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정한 고독자, 비비안 마이어

사진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법
글 입력 2022.09.01 01: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poster_A2.jpg


 

 

다정한 고독자, 비비안 마이어


 

만약에 이모할머니가 비비안 마이어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면?

만약에 비비안 마이어가 창고 임대료를 제때 냈다면?

만약에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을 모두 처분했다면?

만약에 존 말루프가 비비안의 사진을 인화하고 SNS에 올리지 않았더라면?


하나라도 어긋났으면, 우리는 비비안 마이어의 존재도, 그녀의 사진도 모른 채 살아갈 뻔했다. 여러 번의 행운 덕분에 비비안 마이어의 전시회를 그라운드 시소 성수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센트럴파크 동물원, 뉴욕.jpg
센트럴파크 동물원, 뉴욕, 1959년 9월 26일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그녀는 뉴욕, 시카고의 거리를 걸으면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민낯으로 찍었다. 술 취해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 공원 벤치에서 앉아 낮잠을 자는 사람, 신문을 읽는 사람,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 꾸밈이 없다.

 

 

 

비비안 마이어 카메라의 비밀



그녀의 카메라가 가진 힘은 평등이다. 중산층의 사람도 빈민층의 사람도 알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진다. 심지어 아이에게도. 정사각형 상반신 프레이밍 된 사진을 오랫동안 노려봐도 사진의 기세에 내가 지는 기분이었다.


비밀은 카메라에 숨겨져 있다. 그녀가 초기에 쓴 카메라, 롤라이플렉스는 특별하다. 보통 카메라와 눈의 시선이 수평으로 동일한 위치에서 찍지만, 롤라이플렉스는 카메라와 눈의 시선이 수직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고개를 내려야 한다. 자연스럽게 카메라의 위치는 로우앵글로 눈보다 아래에 있다.

 

길가의 사람들을 찍기 위해 위장하기 좋은 카메라다. 사람들이 찍히는지 모르게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다.

 

 

20220901020713_wcgmxzgm.jpg
롤라이플렉스 카메라, 그라운드 시소 성수

 

 


비비안 마이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사진



비비안 마이어와 같이 지낸 사람은 그녀를 고독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보냈다. 그녀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뉴욕과 시카고에서 유모로 일하면서 많은 아이를 돌봤다. 아이들은 비비안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아이들과 세상 밖으로 잦은 모험을 떠났다.


사진은 그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었다. 세상이 그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세상을 프레임 속에 담아 바라보고 싶은 방식으로 바라본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피사체와 거리감이 필요하다. 사진은 영상과 다르게 움직이지 않고 멈춰있다. 그녀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세계는 사진 속 세계였다. 그의 시선은 건조한 다정함이 묻어있다.

 

그녀는 아름다운 것만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을 찍었다. 그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흑인이나 여성의 권리를 지지한 사람이었다. 기자처럼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한 적도 있다. 오히려 어두운 부분을 면밀하게 살피는 사람이다.

 


비비안 마이어 셀피.jpg
뉴욕, 1953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왜 사진을 찍었을까? 왜 세상에 보여주지 않았을까?”



사진을 보면서 부유하는 질문을 떨쳐낼 수 없었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그녀가, 만약 지금 자신의 사진이 전시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땠을까?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의 지인들은 하나같이 싫어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혹은 그가 평생 바랬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자기 모습을 수백 장의 셀피(Selfie)로 남겼다. 21세기에는 많은 사람이 누구나 카메라로 셀피를 찍고 남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20세기의 비비안 마이어는 흔하지 않은 카메라를 들고 셀피를 찍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게다가 특이한 방식으로 거울, 그림자 등을 활용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사진 속에 자신의 존재를 지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낸다. 이미 사진 속 세계는 거리감이 충분히 구축된 세계라서 그녀는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세계였으니까. 실제 셀피 속 그녀의 얼굴은 대부분 무덤덤한 표정이다. 누구의 인정도 필요하지 않았다는 기개가 느껴진다.


비비안 마이어는 살면서 수많은 모순을 품고 살았다. 그녀의 사적인 사진을 보는 관람객에게도 모순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녀가 살면서 바랬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녀의 대답을 영원히 들을 수 없다. 우리가 매혹되는 이유다.

 



아트인사이트_에디터.jpg


 

[강현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