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직 카메라로 말하다 -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도서]

글 입력 2022.09.0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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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 남자는 우연히 15만 장의 필름을 발견했다. 자그마치 40년 동안의 기록으로 사진들은 다양한 장르 즉, 가족 사진, 인물 사진, 셀프 포트레이트, 풍경 사진, 공업단지 사진, 거리 사진, 파파라치 사진 등을 담고 있었다.


이것은 오직 카메라로 말한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사진들이었다.


미국 뉴욕, 시카고 등 거리 풍경과 인물들의 일상을 포착해 방대한 사진을 남긴 비비안 마이어는 살아생전 자신의 사진을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비비안 마이어를 사진 찍기를 좋아한 사람이라 기억하던 사람들도 그녀가 이렇게나 많은 사진들을 찍고 보관했으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그녀가 감추고자 했던 사진들은 사후가 되어서 역사가 존 말루프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다. 그녀의 사진들을 보게 된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녀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찍은 사진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언론 또한 천재적이나 불운했던, 사진에 열정적이었지만 철저하게 감춰두었던 무명 사진가의 삶을 조명했고, 대중들 또한 그녀의 삶과 사진에 주목했다.


그리고, 비비안 마이어의 삶과 사진들의 이야기를 담은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가 있다.


 

“마이어의 수수께끼 같은 삶과 재발견된 사진들은 대중과 언론을 사로잡았다. 그의 삶과 작품은 이미지가 중심인 문화의 도래와 영향력, 예술가의 삶에 대한 진실과 고정 관념, 유명 인사와 시장의 관계, 페미니즘, 타자성, 강박 관념 등 도발적인 문제의식을 자극한다.”

 

“마이어는, 사진을 찍고 싶어하고 늘 디지털 장비들을 가지고 다니며 수많은 사진을 찍어대는, 어쩌면 마이어의 모습과 닮은 우리들에게 깊고도 심오한 이야기를 건넨다. 물론, 마이어와 우리는 다르다. 그는 사진에 평생을 바쳤으며 규율을 가지고 사진을 찍었다. 마이어는 삶을 구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이용했지만 이를 좀처럼 세상에 드러내지도, 다른 이들과 나누지도, 상업적인 용도로 이용하지도 않았다.”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중 가장 깊이 있는 작품 235점을 선별해 한 권에 담은 사진집이다. 개인 유품과 기록까지 포함한 방대한 자료집이자 큐레이터 마빈 하이퍼만의 섬세하고 철학적인 관점으로 마이어의 삶을 되짚고 작품을 분석한 비평 에세이이기도 하다.

 


비비안 마이어가 유명해진 이후 사람들은 그녀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오히려 미스터리한 부분만이 커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이어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려 계보 전문가들과 아마추어 사진 탐정까지 동원했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일관성 없고 부정확한 인적 기록, 사생활과 작품 활동의 엄격한 경계, 겉으로만 알고 지낸듯한 지인들의 오래된 기억들은 비비안 마이어 인생을 전부 다 말하기엔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책에 소개된 그녀의 연대기 또한 생전의 기록보다는 사후의 기록이 더 많다.


 

▶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성장


▶ 시카고 등지에서 50년 이상 꾸준히 수십만 장의 사진을 촬영하여 아이 돌보미, 가정부로 생활


▶ 2007년, 창고 임대료를 내지 못해 경매로 내놓은 사진 필름 상자 5개가 존 말루프에게 팔림


▶ 2009년 4월, 세상을 떠남


▶ 2009년 10월, 존 말루프가 플리커에 공개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커다란 반향, 이후로 덴마크, 스웨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전역에서 전시회 개최


▶ 대한민국에서도 2015년 성곡미술관 비비안 마이어 특별기획전이 성황리에 개최


▶ 2015년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개봉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분 노미네이트)


▶ 2022년 8월부터 그라운드시소 성수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전시
 


비비안 마이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


늘 사진을 찍었던 비비안 마이어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본 사람 같다. 또한, 그녀는 수수하고 단순한 옷차림으로 카메라를 목에 두르고 이곳저곳 도시를 누비벼 자신이 일하는 집의 모습과 아이들과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자주 포즈를 취해주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가장 생기 넘치고 독창적인 작품이라 평을 받는 뉴욕의 거리 사진 즉, 뉴욕 거리에서 도시의 모습과 생활상, 그 곳의 사람들, 도시 특유의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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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독신으로 살며 아이 돌보미, 간병인으로 일했고 몹시 지적인 사람이었다 한다. 늘 특권, 젠더, 인종, 정치, 죽음 등의 주제에 민감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사진 속 등장하는 인물은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 이외에도 삶이 망가진 사람들, 5번가와 바우어리 거리, 모더니스트가 지은 예술적인 건물들과 대비되는 빈민가 공동 주택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풍경을 즉, 공원, 배, 동물 등의 모습도 담았다.


그녀의 작품을 보며 특징적이라 생각했던 지점은 크게 세 가지 였다. 첫째는 흑백 정사각형 크기의 사진이고, 둘째는 뷰바인더 방식으로 주로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은 점, 셋째는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풍경 또는 사람 등을 찍은 점이었다.


