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글픈 가장 [건강]

글 입력 2023.02.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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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몸으로 양배추와 바나나를 사들고 죽집으로 들어섰다. 쇠고기야채죽을 포장하고 가게를 나서자 날이 꽤나 추웠다. 홀로 살기 시작한 뒤부터 적지 않게 느끼던 감정이었다. 홀로 아프면 조금 외롭구나.


두 접시를 가득 채운 굴 중 딱 하나를 집어먹었을 뿐인데 보란 듯이 노로바이러스를 얻고 말았다. 이렇게나 운이 없다니. 대략 24시간의 공복기를 지나 순식간에 몰려드는 몸살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해열진통제를 먹어도 시간이 지나 약효가 사라지면 몸은 삽시간에 무거워졌고 배는 욱신거렸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는 겨우 집에 돌아와 서랍을 뒤졌다. 찾아낸 지사제와 해열진통제를 허겁지겁 집어넣고 샤워를 한 뒤 저녁 8시부터 내리 잠만 잤다.


다음날 점심시간을 눈치 보며 할애해 수액을 맞았다. 몇 시간 누워있을 수 있으세요. 잠시간 고민하다, 사십 분 정도요. 바늘은 아팠고 전기장판은 뜨거웠다. 천근만근인 몸을 이대로 둔다면 땅 밑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눈을 감았고, 다시 뜨니 사십 분이 지나있었다. 잠을 자서 그런지 몸이 훨씬 가벼운 듯했다. 왠지 어깨는 그대로인 듯했다.


전날 점심을 끝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하자 약사님이 놀라셨다. 식욕이 없어서 안 먹은 건데, 일부러 안 먹은 것으로 아시는 듯했다. 저녁부턴 된장국, 황태국 정도는 좋으니 뭐라도 먹고 푹 쉬라고 하셨다. 진하게 끓인 차돌된장찌개가 떠올랐지만 객기도 거기서 끝났다. 뭘 더 상상할 기력이 없었다. 다시 잰걸음으로, 내 자리로 돌아갔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역 앞에 위치한 식자재 마트로 향했다. 이만치나 아프니 어디선가 문득 나를 챙겨주는 손길이 있을 것만 같은 망상에 잠깐 빠졌지만, 나는 혼자 살기 때문에 내가 나를 챙겨야 한다. ‘장염에 걸렸을 때 좋은 음식’, ‘노로바이러스 걸렸을 때 좋은 음식’을 검색한 결과 양배추가 수많은 답변을 차지했기에 양배추 반 쪽을 가장 먼저 집어 들었다.


평소에 저녁으로 삼기 좋아하는 두부와 버섯을 또 손에 쥐고, 마지막으로 바나나 한 송이를 잡았다. 수많은 ‘좋은 음식’ 중에 바나나도 두어 번 본 듯 해서였다. 심지어 반값 할인 중이어서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상태가 좋은 바나나는 왜 할인을 하는 걸까. 물량이 많은 걸까, 유통기한이 짧은 걸까. 내가 보기엔 많이 익지도 않았는데. 세상에는 원리를 알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계획에 없었던 장이라 장바구니가 없어 종량제 봉투를 샀다. 바나나 때문인지 꽤나 무거웠지만 열심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내가 서울에서 달마다 겨우 연장해 차지하고 있는 조그마한 공간은 두 정거장 더 뒤에 있으니까. 손이 무거워서 그런지 숨이 조금 찼다. 공기도 차가웠고, 저녁 하늘은 파랬다. 이제는 이 시간에도 해가 있구나. 밤이 긴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며칠 전보다 밝아진 저녁 하늘이 반가웠다. 밤이 길면 기분이 빨리 시드는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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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죽집에서 포장 주문을 하면 처음부터 소분해서 여러 용기에 담아줄지 먼저 묻는다. 세상이 참 빠르다 싶었다. 2개로 나눠달라고 요청한 뒤에 잠시간을 기다렸다. 간이 강한 메뉴가 먹고 싶었지만 언제까지고 앓을 수는 없었다. 특히 요즘의 나는 더욱 그러면 안 되어서, 애써 폰 잠금을 풀어 SNS를 둘러보며 딴짓을 했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김치죽이 생각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다 말았다. 아픈 걸 알면 생각보다 더 걱정하는 것 같아서, 바깥에 있는 지금보단 침대에 누워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목소리로 통화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107번 죽 포장하신 거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양손이 묵직했다. 어차피 통화할 손도 없었다.


문을 밀고 나오자 바로 신호등이 켜져서 종종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마스크를 내리고 싶었지만 공기가 너무 차가웠다. 종량제 봉투를 쥔 손이 당겨와 양손을 바꾸었다. 손을 바꾸는 데에도 힘이 들었다. 친구들이 식중독이나 노로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했을 때 대충 넘어갔는데, 이정도로 아픈 거였으면 죽이라도 사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걔들도 혼자 살았는데. 고생했겠지. 양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무릎에 채이느라 바스락거리는 파란 봉투만 바라보며 걸었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늘이 시렸다.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게 이틀이 지나갔다. 신경 쓸 것도 해야 하는 것도 참 많은데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는 누워서 쉬고 자며 컨디션을 회복해야 하는 일뿐이라는 게 더없이 막막하다. 수액 덕분인지 몸은 많이 나아졌지만 무리하면 쾌차는 한층 더 멀어진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막연함을 느끼지 않는 데에 골몰했고 잠에 집중했다. 있는 힘을 다해 쉬겠다는 의지였다. 잠시 맞은 찬 바람에도 몸이 급히 식었다. 내 일은 대체 언제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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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 지 5년도 넘었건만 홀로 아픈 것은 아직도 익숙지가 않다. 아프기만 하면 괜히 누군가에게 찡찡대고 싶고,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싶고, 이왕이면 옆에 계속 있어줬으면 좋겠고. 홀로 지낸 시간이 짧지 않다고 해도 어린 성정은 흐른 시간만큼 자라지는 않는 것 같다. 이런 것도 쉽게 감내할 줄 아는 사람을 두고 ‘철이 들었다’고 표현하는 걸까. 나는 그러면 평생 철들 수 없을 것 같은데.


‘1인 가구 가장이라 제가 집에 안 가면 저희 가정이 무너져요’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퍼진 요즘의 사회인 만큼 나도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으나, 사실 이 말만큼 외로운 말도 없다. 아무리 몸이 무거워도 꿋꿋하게 걸어야 하고, 힘들더라도 밥을 챙겨 먹어야 하고. 울컥 서글프고 우울해지기 딱이지만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상황. 그래서 더욱 홀로 앓기만 하는 날들.


컨디션이 안 좋으면 푹 자고, 중력을 잃을 것 같으면 떠들며 웃고, 메말라가는 것 같으면 모르는 곳으로 나가 숨을 쉬어보는 것이 맞다. 그런 사소한 것들부터 챙겨야 1인의 삶을 무던히 버틸 수 있는데 나는 아직 이에 익숙하지 못해서 여즉 고생이다. 사람을 챙기는 것은 원래 힘들다지만 이 말에 나 자신도 포함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언제쯤 알아서 잘 사는 척척가장이 될까. 양배추를 삶았던 냄비를 씻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씻은 쌀과 야채를 넣고 물을 가득 붓고는 취사를 눌렀다. 오늘 저녁은 야채죽이야. 먹고 얼른 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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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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