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운명’이라는 단어의 용도 [영화]

한여름 밤의 꿈, 그게 될 수도 있었겠지만
글 입력 2024.01.12 14: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영화 <첫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 (Love At First Sight, 2023)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운명이라는 단어는 영적이고 힘 있어 보이지만, 닫혀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이라니.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드문 몇 순간들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강한 힘으로 정해지고, 정해져 있으며, 그래서 우리 인간이 그 순간들을 피하려고 애쓰거나 혹은 그런 순간들이 우리가 원하는 때에 벌어지기를 바라는 건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영화 <첫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 (Love At First Sight, 2023)이 해주는 운명 이야기가 좋았다. 


 

131.jpg

 


 

이 영화에는 꽤 다른 두 사람이 등장한다.

 

먼저 미국에 사는 20세 여자 해들리. 마요네즈, 협소한 공간, 치과를 두려워한다. 거기에 부모님의 영향으로 이혼이 추가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아빠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행 비행기를 기다린다. 아빠의 결혼식이라니 내키진 않지만.

 

그리고 22세 남자 올리버. 세균, 어둠, 서프라이즈를 두려워한다. 엄마에게 갑작스러운 암이 생기면서 갑작스러운 것들이 두려워졌고, 그래서 세상의 거의 모든 일에 있어서 데이터를 믿는다. 그건, 우연을 최대한 만들지 않기 위한 최선이니까. 그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가, 엄마의 ‘생전’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행 비행기를 기다린다.

 

이들은 공항 라운지에서 처음 만난다. 종종 늦곤 하는 해들리가 이번에도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다음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거의 방전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려던 그때와 그 장소에 올리버가 있었다. 올리버는 해들리가 타게 될 그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해들리와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탑승 시간이 다 되어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지만, 운명적이게도 올리버의 좌석 안전벨트가 고장이 난 상태였고, 또 운명적이게도 해들리 옆자리에 앉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몇 시간의 비행을 함께 하게 된다.

 

두 사람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인지, 이야기를 하면서부터인지,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린 후에 연락처를 확실하게 주고받지 못한 탓에 얼떨결에 헤어지게 되고, 그들은 각자의 원래 행선지로 향한다. 


해설자 : 하지만 착륙 18분 후 둘은 군중 속에서 헤어져서 서로 못 만나게 되죠.

서로 이름,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교환하지 않는다면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등등. 선택의 여지가 많네요.


선택의 여지가 많았지만, 어쩌다 보니 배터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해들리의 휴대폰에 올리버의 전화번호를 급하게 남기는 것만이 선택되었고, 그 전화번호는 휴대폰이 꺼지면서 휙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그게 핑계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 길로 헤어지게 되면서, 그래, 그 사람은 운명이 아니니까 그렇게 헤어지게 된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아쉬움만 안고 다시 각자의 삶을 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핑계 대는 걸 하지 않고, 서로를 찾아 걸어간다. 중간중간 살짝 고민하긴 하지만, 어쨌든 결국엔 기회 같은 걸 기다리기보다는 열심히 행동한다. 그랬던 이유는, 그들이 서로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고, 다시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일단 나를 포함시키며 생각해 보자니 어김없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정환’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핑곗거리


 

정환이는 오랜 동네 친구 덕선이를 좋아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정환이가 자신만 아는 짝사랑에 감정을 쏟는 동안, 똑같이 덕선이를 좋아하고 있던 그들의 친구인 택이는 정환이처럼 몇 번을 망설이는 대신 덕선이에게 곧바로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덕선이와 택이는 연인이 되었고, 정환이는 끝내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그들의 친구로 남게 되었다.

 

정환이는 어느 비 오는 날 자신의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생각한다. 만약 오늘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덕선이에게 몇 분 더 일찍 갈 수 있었더라면 덕선이 앞에 택이가 아니라 자신이 있을 수 있었을 거라고, 자신의 첫사랑은 늘 이 거지 같은 타이밍에 발목 잡혀 왔다고 말이다. 운명의 또 다른 이름인, 타이밍에. 하지만 그는 이것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의 첫사랑은 타이밍에 발목 잡힌 게 아니라, 자신의 망설임에 발목 잡혔던 거라는걸. 


