수도 없다. 모름지기 남이라면, 서로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을 지고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우리에겐 우리의 기준으로 남의 아픔을 재단하기보다는, 일단 그 아픔을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지만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닉과 주디가 그랬듯이.

 

 

 

병존(竝存)이 아닌 공존(共存)을 향하여


 

그러니까 이 영화는 단순히 타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것을 넘어,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와 너는 다르다’는 전제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는 것은, 외려 서로에 대한 숱한 오해를 낳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와 다른’ 나의 외집단은, 마치 내가 대적해야 할 대상처럼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식동물에 대한 벨웨더의 증오 역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사이에 선을 그어 버리는 그녀의 단선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서로가 ‘나와 똑같이 자신만의 다름을 안고 있는 사람’임을 이해해보는 건 어떨까. 나와 다른 너를 멀찍이 쳐다보는 합집합의 구석 한 켠에 남기보다는, 일면 나와 같은 너를 이해하기 위한 교집합 안으로 들어가보는 것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단지 같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존재할 뿐인 ‘병존’이 아닌, 서로를 도우며 사는 ‘공존’으로 나아가는 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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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주디와 닉이 겪어온 고통의 종류는 달랐지만, 둘은 모두 ‘어떤 동물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진심을 부정당했다는 점에서 같았다. 만약 닉이 주디에게 ‘너는 토끼니까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해 버렸다면, 둘은 화해할 수 있었을까. 자신은 멍청한 토끼라며 자책하는 주디에게서 자신의 단면을 보았기에, 닉은 주디를 용서해준 게 아닐까. 결국 서로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힘은, 외려 서로 같음을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

 

 

 

내일 또 다른 실수를 할 우리들에게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의 주제가 'Try Everything'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 모든 것에 도전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인상적이고 독특했던 메시지는, ‘내일도 새로운 실수를 할 나’에 대한 인정이었다. 닉을 교활한 동물로 오해했지만 사실은 그가 좋은 심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주디가, 그럼에도 결국은 여우 퇴치 스프레이를 꺼내들며 그에게 상처를 주게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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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과적으로 주디가 한 새로운 실수는, 둘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 디딤돌이 됐다. 그래,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하다. 너를 이해해보기 위한 교집합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때로 너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몇 번 새로운 실수를 하더라도. 그럼에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마음이 바로 공존을 위한 열쇠가 아닐까.


 

“I'll keep on making those new mistakes.

I'll keep on making them everyday.

Those new mistakes.”

 

- Shakira, 'Try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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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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