첫째와 둘째는 그녀가 사용했던 카메라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그녀는 여러 대의 카메라로 작업했지만 25년 이상 손에 쥐었던 카메라는 롤라이플렉스 였다고 한다. 이 카메라는 전문가용 2안 반사식으로 가로 세로 6cm의 정사각형 사진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특징적인 것은 이 카메라는 동시대 나온 더 작은 크기 35mm 카메라들과 달리 중형인 롤라이플레스는 카메라를 눈높이까지 들어올려 찍는 방식이 아닌 목에 걸거나 팔에 매달아 가슴과 허리 중간쯤 몸의 중심에 놓고 찍는다고 한다.


또한, 뷰파인더는 피사체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여 아래로 내려다보는 방식이다. 뷰파인더 방식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여 찍고자 하는 대상에 집중해야 하며, 1초라는 짧은 순간일지라도 고도의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녀는 대상을 또는 자신을 찍었다. 사진집 속 셀프 포트레이트가 눈에 띈다. 그녀는 주로 자신을 찍을 때 거울을 마주보고 카메라는 내린 채로 고개를 숙이거나 들거나 또는 고개를 사선을 향해 찍기도 했다. 늘 의식한 듯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를 보며 어떠한 의도가 담겨있을지 궁금했다. 단지, 자신의 오늘을 기록하기 위함일까. 혹은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잠시 필자는 사진을 바라보며 그녀가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기 위해 거울이나 유리창을 찾아다니며 찍었을 모습을 상상해본다.


한편, 비비안 마이어 사진 중 ‘나는 카메라다’ 문구가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있다. 이것은 1959년 마이어가 뉴욕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옛날 영화 상영관 탈리아의 차양에 쓰여 있는 글귀로 이 문구에 상당히 동질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이어는 일할 때나 쉴 때나 줄곧 사진을 찍었고 사진에 깊이 몰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이어는 기록하는 행위를 일상으로 삼았던 사람이고 이것이 그녀의 삶의 중심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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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또 기록했다. 사진뿐만 아니 필름, 테이프 등 다양한 기록 저장 장치로 세상을 기록하고자 했다. 특히, 사진을 찍을 때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찍었고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는 사진도 있었으나 의외의 주제 또한 있었다. 심지어는 인물과 장소, 상황에 관계없이 찍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을 찍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마이어는 찍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타인의 시선에도 신경쓰지 않은 모습이다. 이를테면, 필자라면 찍지 못하고 지나갔을 법한 계단에서 숙여 구두를 고쳐신는 할머니, 공원에서 누워있는 여자, 차 안에 타고 있는 아기의 모습 또는 빈민가 사람들의 모습,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누워 있는 사람, 사건 현장 등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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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남녀노소나 상황을 꾸며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담았다. 사진을 보다보면 때론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모습과 불편하고 불쾌해하는 모습도 노골적으로 담겨있다. 사진 속 인물 중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진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필자까지 움찔했다. 하지만, 사진집을 읽다보면 그녀가 찍은 사진들이 착취적이거나 관음적인 느낌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삶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더 가깝게 보인다. 누군가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는 컬러보다는 대체로 흑백 사진이 많다. 1950년 초반 당시, 컬러 필름의 보급 속도가 느렸고 20세기 중반에는 컬러 사진의 상업적 이용 확산에 대한 완전성과 진지함에 의문을 제기하며 불신한 사람들의 영향이었을지 모른다. 그보다 컬러 필름을 처리하고 인화하는데 드는 비용에 대한 부담일 수도 있다. 줄곧 가난한 삶을 살았기에 1950년 초반 뉴욕에서 컬러 사진을 찍고 이후 20년 동안은 드문드문 찍었다는 것을 미루어볼 때 아마 높은 가격 때문에 쉽사리 컬러 사진을 찍기 어려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보며 평생을 몸을 쓰는 고된 일을 하며 남의 집을 전전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직업 구하기가 어려워져 어렵사리 살다간 그녀의 삶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살아생전에 마이어가 보관했던 사진들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예술 세계를 알고 있었고 후원이나 물질적 도움 없이 홀로 작업하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이러한 선택에도 이유가 있을리라 생각하기에 그 선택을 이해한다.


그녀가 숨겼던 비비안 마이어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었지만 사실 그녀는 이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사진집에서는 그녀가 녹음한 오디오 테이프에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해. 이건 바퀴야. 일단 타면 끝까지 가야 하는 바퀴. 그러면 다른 누군가도 끝까지 가볼 기회를 갖게 되겠지.”


평생 사진을 찍었으면서도 그 사진으로 관심 끌기를 원치 않았던 모습은 사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가 자신의 유명세를 떨치고 많은 부를 축적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르지만 마이어는 진정으로 예술만을 바라본 진짜 예술가 같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사후에도 그녀가 사랑받는 이유라 생각한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매력적인 것은 우리가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진들이 우리에게 예술가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보며,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43p)

 


[정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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