정환 : 그러나 운명은 그리고 타이밍은 그저 찾아드는 우연이 아니다.

간절함을 향한 숱한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순간이다.

주저 없는 포기와 망설임 없는 결정들이 타이밍을 만든다.

그 녀석이 더 간절했고 난 더 용기를 냈어야 했다.

나빴던 건 신호등이 아니라 타이밍이 아니라 내 수많은 망설임들이었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덕선이와 택이의 관계는 깨지지 않은 채 계속되고 정환이는 여전히 친구로 남는다. 덕선이가 정환이와는 운명이 아니고 택이와 운명이었다기보다는, 덕선이와 택이가 서로를 좋아했고, 망설이지 않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정환이에게도 기회가 많았을 테지만, 그는 몇 번이고 망설이는 걸 선택했다.


정환이는 운명의 또 다른 이름이 타이밍이라고 했다. 운명은 그런 단어이다. 타이밍이라는 게 완벽하게 딱 맞아떨어질 때면 마치 운명 같다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잘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우리의 눈앞에서 짠! 하고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건 무모한 일이라는 걸 안다. 그런 순간은 정말 어쩌다 한번 나타나는 드문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런 잘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기를 택한다. 

 

나는 차 안에서 후회하며 울던 정환이를 보면서 속으로, 나도 아마 너와 비슷했을 거라고 말했다. 나 또한 그렇게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짝사랑을 짝사랑으로 끝냈을 확률, 뭔가를 시도하거나 노력하지조차 못했을 확률이 높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것 또한 나의 선택이고, 언젠가 또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또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우리의 인생에 있을 수많은 선택들이 항상 똑같지는 않을 테고, 나조차도 나를 바꾸는 건 어렵지만 뜻밖에도 전과는 다른 나를 갑자기 마주하는 걸 경험할 수 있는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환이도 알았고 나도 알고 있는 건, 타이밍이 나빴던 게 아니라 우리가 나쁘게 여긴 것이라는 사실이다. 운명이 우리와 우리의 상황을 바꿔주기를 기다리던 우리는 그저 망설이고 있던 것뿐이었고, 그 운명 혹은 타이밍 자체를 나쁘다고 생각하던 우리는 그저 그걸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것 


 

다시, 영화 <첫눈에 반하는 통계적 확률>에서는 운명이 이렇게 등장한다. 운명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러줄 때만 운명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해들리와 올리버는 빠르게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직진한다. 정환이처럼 수많은 기회를 망설임으로 보내지도 않았고, 내가 가끔 그러듯 완벽하고 깔끔한 타이밍만을 노리면서 시간을 날려버리지도 않았다. 사랑은 마치 운명처럼 생겨났지만, 그 마음이 다음을 저절로 보여주길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서로를 찾아가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며 종종 등장하는 해설자는 해들리와 올리버가 이렇게 마치 온 우주가 이들을 위해 만들어 준듯한 우연들을 통해 사랑에 빠지는 걸 지켜보면서도, ‘운명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러줄 때만 운명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퍽은 네 연인에게 마법을 걸면서 장난으로 사랑을 휘저어 놓는다. 네 연인은 퍽의 장난에 이 사람을 사랑했다가 미워했다가, 또 저 사람을 사랑했다가 미워하며 우왕좌왕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평화를 찾았을 때, 마치 이상한 꿈을 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은 퍽의 존재를 인지할 수 없으니, 아마도 자신들의 짧지만 이상하고 강렬했던 사랑의 변화가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생각하고 선택할 틈도 없이 별안간 허미아가 아닌 헬레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혼란스러운 꿈에서 깬 것처럼 평화로워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 오베론이나 퍽 같은 요정, 마법, 사랑을 만드는 마법의 즙은 없다. 대신 생각, 감정, 선택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마치 마법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선택,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운명이라고 표현하며 즐거워하긴 하지만, 사실 이건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를 뿐 우리가 한 것들이 아닌가. 우리의 생각과 선택들이 만든 일 말이다.


