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문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나아갈 결심

내 삶 속의 문화
글 입력 2023.03.2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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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 저는 늘 ‘문화 콘텐츠를...’ 다음의 말을 얼버무리곤 합니다. 문화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건 맞지만 그걸 찬찬히 뜯어보는 사람이 될지, 공부하는 사람이 될지, 홍보하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아예 만드는 사람이 될지를 아직도 정하지 못했거든요. 소개의 기회를 얻은 김에,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전 문화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문화를 맛보는 사람


 

어릴 적부터 저는 영상 작품을 보기를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꿈은 영화감독이었고, 중학교 시절 꿈은 PD였죠. 영화 포스터를 모으는 취미도 있었고, 드라마는 한 번 봤다 하면 한 장면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영화 감상의 폭은 더 넓어졌습니다. 기존에는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봤다면, 그때부터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거든요. 그 분기점이 된 건 <더 랍스터>였습니다. 사랑해야만 하는 사회와 사랑하지 않아야만 하는 사회를 지독하게도 차갑게 그려낸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부터, 영화를 ‘메타적’으로 보는 시선을 길러갔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봉준호나 박찬욱 같은 거장들의 영화 스타일에도 관심이 생겼고요.

 

점점 영화를 보는 시선이 정립되어갈 무렵에 ‘왓챠피디아’라는 앱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감명 깊게 본 영화가 생길 때마다 코멘트를 한 줄씩 남기곤 했습니다. 예전엔 ‘영화평론가’를 이상할 정도로 평점을 짜게 주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코멘트를 남기기 시작하다 보니 저도 그렇게 변해가더군요. 그래도 제가 그분들처럼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니, 어디서 주워들은 걸로 아는 체하기보다는 그냥 느낀 것만 솔직하게 적자는 마음가짐으로 코멘트를 써내려갔습니다. 그렇게 생긴 취미는, 지금 제가 글을 적고 있는 이곳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문화를 공부하는 사람


 

저는 인류학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게 뭐하는 학문인데?’라는 질문을 숙명처럼 달고 살아야 하는 학과인데요. 그 질문에 대해 제가 나름대로 내린 답은 결국 ‘문화를 공부하는 학문’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 사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연구하고,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공부하는 학문이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인류학과를 아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사실보다, 그렇게 신기하고 독특한 학문을 공부하는 얼마 없는 사람 중 하나가 저라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인류학의 좋은 점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 MBTI는 ENTJ이지만, 밖으로 나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걸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데요. 인류학의 현장조사를 위해 발로 뛰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하는 걸 몸소 깨닫게 됐습니다. 누군가의 삶이란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의 집합체이고, 그들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도요.

 

그럼에도 인류학도인 저는 그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말을 걸어야만 했고, 그럴 때마다 삶을 바라보는 제 시선은 차츰 넓어져 갔습니다. 인류학과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던 경험과 배울 수 없던 교훈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를 콘텐츠화하는 사람


 

사실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제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직종은 문화 콘텐츠를 분석하거나 기획하는 일 정도였습니다. 상상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어릴 적 심심할 때 휘갈겨 쓴 영화 시놉시스들이나 중학교 때 썼다 지웠다만 반복한 SF 소설들이 제가 특출나게 잘하는 분야라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 들어와 작곡동아리에 들어가고 영상제작동아리에도 들어가 보니, 제 손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두 동아리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자극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나도 내 작품 하나는 만들고 대학교를 떠야겠구나, 하는 자극을 말이죠.

 

그래서 큰 도전이었지만 3학년 1학기에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죽일 년>이었고, 18번째 생일날 사람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여고생이 어떻게 운명을 실현하게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죠. 영화의 문법을 알게 된 지 불과 반년 만에 만든 작품이라 지금 보면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만들면서 즐거웠습니다. 지인들이 과분한 칭찬도 많이 해줬고, 특히 제가 직접 만든 배경음악을 깔아서인지 온전히 저만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 번 만들고 나니 영상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이 두 배는 넓어진 것도 좋았습니다. 원래는 메시지만 생각하면서 보던 영화에 대해 이제는 ‘저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라는 생각이나, ‘저 장면은 감독이 실수했네’ 같은 생각도 하게 됐거든요.

 

심심할 때 영화나 드라마 각본을 써보는 취미도 생겼습니다. 늘 길거리를 걸어갈 때는 음악을 들으며 세상에 없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상상해보곤 했는데, 한 번 시나리오를 써 보고 나니 그런 장면들을 어떻게 엮어내야 할지에 대한 개념이 잡히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무래도 스릴러인지라, 연쇄살인마 남자와 사이코패스 여자의 기묘한 관계성을 그려낸 드라마의 200페이지짜리 각본을 거침없이 써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이후엔 좀 자극적인 장면들을 줄여서, 사진에는 찍히지 않는 남자와 사진에만 찍히는 여자의 짧은 이야기를 써보기도 했고요. 언제나 그렇듯 돌이켜보면 부족한 점이 많은 가작들이었지만, 그래도 쓰면서 배운 게 너무도 많았기에 그 시간은 값졌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를 마케팅하는 사람


 

그런 한편, 앞으로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고 생각하니 막막한 면도 있었습니다. 제 안에 있던 창작의 욕구를 분출하기엔 좋은 일이었지만, 좋은 이야기가 언제까지고 제 안에서 흘러나올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창작의 기쁨은 분명 크지만, 그 기쁨만을 보고 창작을 본업으로 삼았다간 언젠가 고통에 직면하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케팅’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문화 콘텐츠를, 소비자의 눈에 맞게 잘 포장하는 일 말입니다. 거창한 전문가라기보다는 한 명의 대중으로서 콘텐츠를 평가하는 걸 즐기는 제게는 잘 맞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문화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과 산학협력을 진행하는 문화경영전략학회에 들어갔고, 지금은 팀장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큰 규모의 문화 기업들도 내부적으로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 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그런 문제에 대해 20대는 생각보다 할 말이 많았습니다. 어떤 기업이 돌파구를 찾는 데는 때묻지 않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했고, 거기엔 복잡한 상황 따지지 않고 직설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저희가 필요했거든요.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기업뿐 아니라, 저 역시 ‘소비자’로서의 시선을 넘어 ‘생산자’로서의 시선을 깨우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문화를 만드는 사람 


 

이렇게 돌이켜 보니, 제 삶에서 문화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네 가지 중 어느 쪽도, 제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목표라고 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몇 년 뒤의 저는 직업으로 이 네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일하고 있겠지만, 삶의 목표가 단순히 ‘문화를 마케팅하는 사람’ 정도라면 조금은 심심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 꿈은 ‘문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문화 콘텐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인정받는 어떤 문화의 ‘흐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흐름이란 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새로운 이론적 틀, 새로운 작업의 방식, 새로운 업계의 관행이 될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든, 미래의 제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 어떠한 문화를 만들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어릴 적부터 문화와 함께 삶을 살아왔던 제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영향력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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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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