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흘러가는 시대 이전의 타임캡슐

스트리밍 말고 다운로드하던 시절의 플레이리스트
글 입력 2023.06.0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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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에는 독일에서 버스를 타고 프랑스까지 갔다.

 

스무 시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환승을 두 번 하며, 스위스를 지나, 이탈리아를 지나. 독일에서 생활하며 쓰는 유심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그대로 쓸 수 있었는데, 스위스는 유럽 연합 회원국이 아니어서인지 로밍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버스가 스위스 땅을 달리는 동안은 전화도 문자도, 데이터도 사용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다른 건 불편하지 않은데, 인터넷이 되지 않아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아무리 긴 이동 시간이라도 노래를 듣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기 마련이건만. 같이 간 친구와 얘기를 나누는 것도, 버스 안팎의 소음에 귀 기울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걸 몇 시간이고 하기는 지친다.


언젠가부터 노래를 핸드폰에 저장해 듣지 않고 스트리밍만 한 내 자신을 원망하다가, 문득 내가 예전에 저장했던 노래들이 이 핸드폰에도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핸드폰을 두어 번 바꿀 때마다 안에 있는 자료들을 매번 그대로 옮겨 넣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노래를 저장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플레이리스트는 과거에 멈춰 있을 것이다. 가령, 2018년이라거나.

 

 

 

타임캡슐



마치 타임캡슐을 꺼내보는 기분이었다. 정말 타임캡슐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음악을 들을 때 스트리밍 앱만 쓰기 때문에 핸드폰의 기본 음악 앱은 쳐다보지도 않은 지 오래다. 그리고 5년 만에 열어보는 타임캡슐.  


그 안에는 800곡이 넘는 노래가 잠들어 있었다. 분명 몇 년을 듣지 않은 노래들인데, 제목과 앨범 표지를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멜로디가 들리고 내 입에서는 자동으로 가사가 흘러나왔다.


그중 하나는 악동뮤지션의 1집 수록곡, <인공잔디>이다. 

 

 


 

 

5년 전에 닫힌 타임캡슐이라지만 이 노래는 그보다도 더 전에 나온, 자그마치 9년 전의 노래다. 9년 전의 나를 기억하는 노래. 


중학교를 기숙사에서 다녔기에 주말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노래를 들으니 곧바로 주변의 공기가 바뀌고 내가 그 시외버스 안으로 툭 떨어진 것 같았다. 겨울에 버스를 타면 버스 안이 아무리 따뜻해도 창문을 통해 냉기가 들어온다. 얼굴은 따뜻하고 콧속은 건조한데 창 쪽에 닿는 어깨와 허벅지만 차가운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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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도로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산시와 울산광역시를 오가며 느끼던 기분에 휩싸이다니. 겨울도 아닌 5월에, 심지어 지금의 나는 창가 자리도 아니고 복도 자리에 앉아 있는데 이 찬 기운은 어디서 오는지. 

 

 

 

음악이 흘러가는(Streaming) 시대와 음악이 고인 시대



반가운 곡은 <인공잔디> 하나가 아니었다. 그 앨범 전체가, 아니 그 아티스트의 모든 곡이,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의 노래들도 다.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마다 추억 여행을 떠나느라 바빴다. 처음에는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노래를 틀었는데, 듣다 보니 닭도 아니고 꿩도 아닌, 잃어버린 봉황을 다시 찾은 듯했다. 


예전에는 한 달에 서른 곡을 내려받을 수 있는 요금제를 이용했다. 그러면 인기곡 1위부터 100위 중에서 1분 미리듣기를 해보고 딱 서른 곡을 저장했다. 좋아하는 가수가 앨범을 낸 달이면 저장하고픈 노래가 서른 곡이 훌쩍 넘어 심혈을 기울여 선택해야 했다. 항상 고심해 골랐고, 한 달에 늘어나는 곡은 서른 곡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질리도록 듣고도 질리지 않은 곡들만 남아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다가 다른 음악 앱으로 옮겨가면서, 요금제도 다운로드 없이 스트리밍만 하는 서비스로 바꿨다. 지금은 서른 곡보다 더 많은 곡을 듣는다. 그러나 예전만큼 같은 곡을 반복해 듣지는 않는다. 지금 워낙 노래를 자주, 그리고 다양하게 듣지만, 곡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은 오히려 학생 때 더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만 된다면 자유롭게 아무 음악이나 들을 수 있는 지금이 흘러가는(Streaming) 음악의 시대라면, 다운로드로 음악을 듣던 때는 고인 음악의 시대일까. 고인 물은 썩는다지만 고인 음악에는 추억이 깊어진다. 그리고 지금, 음악이 흘러가는 시대의 추억은 어떻게 남을지 궁금하다.

 

 

 

김지수.jpg

 

 

[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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