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발에 씌운 신발, 신발에 덧씌운 역사 - 신발로 읽는 인간의 역사 [도서]

왜 인간은 다채로운 신발을 신는가
글 입력 2023.03.0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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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제작된 신발의 종류를 따져 본다면,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할 것이다.

 

다만, 이를 표현하듯 세상에는 이런 신발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화려한 책 표지와는 달리 생각보다 내 신발장의 역사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올겨울 현관에 있는 내 신발은 운동화, 굽 없는 로퍼, 방수기능이 있는 부츠 이렇게 세 켤레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엄지발가락이 길어 발의 총길이는 긴 반면에 발볼은 좁아서 맞는 신발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걷다 보면 아파오는 발 때문에 신발을 구매할 땐 디자인에 대한 선택지가 몇 없었기에, 다른 건 몰라도 신발에 있어서 만큼은 기능주의가 최우선 고려 요소였다.

 

따라서 나의 경우는 자연스레 신발에 대한 소장 욕구와 관심이 사그라들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가끔 ‘불편하지만 멋진’ 신발들을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부러우면서도 어딘가 대단해 보이는, 그런 의아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렇게 내 앞에 놓인 신발에 대한 방대하고 이 진귀한 문화 탐구서에서, 이 마음의 출처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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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몸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발에 씌운 신발, 그리고 그 신발에 덧씌운 역사라니, 흥미로운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4,500년 전의 신발부터 현대의 신발까지, 무려 13,000여 점에 이르는 전 세계의 신발이 전시된 이색 박물관인 ‘바타 신발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이다.

 

그는 신발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 가치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서, 이번 책에서는 신발에 담긴 사회·문화적인 쟁점을 조명하기 위해 특히 20세기와 21세기의 서구 사회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네 가지 주요 신발의 전형인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에 초점을 맞췄다.

 

고대 로마 제국 때 널리 착용되다 수 세기가 지난 18세기 말에 재조명되어 서구 패션에 도입된 샌들은 평평한 밑창과 끈이 달린 신발의 초기 형태이자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전과 이방인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노출에 대한 프레임으로 자유의 상징 혹은 성별에 대한 전통적 관습의 영속으로 읽힌다.

 

부츠는 인간이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탄탄한 소재로 제작된 신발로, 특히 전쟁이라는 남성 영역에서 적을 정복하고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쓰였던 오랜 역사가 존재한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부츠의 중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설 자리를 잃고, 오히려 노출을 하지 않고도 몸의 라인을 드러낼 수 있다는 식의 접근으로 외설적인 이미지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논쟁과 비판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하이힐은 실용성과는 가장 거리가 먼 신발 중 하나이다.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는 하이힐이 승마용 신발의 한 특징으로부터 기원했고 애초부터 대지를 딛는 용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하이힐의 성별 구분은 유럽 전역에서 발전하던 계몽주의의 합리주의 철학에 부합해 여성을 본능, 관능, 비합리적인 열정에 이끌리는 존재로, 남성은 이성에 의해 통제되는 존재로 여기는 데에 크게 기여하는 액세서리가 되면서부터 극적으로 나뉘었다. 

 

이러한 계몽사상은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이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권력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한 우려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성 유동성(gender fluid)’에 대한 인식이 커짐에 따라 견고한 듯했던 성별 구조의 경계도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스니커즈는 현대적인 산업 시대의 산물로, 이 책에서 다루는 가장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신발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튼튼하고 싼 가격 덕에 가장 대중적인 신발 형태로 자리 잡았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운동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건강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 속에서도 브랜드와의 유대를 통해 개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성장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욕망의 대상이 된 신발이기도 하다. 한편 스니커즈의 주재료가 되는 고무 재배지의 잔혹한 노동 조건과 산업의 기계화로 인권과 환경 문제에서의 논란과 비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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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두는 “신발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답은 꽤 명백하게 존재한다. 신발은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발에 착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발은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기술의 발전과 생활 수준의 향상, 시대를 둘러싼 환경 문제 등을 마주함에 따라 이제는 정체성이라는 단어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이 책은 신발의 유형 분류 체계를 정리한 것도 아니고, 제작 기법이나 변천을 알려주는 카탈로그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신발의 대표 전형들을 위주로 내용을 전개했다고 해도 가끔씩 등장하는 세분류나 생소한 신발 용어가 적혀 있어 나처럼 평소 신발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읽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신발에 담긴 역사를 서양에 국한되어 다룬다는 점에서도 일면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각국의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발이 성별을 표시하고 지위를 선언하며 저항을 표현하는 인간 전반의 시대정신을 분석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히기에는 충분했다.


신발은 수천 년 동안 자신들이 일구어낸 대지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자들의 비언어적 표현이다.

 

까다로운 발 모양새와 복잡해진 땅의 표면을 떠올려 본다. 그 속에 얽혀 왔던 의미가 여태까지 읽혀 왔던 이분법적인 역사를 벗어나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발자국을 남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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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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