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남겨진 200여 개의 박스 -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도서]

글 입력 2022.08.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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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_나는 카메라다_띠지 앞표지.jpg

 
 

2007년 한 남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15만 장의 필름. 한 번도 인화되지 않은 네거티브 필름으로 발견된 사진은 무려 하루에 필름 한 통씩 50년을 찍어야 하는 분량이었다.

 

남자는 사진을 분류하다가 그것들이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는 100여 장의 필름을 스캔해 인터넷 웹사이트와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단 24시간 동안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댓글을 달았다. 사진가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진은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것들을 주제로 한 첫 전시회가 덴마크에서 열렸다.

 

관람객들은 벽에 걸린 순간을 포착해낸 이가 누군지 몹시 궁금해졌다.

 

평생을 독신으로 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보모, 가정부, 간병인 등으로 일하며 남의 집을 전전했다. 큰 키에 마른 체형이었던 그는 헐렁한 남자 셔츠, 구식 블라우스 등 단순한 옷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오갔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삶이었지만 마이어가 살던 시대는 도시화 되고, 자본주의의 흐름으로 분명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목에 걸고 뉴욕을 누비며 시대 흐름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했다. 그녀가 찍은 시간표나 버스, 기차와 같은 것들은 분명 당시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그녀는 주로 뉴욕의 거리 모습을 사진에 담기를 좋아했는데, 거리의 풍경보다는 뉴욕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더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길거리에서 잠든 노숙자, 논쟁하는 사람들, 엄마의 미차를 잡고 있는 어린아이 등 피사체를 선정하는 데 있어 계층이나 연령을 가리지 않았다.

 

마이너는 특히 특권, 젠더, 인종, 정치, 죽음 등의 주제에 민감했다. 삶이 망가진 사람들과 행인들, 5번가와 바우어리 거리, 모더니스트가 지은 예술적인 건물과 빈민가 공동 주택이 담긴 사진에는 한 여성의 기민한 정서와 쉴 새 없이 관찰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어쩌면 이는 그녀가 고수했던 촬영법의 덕이 클지도 모른다. 그녀는 항상 롤라이플렉스를 목에 걸고 돌아다니며 촬영을 했는데, 주로 노파인더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다.

 

'노파인더(no-finder)' 방식은 파인더를 보지 않은 채 촬영하는 것을 일컫는다. 주로 피사체가 자신이 찍히고 있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 사용한다. 때문에 마이어는 군중 속에서 최고의 우연과 찰나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한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은 마이어에게 포착되어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마이어가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려줄 단서는 거의 없다. 그는 2009년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사진을 누구에게도 보이지도 교류하지도 않았다. 마이어가 세상을 포착했듯이, 사후에 세상에 '발견'됐을 뿐이다.


마이어에게 사진은 그가 세상을 바라본 시선을 담은 기록이다. 그가 남긴 200여 개의 박스는 누구든 너무나 손쉽게 모든 순간을 담을 수 시대의 우리가 어떤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지 물어본다.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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