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길 위의 미스터리한 천재 사진가, 강심장 비비안 마이어

글 입력 2022.09.03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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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능력을 스스로 PR 해야 되는 어렵고도 복잡한 시대다. 자신이 얼마나 감각 있고 세련된 사람인지, 자신감 있는 사람인지 뽐내면 뽐낼수록 그에 알맞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기회를 운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의아해질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은 이 방법에 대해 대단히도 매혹되어 있다.

 

뭐든지 양날의 검을 수반하고 있다고, 득이 되는 요소도 충분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알아가는 과정은 크게 생략되는 관계의 안일함이 걱정된다. 상대를 향한 관심은 시간이라는 노력 없이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정보를 알아볼 수 있으며, 보여 지는 이미지가 그 사람의 전부라고 쉽게 간파하며 생각을 단념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런 SNS 양상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아쉽다고 느껴서인지 사람 대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예전만큼 자연스레 증폭되지 않는 것에 필자는 조금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 갈증에 대한 익숙한 감각이 적응될 때쯤 20세기를 대표하는 거리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OTT 서비스 왓챠에 그녀가 꽁꽁 숨겨둔 사진들이 세상 밖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전시될 수 있었는지부터 시작해 비비안 마이어의 신비로운 생에 대한 역사를 초점화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예술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의 내막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존 말루프라는 아마추어 역사학자는 2007년 역사 책에 쓰일 과거 거리 사진을 찾기 위해 집 앞 경매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인화되지 않은 필름 수십만 장이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하고 낙찰받게 된다. 그러나 수없이 쌓인 사진을 아무리 정리해 봐도 오직 정보는 이 모든 것들을 찍은 사람의 이름만 알 수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가 누군지 인터넷으로 아무리 검색해 봐도 감감무소식이자 필름을 스캔 후 자신의 SNS에 올렸더니 그녀의 사진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꽤나 열광적이었다. 그녀의 사진은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으며 전문가들에게 따로 인터뷰를 청하니 유명 사진작가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헬렌 레빗 등과 견주해도 손색없이 찬사를 받을 만한 거장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생전 정성껏 찍은 수많은 사진들을 그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은 점은 예술적 감각을 타고난 성향을 고려하면 굉장히 이례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녀는 보모라는 직업을 겸하면서 취미지만 대단한 재능과 노력으로 사진 작업에 월등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보모라는 직업은 아이들을 케어하고 보살피면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지만 사회적 위치로서 받을 수 있는 급여는 박봉이라 감히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사진을 통해 어떤 이득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과 더불어 아무나 가지기 쉽지 않은 특별한 재능을 자랑하듯 어딘가에 열거시키지 않은 행위를 보아하니, 그녀는 인생의 본질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인정받아야겠다는 욕심보다는 스스로의 갈증을 채워나감으로써 외로운 삶의 줄기를 견뎌내는 강한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전 세계 사람들은 사진이라는 단편적인 이미지만 보고 그녀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비비안 마이어라는 한 여성이 살아온 역사와 사진을 동시에 대입해 감상하다 보니 신비로우며 현명했던 그녀에게 대중과 언론의 궁금증이 샘솟는 것이 당연했다.

 

살아생전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을 전시하고자 했던 욕망이 없었기에 그녀가 세상에 없어지고 나서 비비안의 신비로운 생각에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모든 정보는 자연스레 듣고 보는 것보다 직접 발품, 손품, 눈품의 시간을 할애해야 더 정이 가서 오래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듯했다.

 

 

 

자유로웠던 영혼이 남긴 빛나는 삶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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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공공도서관, 1954년경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의 큰 특징은 길이라는 무대 위에서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어떠한 긴장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대담한 사람이었다. 사진을 찍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나가기 전 사람을 피사체 안에 들어가게 구도를 생각하기까진 마음이 복잡하진 않지만, 막상 카메라를 대상 쪽을 향해 몸을 비트는 순간 생각의 회오리는 정신 없어진다. ‘너무 무례한 행동이지 않을까’ ‘저 사람이 불쾌하게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걱정들 속에 찰나읫 순간 아름답게 남길 수 있는 여러 행인들의 포즈를 놓쳐버리고 만다.

 

그에 반면 비비안은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이미지를 수집해야 한다는 사명을 강하게 띤 사람처럼 셔터를 과감 없이 눌렀다. 그 결과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기록물에는 사랑, 눈물, 빈곤, 죽음, 우울 등의 인간의 심리에 대한 다양한 변주가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셀카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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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1953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의 주인공이 되어주었던 거리의 사람들에 대한 기록물은 정말이지 시선을 떼기 어렵다. 이것과 더불어 또 하나는 그녀 스스로 자신을 찍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녀스럽게 보여줄 듯 다 보여주지 않는 매혹적인 셀카는 따라 찍고 싶게 만드는 호소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캐롤>을 제작할 때 미장센의 대가 토드 헤인스 감독은 비비안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거리의 쇼윈도나 동그랗게 생긴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많이 남겼다. 어쩌면 비비안의 성향과 셀카는 궁합이 안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반전으로 마치 셀피의 원조인 마냥 자신의 사진을 많이 남긴 것으로 보아 사람 자체에서 아이러니한 매력이 주체 없이 밖으로 나오는 힘을 가졌다고 느끼게 된다.

 

 

 

비비안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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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1955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나는 가끔 세상이 내가 티켓을 사서 들어온 곳 같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은, 세상은 내게 큰 공연이다.”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사용되듯, 세상을 어떤 경로로 사용할 것인가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무대화되어있다. 비비안은 마치 세상을 계속 놀고 놀아도 지치지 않을 것 같은 놀이공원으로 비유하고 티켓을 구입했다고 표현했다. 세상에 주어진 모든 우연을 그냥 스쳐 보내지 않고 자신의 시선을 끄는 얼굴들 앞에 멈춰 셔터를 눌렀다.

 

화려한 도시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유토피아의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 가난과 노동의 고통, 비참한 어두운 운명에 가려진 얼굴들을 사진에 남겼다. 전체를 보여주는 사진도 있었지만 뒷모습과 등, 손이나 다리처럼 부분을 담은 파편화된 이미지는 작은 부분으로 전체를 상상하게 하는 내러티브의 힘도 포함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살아생전 드넓은 세상을 카메라를 통해 제대로 즐기고 갔다. 비비안이 남긴 사진으로 인해 우리는 결코 살아보지 못할 한 세대를 느껴볼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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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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