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길복순', 흩어지면 스타일리시하고 뭉치면 모호한 [영화]

액션 영화의 연출, 메시지, 그리고 구도
글 입력 2023.04.0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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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액션 영화 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대개 역동성, 스펙타클함, 짜릿함, 시원함 같은 것이다. 영화의 장르로 액션을 선택했을 때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시원하게 때려부수는 것이지, 눈물을 흘리거나, 복잡한 교훈을 주입받거나, 아련한 감정선에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최근 공개된 <길복순>은 전도연의 킬러 연기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공개 이후 관객들의 반응은 영 좋지 못하다. 영화로서의 작품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액션 영화’로서는 확실히 실패했다는 반응이 중론이다. 조회수 300만 회를 기록하며 이슈몰이를 한 선공개 영상에서 조금씩 나온 ‘어딘가 액션이 지루하다’는 반응이, 결국 영화 전체를 잠식해 버린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해 ‘참신하다’, ‘인물 간의 관계성이 재밌다’는 등 호평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대중픽’을 받지 못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왜 대중은 <길복순>에 혹평을 남기는지, 이 영화와 유사점이 있지만 크게 성공한 액션 영화 세 편의 선례를 통해 알아본다.

 

 

 

연출: B급의 짜릿한 쾌감, <킬 빌>


 

<길복순>에서 연상되는 영화를 한 편만 꼽으라면 <킬 빌>이다. 중년 여성 주연이 킬러 조직의 수장인 남성 악역과 복잡미묘한 관계로 얽혀 있다는 점만 보면, 두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거의 비슷해 보인다. 주인공이 엄마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 감독이 작위적일 정도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연출을 지향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흔히 ‘B급’이라고 하면 잘 만든 상업영화에 비해 어딘가 부족한 걸 의미하지만, <킬 빌>은 이 B급 정서를 기가 막히게 풀어낸 영화다. 사실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 설정이나 연출은 죄다 어딘가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럽다. 게임에나 나올 법한 효과음, 애니메이션에나 어울릴 캐릭터 설정, 말도 안 되는 주인공의 신체 능력까지. 개연성을 따지고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낙제점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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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처음에는 허술하다고 생각했던 이런 연출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지속되면서 하나의 ‘스타일’로 진화한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감독은 영화의 그림체를 바꿔, 애니메이션 같은 스토리를 가진 이 영화에 정말로 ‘애니메이션’을 삽입해 버리는 과감함까지 선보인다. 그렇게 ‘이 영화는 원래 이렇다’는 걸 관객들에게 끝내 납득시키고야 만 이 감독은, 바로 거장 중 한 명인 쿠엔틴 타란티노다.

 

물론, <길복순>의 감독이 반드시 타란티노의 스타일을 따라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길복순>이 B급 정서를 표방하는 영화도 아닐 뿐더러, 감독의 스타일은 저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길복순>에서 ‘스타일리시’해 보이려 했던 감독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아쉬움은 분명히 남는다. 다시 말해 하나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고집해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해 낸 <킬 빌>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가 너무 많은 연출 스타일을 병치하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건 뼈아프다.

 

예를 들어 영화 초반부 야쿠자와의 전투에서는 기차를 지나가게 만들면서 미장센에 신경쓴 듯한 롱테이크를 선보이다가, 이후 영지와의 전투에서는 갑자기 심할 정도로 정적인 풀샷으로 액션을 담아내고, 러시아 전투씬은 <킹스맨> 같은 현란한 무빙의 롱테이크로 찍다가, 또 식당 난투씬은 갑자기 컷을 잘게 쪼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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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킬러로서 복순의 전투 스타일의 특징은, 상대방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약점을 찾아 싸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연출이 일관되게 나오지 않고 띄엄띄엄 나오다 보니, 식당의 난투씬에서 복순은 어떻게 그렇게 잘 싸울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이렇게 액션 영화 치고 많지도 않은 액션씬에서 모든 씬을 다른 방식으로 연출하다 보니, ‘<길복순>은 이런 영화다’라고 말할 만한 정체성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 영화가 혹평받는 이유는 ‘주인공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킬러 영화에 남성 주연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 주연의 액션물이더라도, 그 여성이 건장한 남성들을 가볍게 이길 수 있다는 개연성을 부여하는 일관된 연출만 있다면 충분히 호평받을 수 있다. 아예 B급을 지향한 <킬 빌>이 그랬듯 말이다. <길복순>이 비판받는 건 각 연출을 장면별로 떼어 놓고 보면 스타일리시하지만, 그걸 하나의 영화로 만들었을 때는 혼란스럽고 비직관적이기 때문이다.

