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정결핍이라는 환상 [사람]

환상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자
글 입력 2022.09.17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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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예전부터 애정결핍이라는 단어만 보이면 짜증이 치솟는다. 마치 유행병처럼 사람 마음을 헤집어 대고 한 개인의 치부 마냥 소비되는 게 아주 재수가 없다. 애정결핍, 병명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통념이나 미신 그 어딘가 애매한 포지셔닝으로 내 신경을 긁는 단어. '애정'과 '결핍'.

 

사랑을 가득 받고 자란 인간임을 전시하려 애를 쓰고 사랑 받고 자란 인간의 특성을 파헤치고, 또 모방한다. 싫어하는 누군가를 안쓰럽게 여기며 동정하기에도 이만큼 좋은 핑계가 없다. '걔가 애정결핍이라......'로 시작하는 모든 비난은 대단히 거만하면서도 시혜적이다.

 

1. 애정을 충족할만큼 받고 자란 사람이 얼마나 될까? - 일단 결핍이라는 말부터 시작하자. 애정을 만족스러울만큼 가득 받고 자란 성인이 우리 세대에 얼마나 있을까?

 

가정을 해보면 (1)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애정을 어릴 때부터 명확히 알고 그것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경우, (2) 주변인들이 모든 방면에서 애정을 담뿍 쏟았을 경우,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애정결핍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가정을 모두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걸 모두 안다. 부모가 주는 사랑의 모양과 자녀가 원하는 사랑의 모양이 제각각인 경우가 다반사다. 어떤 부모는 자녀의 우수한 부분을 치켜세워주고 북돋아주는 게 사랑이라 생각한다면, 어떤 자녀는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격려해주는 게 사랑이라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친구는 감정적 지지를 사랑이라 여기는 반면에, 어떤 친구는 명확한 충고를 통해 함께 발전을 도모하는 게 사랑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모종의 결핍을 갖고 산다는 거다. 자연스러운 결핍을 받아들이면 미숙했던 주변인과 쉽게 상처받는 스스로를 구원하고 용서할 수 있다.

 

2. 애정결핍이란 단어 때문에 '애정'을 갈구하게 되는 아이러니 - 나는 가끔 '너 애정결핍이야?'라는 무례하고 거만한 질문에 마치 치부를 들켜버린 듯 화들짝 놀라는 사람을 본다. 그리고 좀 우습다고 생각한다.

 

애정결핍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어색하게 쓰이기 시작하면서 진짜 이상한 현상이 나에게 발견 되었다. (1) 애정이 결핍되지 않은 자신을 작위적으로 과시하거나 사랑받고 자라 '보이는' 타인을 추종하는 현상 (2) 다른 종류의 결핍보다 애정결핍을 지나치게 수치스러워 하는 현상.

 

애정결핍에는 모두 비슷한 결핍을 앓고 있으면서 누구는 과시하고 누구는 추종하고 누구는 감추려는 이상한 병증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겪은 애정의 차이를 받아 들이고 누구의 애정에도 기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3. 애정으로만 성장하진 않는다. -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애정은 굉장히 중요한 감정의 한 부분인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삶을 돌아보면 미워하는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멸시도, 쏘아붙이던 따끔한 말도, 부어진 애정에 돌아오는 무관심도, 스쳤던 문장 한 구절도 하물며 문득 눈 마주친 하늘도 우리를 성장하게 했다. 애정이 없더라도 우리는 아픈 성장을 감내할 용기를 얻었고, 애정이 넘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가 불완전한 인간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사랑받은 티가 나는 사람'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나 '사랑을 퍼주고도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상으로 나아갈 모두를 응원하며.

 

 

[오영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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