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이미 내가 됐다는 것도 모르고, "내가 되는 꿈" [도서/문학]

최진영 작가의 "내가 되는 꿈"
글 입력 2022.07.25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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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접한 문장 하나에 마음이 동하는 경험을 해본 적 있다.


  
“비슷한 것을 겪었을 거야. 비슷한 통증을 느꼈을 거야. 목소리가 닮았을 거야. 좋아하는 음악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동자도 비슷할 거야. 어쩌면 일기의 몇 구절, 편지의 몇 문장은 완전히 똑같을지도 몰라.”
 


우연히 위 구절이 적힌 페이지가 찍혀 있는 사진을 접하게 되었다. 스치듯 지나가며 본 사진이 뇌리에 박혀서, 웹사이트에 문장을 검색해 책의 제목을 찾아내고 바로 주문했다. 사소한 일 들 안에도 필연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 최진영 작가의 [내가 되는 꿈]과 나는 그렇게 만났다. 마치 꼭 일어나야 했을 일이어야만 했다는 듯이.


[내가 되는 꿈]은 내가 [구의 증명]에 이어 두 번째로 읽게 된 최진영 작가의 소설이다. [구의 증명]은 눅눅하고 어두운 늪지 속에서 미약한 따스함으로 생을 해쳐 나가는 이야기라면, [내가 되는 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따스함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이야기이다. 연달아 두 권의 최진영 작가 작품을 읽고, 나는 최진영 작가가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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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꼰대’ 라는 단어를 싫어하지만, 요즘 들어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지금 살아가는 삶이 어린 시절 상상했던 것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푸념이 주제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스스로 나 지금 참 꼰대 같다 – 라고 생각하면서도. 스무 살 이전까지는 ‘어른’ 이라는 단어가 참 큰 무게로 다가온다. 20살, 30살, 40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 마다 내가 대단히 크게 바뀌어 있을 것 같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드라마나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는다.

 

모든 일이 내가 원하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으며, 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고, 영원히 곁에 있을 것 같았던 것들은 언제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우리는 점점 작아진다. [내가 꾸는 꿈] 속 주인공 태희처럼, 어린 시절 꿈꿨던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잊은 채 때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해 고인 채로 살아간다.

 

[내가 되는 꿈]은 어디로 가야 하는 지를 잃어버린 채 고여 살아가는 모두에게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에서 왔나” 라는 질문을 던진 후, 지나온 흔적들을 되짚어보며 독자를 위로한다. 태희의 모습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투영한다.


어느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태희는 발전 없고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회사 분위기, 바람을 피우고도 본인을 사랑한다 말하는 애인, 귀찮게만 느껴지는 엄마의 연락,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자신의 처지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태희에게 할머니의 죽음은 터닝포인트가 된다. 더 이상 200만원이 엄청나게 큰 돈으로 다가오지 않는 나이가 된 태희는, 우선 할머니의 장례식 이후에 모든 것을 바로잡아 보기로 결심한다. 우연히 들어간 편지 쓰기 부스에서 태희는 과거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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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과 비슷한 구성으로, [내가 되는 꿈]은 과거 태희의 시점과 현재 태희의 시점을 오가며 전개된다. 동명이인인 줄 알았던 둘의 이야기는 소설 말미에 이르러 하나로 합해진다. 어린 시절의 태희는 별거하는 부모님을 떠나 할머니 댁에서 이모와 함께 자란다. 아이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과, 아이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 사이에서 태희는 ‘나의 것’이 무엇인지 찾아간다.

 

어린 태희가 ‘나의 것’에 대해 정의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건 노란 봉투 속의 일기장과 편지뿐이다.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고 다른 물건과 바꿀 가치도 없는… 쓰레기. 하지만 양말이나 옷처럼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으로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 일기장과 편지에는 정확히 나의 이름이 있고 누군가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내가 있다. 남들에겐 종이 쓰레기에 불과한 그런 것들 만이 제대로 나를 설명해 준다,” – P125
 

 