 

 

 

메시지: 재미로 모든 걸 납득시키다, <매드 맥스>


 

<길복순>은 그렇게 ‘액션 영화’로서의 강점을 상당 부분 놓쳤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이 영화의 장르를 액션이 아닌 드라마라고 간주해보자. 이 영화는 깊이 있는 여운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을까?

 

일단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모순’으로, 작품에 나오는 킬러들은 죄다 모순적인 삶을 살아간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직업은 킬러인 복순, 일관된 규칙을 중요시하는 듯하다가도 나중엔 자신이 규칙이라며 흥분하는 민규, MK를 비판하다가도 MK에 입사할 기회를 준다니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킬러 동료들까지. 어른인 킬러들은 전부 어딘가 모순적인 면이 있다.

 

그런 킬러들과 대비되는 캐릭터이자, 어른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복순이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미성년자인 딸 재영이다. 재영은 자신을 숨기며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대신,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기를 택한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엄마에게 고백하거나, 자신을 위협한 친구의 목을 가위로 찔러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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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재영은 복순이 킬러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되려 엄마를 더 따뜻하게 맞아 준다. 타의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복순은 그때부터 재영에게 한 단계 더 진솔해진 셈이니까. 엄마와 딸은 그제야, 서로의 비밀을 안다는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으니까. 재영이 그간 꽉 닫아 놓던 방의 문을 여는 것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연출이다.

 

문제는 이 정도로 함축적인 메시지가 액션 영화에 기대되는 바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영화의 장르를 드라마로 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전제다. 시종일관 관객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줘야 할 액션 장르가, 어떻게 인물의 감정선에 몰입해야 하는 드라마 장르가 될 수 있겠는가. 백 번 양보해서 이 정도로 불친절한 메시지가 액션 장르에 들어갈 수 있다고 쳐도, 그러면 액션 영화의 기본인 액션 장면 연출에는 충실해야 했다.

 

메시지 전달 방식과 연관지어 주목해볼 만한 액션 영화는 <매드 맥스>다. 이 영화는 평단과 관객 모두의 뜨거운 찬사를 받는 명작 중 하나다. 그런데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영화가 매우 강한 여성주의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을 착취하는 남성에 대한 비판, 여성 간의 연대, 출산의 도구로 사용되는 여성의 해방까지도 그려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만약 이 영화가 이런 이미지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완급 조절에 실패했다면 어땠을까? 메시지의 타당함은 둘째치고, 분명 영화를 바라보는 관람객들 간 시선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재밌다’는 평이 압도적일 뿐, ‘메시지가 강압적이다’ 내지는 ‘메시지가 겉돈다’는 평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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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감독이 액션 영화의 본질을 훌륭하게 궤뚫어 관객들에게 확실한 오락적 재미를 선사하면서도, 메시지 역시 자연스럽고 쉽게 작품에 녹여냈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이렇게 재밌는 액션 영화를 보고 ‘너무 여성주의적이어서 재미없다’라는 말을 하겠는가. 누가 착취적인 남성인 임모탄에게 대항하는 아내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 여성주의적이어서 부담스럽다’는 말을 하겠는가. <길복순>이 메시지 측면에서 호평받지 못하는 건 첫째로 액션을 재밌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로 메시지가 너무 함축적이어서다.

