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름밤의 몽상가가 노래하는 청춘의 조각들 - 장르는 여름밤 [도서]

글 입력 2022.09.1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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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가을’이라고 대답한다. 대단한 이유는 없고, 다른 계절들을 소거하다 보면 남는 게 가을이기 때문이다.


봄은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싫고, 여름의 무더위는 나에게 쥐약이며, 겨울엔 마음마저 생명력을 잃고 꽁꽁 얼어붙을 때가 많다. 그에 비해 가을은 나에게 언제나 적당한 계절이다. 내가 좋아하는 드높고 파란 하늘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고마운 계절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마음은 이렇게 그저 은은하게 품고 있는 반면에, 가장 싫어하는 계절에 대해서는 몸서리를 칠 때도 있다. 그게 바로 여름이다. 여름에 태어나 매년 여름에 생일을 맞으니 기쁜 계절로 여겨질 만한데도 말이다. 더위에 취약한 나에게 습하고 무더운 우리나라의 여름은 고통 그 자체다. 오죽하면 이번 여름에는 덜 습하고 덜 더운 나라로 도피하듯이 여행을 떠났을 정도다.


그런 내가, 여름과 여름밤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은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나는 여름밤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소리를 만들고 글을 쓴다. 그 결과물인 음악을 어느 계절에 들어도 누구나 여름밤을 떠올리기 바라며. 내게 여름은 감성의 근원이고 여름밤은 열매인 셈이다.”

 

<장르는 여름밤>, 20p

 


주변에도 여름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언젠가 그 이유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그보다 먼저 이 책을 통해 여름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본다.


뮤지션이자 작가인 지은이 몬구는 주로 음악을 통해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지만, 자신에게 많은 영감을 준 여름밤의 숨결만큼은 글로 기록하여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 자신과 음악에 대한 생각, 음악을 하며 만들었던 추억들, 어린 시절의 기억, 사람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섬세하고 잔잔한 감성으로 풀어간다. ‘장르는 여름밤’이라는 제목과 꼭 어울리게, 이 책은 주제가 여름밤인 것이 아니라 여름밤이라는 장르 안에서의 청춘 이야기 같다.


여름과 음악, 그리고 청춘. 책을 읽으며 참 닮은 점이 많아 보였던 세 가지인데, 나란히 적어놓으니 서로 잘 어울리기까지 한다. 이들은 에너지가 가득하고 변주가 많다는 점에서 닮았다.


여름은 싱그러운 생명력이 가득한 녹음의 이미지를 제일 먼저 상기시키지만, 사실 그보다 더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리쬐던 하루에도 갑자기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고, 몇 주 내내 폭우가 쏟아지는 기간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생명력이 있는 모든 것을 시험하듯 강한 태풍이 불어닥치기도 한다.


청춘 역시 에너지 넘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이미지를 띤다. 하지만 나는 요즘 청춘을 떠올릴 때 아픔과 외로움을 먼저 떠올린다. 내가 봐온 청춘들, 그리고 무엇보다 청춘을 보내는 나의 일상에는 결코 에너지와 낭만이 가득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의지와 희망을 품다가도 모든 게 불안하고 절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모든 걸 그만두고 가만히 휴식을 취하고 싶기도 하다.


 

“잎사귀가 자라지 않아도 뿌리는 자란다고 내 식물 멘토가 알려주었다. (중략) 지금의 내가 홍콩야자의 여름처럼 훌쩍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색이 변한 건 아니다. 다만 봄에서 막 여름이 된 그 시절이 조금 그리울 뿐이다.”

 

<장르는 여름밤>, 59p

 


여름에는 폭발적으로 자라다가 가을에는 잠시 숨을 고르고, 겨울에는 색이 변하며 잎이 떨어지고 마는 홍콩야자에 대한 글이 있었다.


홍콩야자의 여름 같은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것을 되찾고 싶을 수도 있지만, 조금 머뭇거리는 방황의 순간이나 잎이 떨어지는 상실의 순간도 청춘과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이것은 변주일 뿐이다. 여름이라는 계절 안에서의 변주일 수도 있고, 혹은 아예 계절의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설령 계절의 변화일지라도 크게 당황할 것은 없다. 여름의 장마와 태풍이 세상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나에게 가장 적당한 계절인 가을이 오곤 하니까.


문득 지난 여름밤의 조각들을 떠올려본다. 여름의 변주가 놀라운 만큼 삶의 변수도 여름에 가장 많은 것 같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에게도 강렬하고 뜨거운 여름의 기억들이 있다. 여름의 에너지가 그 순간들과 함께였다는 생각을 하니, 어쩐지 이제 여름이 아주 싫지만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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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컬쳐리스트.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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