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은 비밀을 지켜줄 수 있나요? - 나의 연인에게 [영화]

영화 <나의 연인에게>를 음미한 뒤
글 입력 2023.04.04 10: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메인 포스터.jpg

 


 

시놉시스


 

사랑하는 나의 연인에게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줘

내 비밀을 지켜 줘

 

독일에서 유학 중인 튀르키예 출신의 의대생 아슬리(카난 키르)와, 파일럿을 꿈꾸는 레바논 출신의 치의대생 사이드(로저 아자르)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90년대 중반,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했던 시기, 아슬리는 사랑만을 믿고 사이드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사이드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게 되고, 자신이 떠난 것조차 비밀로 해달라고 하는데…

 

사이드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그를 믿지만, 불길함에 휩싸이게 되는 아슬리. 이해할 수 없는 사이드의 행동은 계속되지만, 그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사랑하는 마음만을 간직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되던 어느 날,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첫눈에 반했던 순간부터, 5년의 시간이 흐르고 2001년. 아슬리의 모든 신념이 흔들리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Dear Copilot, 내 비밀을 지켜줘.



3.jpg

 

 

여기 서로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있다. 독일에서 유학 중인 튀르키예 의대생 아슬리와 파일럿을 꿈꾸는 레바논 출신의 치의대생 사이드는 유학 중 사랑에 빠져 깊은 관계를 소중히 다져나간다. 파일럿을 꿈꾸던 사이드는 부모님의 권유로 치의대에 진학하게 되지만 마음속 깊이 파일럿의 꿈을 가지며 살아간다. 직접 비행기를 운전하여 자유롭게 하늘을 누비는 사이드의 꿈의 조건은 단 한 가지. 아슬리가 그 옆에 있어야만 했다.

 

아슬리가 없는 비행은 사이드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사이드의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은 후 두 사람은 아주 멀리 더 멀리 날아오른다. 결혼 허락을 받았다는 기쁨 그리고 둘이서 함께 할 미래에 대한 설렘이 합쳐져 그들의 어깨 위에 날개를 달았다. 조종사는 사이드는 그리고 부조종사석엔 아슬리. 그들의 비행은 흔들리지 않고 평온한 기류를 따라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의 비행에 문제가 생겼다. 사실 아슬리 부모님의 반대, 관계적인 문제 등 비행기의 부속품들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문제들은 늘 존재했다. 그러나 이번엔 느낌이 다르다. 평소에는 그저 따뜻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이드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모스크(이슬람교의 사원)에 참석하여 규칙적으로 기도를 드리던 사이드였지만 예전과는 달리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고, 코란(이슬람교의 교리)의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는 삶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너무 강한 신념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이 영화에 적나라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눈에 선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의용군으로 참여한다고 말하는 사이드를 볼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새벽에 아슬리 몰래 나가 누군가와 밀담을 나눌 때 알았어야 했다. 이미 그의 신념은 줄기를 자를 수도 없이 커질 대로 커져버렸다.

 

비행기의 조종사가 부조종사에게 목적지를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부조종사에게 말했다. 이 얘기를 누구에도 해서든 안된다고, 당신의 나의 부조종사이니 나의 편에 서서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 의무라고 말이다. 아슬리는 명령을 잘 따르는 부조종사였다. 심지어 사이드의 가족들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대단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 정도였다.

 

물론 아슬리도 사이드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기에 자취를 감춘 건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사이드의 꿈을 위해, 그의 온전한 비행을 위해 아는 것조차 감싸서 그녀만의 비밀창고에 가두었다.

 

 

6.jpg

 

  

비밀을 지켜준다는 것.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허용이 되는 것일까.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 답에 명확히 얘기할 수 있는 기준이 존재한다. “그 비밀을 지킴으로써 나의 사랑하는 사람도 지킬 수 있는지” 이것이 나의 명확한 기준이다. 내 기준에 빗대어 아슬리와 사이드의 상황을 지켜본다면 아슬리의 행동이 답답하게 다가온다.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동의하거나 응원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 길이 나의 사랑의 대상을 다치게 하거나 망가뜨리는 일이라면 더더욱 말려야 한다.

 

영화를 보면서, 한숨이 쉬어졌다. 아슬리는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며 사이드를 기다리고만 있는 걸까. 더 답답한 것은 사이드의 “가스라이팅”이었다. 강하게 표현하면 “가스라이팅”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하면 “신념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가 될 것 같다. 아슬리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신념을 달성하기 위해 그가 벌인 일, 테러. 하루아침에 테러범의 아내가 되어버린 아슬리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비밀을 벗기고 진실을 마주한 순간 이미 사이드는 곁에 없고 그녀의 마음도 상처투성이였다.

 

제일 악한 것은 잘못된 신념을 주입한 환경과 그 환경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사랑한다고 입을 다물고, 아껴주기 위해서 말을 아끼는 행동은 서로를 위한 길일까?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내가 직접 그 비밀을 밝히고 그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그 진실을 강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모든 이들의 비밀을 존중한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말로 상대방을 구렁텅이 속에 몰아넣는 일은 일어나질 않기를 바란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비밀을 지키지 않는 삶도 이러한 이유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는 밤이다.

 

 

 

# 그가 남긴 것


 

1.jpg

 

 

사이드는 세상을 떠났다. 직관적으로 묘사하진 않았지만, 9/11 테러 당시 납치당한 4대의 비행기 중 한 대를 몰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미리 예상은 했지만 더 충격적이었다. 파일럿이 꿈이었던 한 남자의 슬픈 결말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의 꿈을 이용한 단체에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가진 꿈은 소소했다. 아슬리와 함께 자식을 3명 낳으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간섭받거나 방해받지 않으며 드넓은 하늘을 직접 날아다니는 것. 오랜 꿈을 이룬 순간 그는 커다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가 남긴 것은 캄캄한 ‘폐허’일뿐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죽은 뒤 아슬리는 사이드의 유품을 받으러 온다. 그곳에는 사이드가 미처 전하지 못한 편지가 남아있었다. 그 편지에는 사이드가 전하지 못한 진심과 아슬리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아슬리가 자신을 잊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소중하게 담겨 있었다. 마치 조종사가 부조종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이 그리고 부조종사가 이제는 조종사가 될 때를 알리는 듯이 그의 편지에는 아슬리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난 여기서 사이드와 아슬리의 관계를 단순히 연인의 관계로 통칭하기에는 아쉬운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랑은 연인의 관계를 넘어선 ‘서로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 그 자체였다. 그가 있기에 그녀가 있었고, 그녀가 있기에 그가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사이드가 아슬리의 미래를 기대한다는 말이 구슬프게 다가왔다. 엘리베이터에서 편지를 읽는 아슬리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속 거울들과 어울려 묘한 느낌을 주었다. 여러 개의 거울이 아슬리를 비추고 있었고 편지를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거울 속의 아슬리들은 진짜 아슬리를 쳐다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늘 함께였던 아슬리와 사이드. 하지만 이젠 혼자가 된 부조종사 아슬리는 거울 속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혹은 한 조종사로서 인정받으며 자신만의 새로운 비행을 시작할 것인가.

 

마치 거울 속에 아슬리를 가둬놓은 것처럼 보인 것으로 유추해 볼 때 난 아슬리의 새로운 비행이 얼른 시작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함께한 5년이 그녀가 홀로 비행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를 멈추지 못했던 그녀의 서툰 선택이 그리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아슬리’라는 엔진을 다시 갈고닦으면 사이드와 함께했던 비행보다 훨씬 더 높이 날 수 있을 것이다.

 

 

[임주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