만약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퍽 같은 존재가 있고, 그래서 퍽이 뭔가를 했다고 한들, 그래도 나는 그 사실(정말 만약에 그게 사실일 경우에 말이다)을 모를 것이다. 그저 신기하거나 멋지거나 웃긴 ‘운명 같은’ 일이라고 생각할 뿐. 


해들리와 올리버가 첫눈에 반한 것도 그러하다. 퍽이 그들의 눈에 마법의 즙을 넣은 게 아니라 그들이 서로를 선택했고, 망설이지 않고 서로를 찾아가고, 서로를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말이다. 이건 퍽이 정해준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또 중요한 건, 이들이 사랑에 빠진 걸 운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설자가 말한 대로 운명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러줄 때만 운명이 될 수 있으니, 운명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기도, 우리가 단어로 만들어 부르며 뭔가에 운명 같은 느낌을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퍽이 연인들의 눈에 마법의 즙을 짜넣는 장면 대신, 해들리와 올리버가 운명이라는 단어에 ‘운명 같은 느낌’을 짜넣는 장면이 떠오른다.

 

 

KakaoTalk_20240111_235604974_02.jpg

 

 

위에서 나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가끔 이런 말은 한다. ‘인연이 아닌 것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건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와 나는 운명이 아니었다거나, 그럴 운명이었다거나, 정해져 있는 운명이라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은 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을 테고,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 또는 무언가의 영향도 있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운명이라는 게 있고 없고를 차치하고, 세상에는 정해져 있는 것들과 정해져 있지 않은 것들이 섞여 있고, 우리는 정해져 있는 것들을 일단 딛고 서서 나머지 정해져 있지 않은 것들을 하나하나 각자의 생각대로 정해가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쯤 되니 내가 운명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 건, 부디 내가 그 정해져 있지 않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선택하며 살기를 바라지만, 또 안 되는 것들에는 크게 낙심하지 않고 다른 걸 선택하러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초인간적인 힘이라는 걸 믿지도 못하겠을뿐더러 의지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또, 운명이라는 단어와는 달리 우리의 인생은 닫혀 있지 않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그럴 운명이었다’는 핑계를 대는 게 필요한 때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에게 정말 힘든 일이 벌어졌는데, 탓할 게 운명이라는 단어밖에는 없을 때 말이다. 이게 내 운명이었다고 말하며 나의 의지와 선택의 크기를 조금 더 줄여서 생각하고 싶을 때, 도저히 다른 곳에 화살을 돌릴 수 없을 때, 나의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 곳은 운명이라는 이상한 단어뿐인 것 같으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 ‘운명’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런 용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생각지 못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벌어졌을 때 이건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었다고 생각해버리기 위해, 그러고는 괜찮아지길 기다리기 위해 말이다. 또는, 사랑에 빠진 사람과의 관계에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 같은 재미있는 느낌을 뿌리고 싶을 때도 물론이다. 

 

이 단어를, 내 마음대로 붙였다 떼었다 해보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떼어내면 그만이니까.

 

퍽 : 저희 허깨비들이 마음에 안 드셨다면 이렇게 생각해 주세요.

여러분이 잠시 조는 동안 이런 환영들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모든 게 괜찮아집니다.

(…)

그리고 이 정직한 퍽도 분에 넘치는 행운을 얻어 여러분의 독설을 모면하게 된다면

곧 보다 나은 연극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 퍽을 거짓말쟁이로 부르십시오.

5막 1장 / 한여름 밤의 꿈, 윌리엄 셰익스피어

 

 

KakaoTalk_20240111_235604974_01.jpg

 

 

*<한여름 밤의 꿈>의 퍽의 대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지식출판원'의 번역본을 참고하였다.


 

[강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