용돈만 가지고 생활해야 했던 학창 시절에는 원하는 것이 있어도 나의 것으로 만들기가 어려웠다. 사고 싶다고 다 사면 나중에는 떡볶이를 사 먹을 돈이 없어질 거야. 대학생이 되고 용돈 정도는 스스로 벌어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원하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가 비교적 쉬워졌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돈으로 무언가를 쉽게 내 것으로 만드는 일에 익숙해진다. 쉽게 사는 만큼 쉽게 잊어버리고, 몇 번 사용하고 서랍에 넣어버린 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얻어진 것들이 정말 ‘나의 것’ 일까, 어린 태희의 시선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편지는 이상하다. 봉투를 열고 편지지를 펼치면 내가 전혀 몰랐던 마음이 펼쳐진다. 말은 사라지고 기억은 희미해져도 글자는 남는다. 비밀스러운 마음이 선명하게 남아 버린다. 내게 그걸 주면 나는 가진다. 편지를 쓸 때의 그 마음을 나는 확실히 가진다.” – P86

 

 

그런 의미에서, 편지는 확실히 ‘내 것’ 이다. 편지를 주고 받는 행위를 ‘마음을 가진다’라는 말로 표현하는 작가의 말에 불현듯 방 한구석에 있는 상자가 떠올랐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받은 편지를 모아두는 상자가 있다. 몇 번의 이사를 거쳐도 절대 잃어버리지 않은 상자이다. 이미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인 사람들에게서 받은 편지도 많지만, 서툰 글씨로 적혀있는 진심들을 보며 이 편지를 받는 순간의 나는 참 행복했겠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마음의 일부분을 떼어 받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느 순간의 일부를 가진다는 것은.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모와 함께 바다에 간 어린 태희는 이해할 수 없는 엄마와 아빠의 관계, 혼자 할머니 집에 떨어져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 그리고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은 이모의 슬픔과 같은 감정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바다를 보던 태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내 안에 갇힌 나를 꺼낼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나는 나겠지. 마트료시카처럼 나는 계속 나일뿐이지.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 같고, 이별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 같고, 포기를 위해 꿈꾸는 것만 같다.” – P166
 
 
“집은 변함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방에서 똑 같은 이불을 덮고 누울 것이다. 하지만 이모는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잠들겠지. 비 내리는 바다를 봤고 사실을 확인한 나도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잠들 것이다.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섞인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지. / 그러니까 이별할 수도 있다. / 우리는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다.” – P170
 


바다를 보며 어린 태희가 느꼈던 감정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생동안 느낄 감정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내 안에 내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나를 찾아가는 모든 과정은 사실 그 자체로 나 라는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다. 새로운 것을 겪고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며 우리는 계속해서 내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미 내 속에 존재하는 ‘나’는 ‘나’다운 길로 나를 이끌 것이다.


거지 같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상처만 주던 애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러 집을 찾은 어른 태희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부분은 존재할 테고,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순간 마치 만난 것만 같았다. 문장 속에서. 과거의 나를.”
 
  
“어디에도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옛 일기장 사이에 넣고 덮었다. / 이거 엄마 집에 좀 둬도 돼? / (중략) / 말하면서 예감했다. 언제가 되었든 나는 이것을 버릴 수밖에 없으리라. 엄마나 할머니의 손이 아니라 내 손으로. 할머니가 내게 남긴 진짜 유산은 바로 그런 기회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든다. 지금의 나는 언젠가 과거의 나를 버려야 한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 속에 영원히 스며들어 있다. 과거에서 일어나 우리는 앞으로 걸어가며 수많은 현재를 만들어 가야 한다. 계속해서 ‘나’를 만들어가기 위해.

 

최진영 작가는 [내가 되는 꿈] 속 태희를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아주 개인적이고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삶을 기쁘게, 때로는 슬프게 만드는 모든 순간들에는 결국 ‘내’가 있었고, 나는 이미 나이기에 그 자체로 계속해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삶의 모든 과정은 나를 위한 것임을. 그러니 우리는 이미 내가 되어 있는 자신을 믿으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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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의 마지막 장으로 글을 닫고자 한다. 내가 쓰는 그 어떤 언어보다 이 책을 잘 설명하는 말인 것 같기에.


 
“내 삶은 해피든 새드든 결정된 엔딩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증명한다. 계속 살아가는 것으로, 다르게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쓰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 것으로, 계속 증명해 낸다. 이것이 증명인 줄도 모르고, 내가 이미 내가 됐다는 것도 모르고, 이토록 용감하고 대범하게 사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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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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