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랑비에 옷 젖고 있는 걸 외면하는 걸까? 아니면 모르고 있는 걸까? - 연극 '몬순'

글 입력 2023.04.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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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전면 침공을 감행하면서 양국 간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고 있으나 우크라이나에서는 힘겨운 싸움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와는 상관없는 듯 보이는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이지만, 아니 현대에 ‘전쟁 발발’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이 전쟁의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어도 간접적인 영향은 분명 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 유가 및 연료가 상승 등이 연쇄적으로 일어났으며 각 국가의 국민들은 이전보다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현대의 전쟁은 단지 지리적인 위치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인 연결망을 통해 모든 국가로 그 영향을 미치며 특정 공간을 초월한다. 연극 <몬순>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국립극단]몬순_포스터.jpg

 

 

‘몬순’은 계절풍을 뜻하는 단어로 비를 동반한 바람이다. 예외 없이 모두의 몸을 통과하고 흠뻑 적신다. 이때 몬순은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현상인 전쟁이 된다. ‘예외 없이’ 모두의 몸을 ‘무의도성’을 가지고 통과하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전쟁의 참상에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닌, 주변부, 아무도 영향받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이 지속되는 곳에도 파편처럼 스며든 전쟁의 그림자를 그린다.

 

작품의 이야기는 세 집단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A 국가에서 외국인으로 홈스테이 하고 있는 학생과 그 가정의 이야기(A 집단), B 국가의 학생들(B 집단), C 국가의 동성애 커플과 그들의 친구(C 집단). A 집단에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학생 네이지는 ‘타트’ 출신이다. 타트는 현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이다. C 집단에서는 대학원생이 새벽이 졸업 전시를 위해 전쟁을 소재로 선택해 발표하고 있고, 그의 친구 이삭이 전쟁 사진작가로서 전쟁 지역에 머물며 특종을 노리고 있다. B 집단에서는 예술제 이야기만이 나올 뿐이다. 하지만, 이 집단에서 또한 타트인이 등장하고 있음이 후에 드러난다.

 

사람들은 타트인에게 묻는다. “왜 이 나라에 왔어요?” 이 질문은 마치 고국에서는 전쟁 중인데, 왜 당신은 이곳에 있느냐며 책망하는 듯 들린다. 이에 그들은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물어봐줘”라고. 사람들은 타트인을 다르게 대한다. 이민자로 말이다. 그들은 한 공간에 속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전쟁’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감각 또한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것이다. 이에 타트인과 타트인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듯 타트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전쟁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처럼 비춰진다.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5.jpg

 

 

하지만, 아니었다. 네이지가 홈스테이하는 집의 가장인 차미가 다니는 회사는 무기를 만드는 회사였고, 이들은 타트 전쟁에 전쟁물자를 팔아 이득을 남기고 있었다. 전화로 동생이 군인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해 심하게 다쳤다는 전화를 들은 직후였던 네이지는 잠시라도 이 집에 머물 수 없다고 말하며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에 차미는 말한다. 무기 회사이지만, 무기를 팔아 번 돈으로 기부하거나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주는 장학금을 지원한다고. 이에 네이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전쟁이 일어나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피해자처럼 보이는 네이지, 네이지가 보기에 가해자처럼 보이는 회사에 다니는 차미. 이들은 과연 피해자가 가해자로 쉽사리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인가.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4.jpg

 

 

B 집단에서 새벽은 졸업 주제로 ‘전쟁’을 선택하게 되어, 타트 출생이자 교환학생인 코우쉬코지를 만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전쟁에 대해 어떻게 보면 당사자에게는 폭력적일 수 있을 만큼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녀는 처음 발표에서는 전쟁에서 미사일이 수직 낙하하는 것처럼 그 아래 있는 사람만이 전쟁을 실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전쟁의 영향력을 느끼면서 자신의 생각을 고치게 된다.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3.jpg

 

 

C 집단은 퀴어 커플과 그들의 친구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전반부에는 이들은 전쟁과 완전히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점차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문과 리오는 갈등을 겪게 되고, 이때 문은 자신이 ‘성 소수자’이자 ‘타트 출신’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토해낸다. 그 후 여러 대화를 통해 문에게 그들은 말해준다. “넌 그냥 문이야”.

 

A, B, C 집단의 이야기는 각기 개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의 이야기는 연쇄적으로 얽혀있는 거미줄과 같다. 즉, 현대에서 ‘전쟁’은 해당 국민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연쇄적으로 이어져 있는 광범위한 문제인 것이다. 특히, 극 전반에는 어디에서도 특정 국가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A, B, C 국가마저도 프로그램 북에 이해를 돕기 위해 쓰여 있을 뿐이다.

 

이렇게 특정한 국가를 지정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의 영향력이 특정한 공간이 아닌, 수많은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더불어 3D 게임 영상이나 ZOOM 수업, 인터뷰 영상, 화상 통화 등 우리 삶과 밀접한 미디어를 무대 장치로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를 통해 관객이 지금 보고 있는 허구의 이야기가 단지 허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 곁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네이지가 이런 말을 한다. “차미가 서 있는 곳과 내가 서 있는 곳은 멀지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 이 대사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작품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기는 어려우며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한 ‘모두’가 전쟁의 공모자이면서 피해자라는 무력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이러한 불가피한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행동 변화를 통해 점차 성장해 나가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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