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날개를 찾아서 - 춘향, 날개를 뜯긴 새

글 입력 2023.06.0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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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 컨셉 포스터 MAIN fin 0406.jpg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부터, 나에겐 자유가 없었다."

 

자유로이 세상을 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은 춘향의 것이 아니었다. 폭력적인 권력 아래 신분의 굴레가 그녀를 구속했고, 세상의 시선은 점차 날카로운 칼이 되어 춘향의 날개를 뜯어갔다.

 

춘향은 사라지고, 기생이란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어느 날. 어디선가 한 남자가 다가온다. 몽룡이다. 그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사람도 날개가 뜯겨 있었다는 것을.

 

 

 

# 날개를 되찾기 위한 성춘향의 모험담



[국립정동극장] 춘향 날개를 뜯긴 새_ 공연사진 (1).jpg

 

 

성춘향, 그녀의 날개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그 날개의 행방을 찾으러 정동극장으로 향했다. 처음 정동극장에 들렀을 땐, 비밀의 화원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향긋한 비밀의 화원을 잊을새도 없이 새로운 충격에 휩싸였다. 첫 무대를 장악하는 춘향과 그녀의 어머니, 그 둘의 무용은 세상의 칼을 맞아 큰 상처를 입은 두 여인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그들의 몸짓은 더 격해졌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형체들이 그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마치 어두운 상황이 그들의 날개를 뜯어가는 것처럼, 처참하게.

 

그렇게 <춘향, 날개를 뜯긴 새>는 시작한다. 현실에 굴복하여 멀리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뜯겨버린 새, 춘향의 이야기가 막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 공연을 보는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의 날개는 이미 뜯겼으려나..?”
 

 

춘향의 상황과 나의 상황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지만, 무대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자신의 날개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관람객들에게 연출자가 이러한 고민을 하게끔 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도 날개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춘향이 날개를 잃은 그 순간부터 나의 날개를 지키고 싶은 강한 의지가 피어올랐다고나 할까. 만약 이미 뜯긴 상태였다고 해도, 이 공연은 통해 나의 날개가 숨어있는 그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들었다.

 

 

[국립정동극장] 춘향 날개를 뜯긴 새_ 공연사진 (5).jpg

 

  

그 희망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었던 공연의 두 가지 섹션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네 평짜리 자유’이다. 춘향과 몽룡의 애절한 사랑을 담은 ‘네 평짜리 자유’는 수많은 문들 사이로 눈을 가린 채 같이 춤을 추는 춘향과 몽룡의 이야기를 닮고 있다.

 

변학도에게 수청을 강제 당하기 전, 그들은 이미 서로를 알아보았다. 눈을 가려도 잡고 싶고, 눈을 감아도 서로가 느껴지는 그 네 평짜리 방에서 그들은 서로를 강하게 잡아당긴다.

 

마치 자석 같았다. 날개가 뜯겨 멀리 날아오르지는 못하지만, 사랑이라는 강한 자성으로 하나가 된 그들은 마침내 안대를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한다.

 

 
“안녕, 안녕.”
 

 

입맞춤하는 둘의 모습. 그렇게 무대는 그들의 강한 자성으로 가득 찬다. 작은 방안을 표현하는 창호지의 모습과 그들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는 관객들의 시선도 무대로 이끌리게 되었다.

 

비록 수많은 현실의 조각들로 인해 날개를 잃어버린 둘이었지만, 날개를 가지고 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기에 그들의 사랑은 무대 위 공간으로 훨훨 날아간다.

 

무용수들의 뛰어난 안무에도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들의 표정이었다. 화려한 안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표정에서 있다고 생각한다. 춘향과 몽룡은 서로를 목말라했고 동시에 그들의 날개를 찾고 싶어 했다.

 

과거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 둘이 함께 날개를 찾아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 한 명이 찾는 것보다 두 명이 찾는 것이 훨씬 더 빨리 날개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국립정동극장] 춘향 날개를 뜯긴 새_ 공연사진 (3).jpg

 

  

두 번째 섹션은 <십장가>. 춘향이 변 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며 옥에 갇히게 된 상황을 표현한 안무이다. 옥중에 갇혀 있는 춘향을 이몽룡이 찾아오고, 그들은 옥을 마치 계단처럼 오르고 내리면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사실 그들에게 날개가 있었더라면 두 손과 두 발을 이용하지 않아도 옥을 넘어 날아오를 수 있었을 텐데, 이 장면이 두 사람의 날개가 부재하고 있음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다. 잡지 못하는 걸 알지만 손을 내미는 것은 그들에게 얼마나 슬픈 의미일까. 절절한 안무를 보면 내 가슴도 미어졌다.

 

억지로가 아닌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함의 마음. 결국 그들은 간절한 마음 덕분에 날개를 되찾는 결말을 맞았다. 이몽룡의 해결로 춘향이 날개를 되찾은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춘향이 날개를 되찾기 위해 현실로부터 강하게 발버둥 쳤기에 날개를 되찾을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동극장에 분 작은 바람, 공연 <춘향, 날개를 뜯긴 새>. 한국무용 무대에서 LED 화면을 사용한 것부터 다양한 무용수들의 군무가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공연을 다 보고 오다 나오니, 내 날개는 뜯긴 것이 아닌 내 등 뒤에 숨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연을 보고 붕 뜬 기분이 든 것은 나의 숨겨진 날개 때문이 아니었을까. 현실에 굴복해 숨긴 날개를 앞으로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종종 펼쳐보아야겠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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