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과 비인간의 위치, 연극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 [공연]

비인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글 입력 2023.06.2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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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의 SF와 연극에서의 SF는 다르다. 문학과 달리 연극에서의 SF는 실재하지 않는 세계를 눈앞에 실물로서 구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SF 서사는 문학에서 출발했다. 또한 연극은 문학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에 SF 연극을 살펴보기 전에 간단하게 SF의 정의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문학에서 SF는 합리적 이해라는 인식과 현실을 낯설게 하는 소외가 결합한 장르다. SF는 과학적 인식에 기반을 두고, 현실의 경험 세계인 리얼리티에서 일탈한다. 단순화하자면, SF는 비일상적인 상황과 세계에서 일상적인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포스터]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jpg

 

 

기후 위기가 인간의 사회정치체계를 바꾼 2063년. 거듭되는 팬데믹으로 인해 국가는 비공식적으로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지고, 인공지능로봇 A·I·R(Artificial Intelligence Robot)(약칭 에어)가 인간이 기피하는 자리를 대신한다.


인간에 실망을 느껴 국가를 벗어나려는 인간 '이나'와 자아를 지녔다는 이유로 실험 대상이 될 위기로부터 도망친 S·A·I·R(Self-consciousness Artificial Intelligence Robot) '지니'는 국가의 손이 닿지 않는 곳, 자연재해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제3구역에서 만나게 되는데...


 

 

스펙터클과 연출 



연극에서의 SF와 문학에서의 SF는 다른 점을 보인다.

 

정진새 작·연출가는 연극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의 작·연출가 장우재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극에서 SF는 장르적인 요청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SF를 다루는 연극은 SF의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받는다. 연극이라는 장르 특성상, SF 연극은 필연적으로 근미래의 상황을 약속을 통해 관객의 눈앞에 펼쳐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연출상으로도 서사 상으로도 SF가 갖고 있는 소격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사진 유한솔] (2022 공연사진-2)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jpg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은 카메라와 레고블록을 조립해 만든 디오라마를 통해 무대 위의 세계를 조망한다. 카메라를 통해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 배역의 시야를 공유하게끔 한다.

 

특히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시선은 마치 새의 시선과 같으면서 우리의 일상에 녹아든 CCTV의 것과도 같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이 작품에 대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며 세계를 낯설게 만든다.

 

배우를 통해 재현되는 세계는 레고블록으로 조립된 사물로 치환되며 사물화되었다가 인간화된다.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



국가를 벗어나려는 인간 ‘이나’는 제3구역에서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 ‘지니’를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한다. 지니는 이나가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이기에 그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전까지의 세계는 인간을 중심으로 규정되고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인간인 ‘이나’는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다시 말해, 이나는 이전까지 주체였던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재해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제3구역에 다다라 자연으로서 관찰되며 객체가 된다.

 

이나는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다. 새가 먹는 사과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새가 다 먹고 남겨둔 사과를 먹는다. 새처럼 자연과 공존하는 동등한 존재로서 인간 ‘이나’는 위치된다.

 

작품의 제목이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로봇 ‘지니’가 중심이 아니라 인간 ‘이나’인 점은 인간을 다른 존재와 동등한 지위로 놓아보려는 의도를 포함한다.

 

 

 

번역할 수 없는 지니 


 

작품 속에서 지니는 동물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이다. 지니는 동물의 언어로 동물과 의사소통한다. 그런 지니에게 이나는 묻는다. “무슨 말 하는 거야?” 지니는 대답한다. “번역할 수 없어.”

 

 

[사진 유한솔] (2022 공연사진-4)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jpg

 

 

인간의 형태를 한 로봇 지니는 인간적 특징인 자아를 갖고 있는 동시에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비인간이다. 다시 말해 지니는 경계에 위치한 존재다.

 

지니는 존재 자체로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경계와 기존의 규범체계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니가 살아가는 방식은 상대의 존재를 위협하는 ‘인간적’인 방식이 아니다. 지니의 방식은 ‘비인간적’이다.

 

인간은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극복해야 할 무언가로 보며 통제하려한다. 이러한 근미래의 방식은 낯설지 않다. 반면에 비인간주체 ‘지니’는 비인간의 언어와 존재 방식을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으며 그들의 언어를 주류의 언어로 해석하지 않는다. 자연과 공존하는 이러한 방식은 ‘비인간’의 방식이다.

 

지니는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미지와 정의를 재사유하게 만든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인간이 당연하다 여긴 배제와 구획을 다시 정의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자아란 무엇이며, 인간과 비인간은 무엇이 다른 것인지.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위치는 변화한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태그.jpg

 

 

[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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