 

 


구도: 단순함으로 우직하게 질주하는, <범죄도시 2>


 

앞서 언급한 <킬 빌>과 <매드 맥스>는 물론이고, <테이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킹스맨>, <아저씨> 등 유명한 액션 영화들은 대부분 초반부터 ‘주인공 vs 적’의 구도를 관객들에게 분명하게 각인시킨다. 물론 후반의 반전으로 메인 빌런이 바뀌는 경우도 있기는 하나, 어쨌든 주인공이 자신이 무너뜨릴 목표물을 향해 뚜벅뚜벅 전진해간다는 구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길복순>에서 메인 빌런은 누구일까? 사실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민규라는 걸 초반부터 짐작할 것이고, 메인 빌런으로서 설경구가 뿜어내는 아우라도 나름 매력적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는, 영화의 중반부까지 복순이 누군가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기본적인 구도조차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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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복순에게는 명확한 목표의식이 없다. 가족의 복수? 딸에 관한 이야기는 메시지적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의외로 재영은 복순의 살인의 동기와 전혀 무관하다. 그렇다면 정의? 웃으며 사람을 죽이는 복순이 정의를 논한다는 것도 웃길 테고, 실제로 그런 언급은 나오지도 않는다. 공익이나 세계의 평화? 작중에서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 빌런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복순이 민희와 민규를 죽이는 이유는 단 하나, 영지를 죽였기 때문이다. 복순이 얽힌 사건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민규가 저지른 살인, 그 하나가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직접적 ‘동기’다. 당연히 나쁜 짓이기는 하지만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살인이 난무하는 이 영화에서는 너무 무게감이 약하며, 너무 우발적이고, 너무 후반부에 나온다.

 

이와는 반대로, 주인공과 악역의 대결 구도를 탁월하게 설정해 호평받은 영화로는 <범죄도시 2>가 있다. 코로나19가 닥치고 국내 영화계에 한동안 찬바람만이 몰아쳤을 때,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 흥행의 청신호를 켠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마석도가 가진 신념은 ‘나쁜 놈은 맞아야 한다’이고, 악역인 강해상은 그에 걸맞게 정말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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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2>를 보러 온 관객들 중, 주인공이 그 유명한 마동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영리하게도 강해상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를 가장 처음에 배치하고, 이는 영화가 2시간을 막힘없이 달려갈 동력을 확보해 준다. 이후에도 영화는 오직 사악한 강해상의 모습과 그런 강해상을 잡으려는 마석도의 모습만을 그려내고, 종국에는 ‘예측했던 대로’ 시원하게 강해상을 구타하는 마석도를 보여준다.


이 영화엔 대단한 메시지도 없고, 입체적인 캐릭터도 없고, ‘스타일리시’한 연출도 없다. <길복순>엔 ‘모순’에 대한 심도 있는 메시지가 있고, 여러 면이 공존하는 복순과 민규 캐릭터가 있고, 해외 영화풍의 독특한 액션 연출도 있다. 그렇다면 액션 영화로서 어느 쪽이 더 성공했는가? 답은 안 봐도 뻔하다.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는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명확하고 몰입가능한 ‘구도’의 유무로 보인다.

 

 

 

<길복순>이 주춧돌이 되길


 

<길복순>이 한국 액션 영화의 역사에서 ‘명작’으로 기록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실 2023년 들어 개봉한 한국 영화가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평작’이 적당하지 않나 싶지만, 어쨌든 한껏 끌어올린 기대만큼의 작품성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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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복순>이 한국 액션 영화계에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액션 영화는, 액션 영화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합을 잘 맞춘 통쾌한 액션, 화려하면서도 깔끔한 연출의 액션, 명확한 구도하에 이루어지는 액션은 영화의 많은 단점을 상쇄시켜줄 수 있다. 반면 그 기본적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다른 요소에 아무리 공을 들였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언젠가 국내에서 새로운 여성 주연 액션 영화가 나온다면, 그때는 <길복순>의 모호함은 줄이고 스타일리시함은 살린, ‘죽이는’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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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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